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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의 고민이 나타난 레드 벨벳
레드 벨벳 〈Rookie〉
‘벨벳’ 콘셉트는 이미 어느 정도 잊힌 채 팬들도 내심 지지하는 ‘레드’마저 스타일이 고착화되자 특별한 지향점 없이 적당한 퀄리티 이상을 선보이지 못한다.
한 가지는 인정을 해야겠다. 「Rookie」를 처음 다 듣고 나서 「러시안 룰렛」에 비해 어딘지 셀링 포인트가 약하지 않나 싶었는데 순간 입에서 ‘루키루키’를 되뇌는 나 자신을 발견했으니까. 중독성을 밀어보려는 시도였다면 적절한 결과물이 나온 셈이다. 대놓고 중독을 시키려다보니 특별히 꽂히는 후렴구 멜로디도 없고 마지막 부분에선 아예 ‘루키루키’만을 반복하다가 곡을 끝맺어서 문제지만, 그것이 노래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슬기와 웬디 두 보컬라인이 보여주는 호흡이 다른 곡에 비할 데 없이 좋고, 조이는 독특한 음색으로 곡 곳곳에 포인트를 짚는다. 최선의 기획과 그에 따른 최선의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 노래가 「러시안 룰렛」에 미칠 수 없는지 알고 있다. 「러시안 룰렛」은 귀에 잘 들리는 가사와 멜로디를 가진 후렴구, 음을 왜곡시켜 만들어낸 도입부 테마, 고전 게임을 연상시키는 일렉 사운드 등 잘 설계된 각 요소들이 얼마나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보여줬던 곡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레드 벨벳의 지향점을 비로소 찾아낸 듯한 트랙이었기에 그 의의가 더 강했는데 전자음을 감춘 흑인 음악 스타일의 리얼 세션과 소위 ‘병맛스러운’ 중독성을 드러낸 후속작은 아무래도 낙차가 심할 수밖에 없다. 이제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고 안심하는 순간 나타난 판단미스 탓인지 허탈감이 크다.
수록곡들도 들쭉날쭉한 편이다. ‘벨벳’ 스타일의 알앤비인 「Little little」의 경우 후렴구 멜로디의 규모를 점차 확장해가며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식상함을 극복하고 백마스킹(backmasking)을 활용한 도입부가 인상적인 「Talk to me」는 「러시안 룰렛」의 소프트 버전을 듣는 듯하다. 한편, 웬디 솔로곡인 「마지막 사랑 (Last love)」같은 경우 솔로곡이라는 점에서도, 리메이크라는 점에서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노래임에도 앨범 전체의 들뜬 분위기를 축 가라앉혀버린다. 음반을 마무리하기 위한 목적이라곤 해도 아쉬운 선택인데 앨범 자체가 미니 앨범이고 활동도 타이틀곡 중심으로 진행되다보니 전체적인 완성도나 유기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타나는 문제로 보인다.
<Rookie>는 현재 레드 벨벳이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4년간의 활동을 통해 레드 벨벳은 에프엑스와 소녀시대의 중간지점이라는 평가도 받았고 그룹 내외적으로 모험수를 두면서 안정적인 색을 찾기 위한 실험을 거듭해왔다. 좋은 결과물도 아쉬운 결과물도 있었으나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자면 「행복」과 「러시안 룰렛」 혹은 「Ice cream cake」 등의 성향들이 (다소 종잡을 수는 없지만) 대강 레드 벨벳의 색으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그리고 이번 「Rookie」는 제목처럼 데뷔 시절으로 잠시 회귀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어떤 새로움을 기대할 수 있을까 궁금증이 드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벨벳’ 콘셉트는 이미 어느 정도 잊힌 채 팬들도 내심 지지하는 ‘레드’마저 스타일이 고착화되자 특별한 지향점 없이 적당한 퀄리티 이상을 선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언젠가부터 SM 내부의 고민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SM 스테이션이나 엔씨티처럼 SM의 기획 자체가 세분화되고 리스크 부담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형태로 변한 탓에 레드 벨벳과 같이 한창 관리 아래에서 성장하고 있는 그룹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란 그리 다양하지 않은 것이다. SM이 당장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더라도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하는 방침을 택한 상황에서 기획력마저 최근 살짝 주춤하자 <Rookie>에도 그 영향이 미친 모양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신보에는 아쉬움을 표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레드 벨벳이 「러시안 룰렛」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은 SM의 올해 행보에 달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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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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