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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인 더 하이츠>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배우 이상이
꿈 많고 열정 가득한 이상이 씨
언제나 물음표가 달린 배우이고 싶어요. ‘이 친구가 이것도?’라고 생각할 정도로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는, 항상 궁금하게 만드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배우들을 인터뷰 하다 보면 공연을 보며 예측한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무대 위에서는 극중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작품을 통해 구축된 캐릭터와 실제 모습이 너무나 다를 때는 당황스럽기까지 한데요(인터뷰에서 보인 모습을 그들의 일반적인 캐릭터로 단정할 수도 없겠지만요.). 대개는 활발하고 코믹한 무대 위 모습과 달리, 인터뷰에서는 내성적이고 차분해서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배우는 완전히 반대라고 할까요? 작품마다 한없이 심각하고 정적인 인물로 무대에 섰던 그는 실제로는 어찌나 활달하고 동적인지, 자꾸만 다른 곳으로 튀는 그를 쫓아가며 인터뷰를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현재 그는 뮤지컬 <인 더 하이츠>의 ‘베니’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백석’으로, 참으로 분위기가 다른 두 작품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는 베니 역에 캐스팅된 것이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베니 본 모습에 가까운 캐릭터라고 할까요? 누군지 아시겠죠? 바로 뮤지컬배우 이상이 씨의 얘기입니다.
“심각하고 정적인 인물을 많이 연기했는데, 베니가 제 본연의 모습과는 더 맞을 것 같아요. 제 안에 흥이 많거든요. 그동안 표출하지 못한 것들을 <인 더 하이츠>를 통해 풀고 있죠.”
하긴 백석이나 베니나 흥이 넘치는 인물이긴 하네요. 흥의 느낌은 다르지만요.
“그렇죠, 나라도 시대도 인종도 다르니까요. 백석은 유하고, 구수하고, ‘얼씨구절씨구’ 그런 한국적인 느낌으로 표현한다면 베니는 힙합과 라틴 느낌이 강해요.”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상이 씨는 객석에서 바라본 외적인 모습과도 많이 달라 보였습니다. 잠시 뒤 백석으로 무대에 설 그가 상상이 안 될 정도로 그저 호기심 가득한 대학생 같다고 할까요?
“많이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분장의 차이, 헤어스타일의 차이가 아닐까(웃음). 그리고 일단 의상을 입으면 마음가짐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어쨌든 이런저런 모습이 있다는 거니까 배우로서는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인 더 하이츠>의 경우 힙합 뮤지컬이라 노래나 춤이 다른 작품과 많이 다른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몰라도 저는 저만의 흥과 소울(soul)로 참여하고 있습니다(웃음). 물론 힙합이라는 장르를 직접 표현한 건 처음이에요. 제가 경기도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충청도 분들이라서 말도 느리고 유하시거든요. 랩이나 힙합은 템포감이 중요한데 아무래도 처음에는 어렵더라고요. 상대적으로 잘 들린다는 분들도 계시지만요(웃음). 춤을 좋아해서 중학교 때부터 탭 댄스나 탈춤 등을 배웠어요. 예고 다닐 때는 비 선배가 ‘레이니즘’으로 컴백하셨을 때 그걸로 UCC콘테스트에 나가서 운 좋게 1등도 했고요. 이번 작품에서는 우스나비 역의 블락비 유권이가 락킹이나 크럼핑 등을 알려줘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춤을 정말 잘 추더라고요.”
베니 역에만 5명이 캐스팅됐는데, 이상이 씨만의 베니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가장 촌스럽고 바보 같은 베니라고 할까요? 연습할 때 이지나 선생님이 ‘너 참 구수하고 촌스럽게 생겼구나’ 하셨어요. 경성시대 사람처럼 촌스럽다고(웃음). 워싱턴 하이츠라는 지역이 중남미계 이민자들이 사는 가난한 동네인데, 그곳에서도 무시 받는 사람. 그렇게 촌스럽고 우스꽝스럽고 바보스럽지만, 거기에서 묻어나는 순수함을 끌어내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초연 때는 베니가 멋있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좀 더 바보스럽고 순수해요.”
힙합의 옷을 입긴 했지만 작품 역시 전체적으로 수수하고 구수한 것 같아요.
