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을 돌아보며
뭐 하나 제대로 마무리 되지 않았는데 2017년이 온다
그래, 너 아주 말 한 번 잘했다. 어디 보자, 정신 바짝 차려야지, 다음 작품도 아직 못 정했는데 돼지같이 찐 살도 빼고.
일러스트_ 이경아
석 달 가까이 마닐라, 오스틴, 뉴욕, 홍콩, 파리, 런던, 더블린, 웩스퍼드, 타이페이를 지나 한국으로 돌아왔더니 여긴 완연한 겨울이다. 해외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각 지역 간의 온도 차로 뇌혈관이 터진 나머지 식물인간이 되거나 반신불수가 되는 사고도 있다는데 다행히 나는 살만 쪘다. 아니, 불행히도 살이 많이 쪘다.
그 동안 여러 나라에서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 기자들도 만나고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었다. 열광적인 사랑을 받기도 했고 존재감 없이 유령처럼 떠돌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돼지같이 살이 쪘고 그 동안 한국에선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던 순간 교내 풍경을 찍은 어느 고등학생의 동영상을 봤다. 결과 발표 직전, 학생은 스마트폰을 세로에서 가로로 뉘어본다. 어떻게 해야 이 작은 프레임 안에 역사적 순간을 제대로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한 것 같다.
대통령은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돕는다고 그랬다. 나는 너무나 창피해서 울고 싶다. 12년 전, 바로 그런 말을 했었다, 대통령 말고 내가. 어느 변두리 작은 학원으로 특강을 하루 나갔는데 ‘간절히 원하면 뜻이 닿는다’는 말을 내뱉으면서 바로 느꼈다. 내가 지금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구나. 그 순간 학생들의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부디 모두들 나를 잊었기를.
하루는 몇몇 감독이 모여 술을 마시다가 불행 배틀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자리엔 술만 마시면 항상 우는 분이 계셨다. 각자 자신의 지난 불행을 최대한 긁어 모아 탈탈 터는데 그는 자살을 시도했던 지난 일을 털어놓으며 울기 시작했고 그 때는 이미 해는 떴지 너무 취하고 정말 졸리고 진짜 지치고 거기에 반박할만한 더 불행한 다른 카드는 없고 그냥 다 같이 울었다고 한다. 내친 김에 우는 얘기 하나 더 하자면,
며칠 전, 감독조합송년회가 있었다. 30만 원 상당의 의류 상품권을 걸고 웃자고 한 내기가 시작됐다. “이 상품권은 올해 개봉한 감독들 중 망한 감독들에게 우선권!” 망한 감독들이 줄줄이 무대로 올랐다. 물론 거기엔 나도 있었다. “자, 여기서 올해 영화 망하고 울었다. 하는 감독만 남고 모두 내려가!” 좌중에선 웃음이 터졌다. “영화 찍는 동안이요? 아니면 개봉하고 나서요?” 나는 진지하게 질문했고 