“맞아요, 무척 소소한 작품이에요. 하이츠라는 어려운 동네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사랑하는 이야기잖아요. 배우들은 무대에 오를수록 정말 신나고 재미나거든요. 오프닝부터 신나잖아요. 연출님이 자유롭게 열어주시는 부분도 있어서 시도도 많이 해보는데, 예를 들어 복권에 당첨된 소식을 듣고 놀라는 장면은 매회 달라요. 또 소니 역의 육현욱 형님이 애드리브나 상황 대처 능력이 뛰어나거든요. 그래서 저도 많이 배우고, 무대 위에서 논다는 표현을 몸소 체험하는 것 같아요.”
참, 9만6천 달러면 우리 돈으로 1억 원 정도인데, 1억 원 복권에 당첨되면 이상이 씨는 어떻게 할 건가요?
“외국 동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차고에서 많은 시도를 해보잖아요. 저도 그런 공간을 얻고 싶어요, 뭐든 할 수 있게. 연습도 하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작업실 비슷한 걸 마련해서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어요. 사실 제가 배우의 꿈도 있지만 자연 다큐멘터리를 좋아해서 관련 피디도 되고 싶고, 건축에도 관심이 많거든요. 또 <인 더 하이츠>를 만든 린 마누엘 미란다는 배우까지 했잖아요. 요즘은 저도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지금 참여하고 있는 두 작품을 비롯해 <베어 더 뮤지컬>의 ‘피터’, <무한동력>의 ‘선재’, <쓰릴 미> ‘나’ 등 지금까지 했던 캐릭터 중에 베니가 가장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쭉 얘기를 들어보니 아니군요(웃음). 이상이 씨 실제 성격은 어떤가요?
“베니는 전혀 어렵지 않아요. 오히려 <베어>나 <쓰릴 미>에서 동성애를 표현하는 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글쎄요, 제 안에 제가 너무 많아서 저를 알다가도 모르겠어요(웃음). 지고지순한 면도 있고, 흥도 있고, 남자다운 카리스마도 있고, 친구들과 있을 때는 털털하고. 아직은 무대에서 제 안에 있는 것들을 다 보여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데뷔 2년 만에,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 소감은 어떤가요?
“부모님이 더 좋아하셨어요, 아들이 큰 무대에 선다고. 좋더라고요. 분장실마다 비밀번호도 있고 샤워실도 있고(웃음). 개인적으로는 소극장보다 대극장에서 연기하는 제 모습이 더 자유로운 것 같아요. 소극장에서는 더 섬세하고 자세하게 연기해야 하는데, 제가 덩치가 있는 편이잖아요. 대극장에서는 보폭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크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편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2016년을 누구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마무리하고, 2017년을 좀 더 여유롭게 시작한 배우가 아닐까 합니다.
“너무 바쁘기는 했지만 마음은 그랬어요. 지난해 1학기 때는 다시 학교 다니고, 장학금도 탔어요(웃음).<인 더 하이츠> 공연으로 일본 다녀와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준비하고, 또 독립영화 촬영하느라 정신없었지만 마음은 굉장히 풍족했죠.”
지난 2년 동안 배우로서 많은 경험을 하셨는데, 관객 입장에서는 앞으로가 더 궁금한 배우입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 또 어떤 배우를 꿈꾸시나요?
“예전에 정보석 선배님이 하셨던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을 보고 크게 감명 받았던 기억이 나요. 최근에는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의 듀티율도 해보고 싶더라고요. <헤드윅>은 나중에 꼭 하고 싶고요. 학창시절부터 많이 도전했던 작품이거든요. 그리고 언제나 물음표가 달린 배우이고 싶어요. ‘이 친구가 이것도?’라고 생각할 정도로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는, 항상 궁금하게 만드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저의 30~40대가 저도 궁금한데, 어쨌든 재밌게 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이상이 씨가 과연 30~40대에도 배우로 계속 활동하고 있을지 궁금해지네요(웃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고, 그만큼 수많은 것들에 도전하고 경험하고,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이 어떻게 <베어 더 뮤지컬>의 ‘피터’, <쓰릴 미>의 ‘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백석’이라는 인물로 차분하게 들어갈 수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정말이지 <인 더 하이츠>의 베니가 꿈 많고 열정 가득한 이상이 씨의 모습과는 가장 닮아있는 것 같네요. 물론 그래서 더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이상이 씨가 아직 다 꺼내 보이지 않은 자기 안의 수많은 다른 캐릭터로 무대에 서는 모습도요!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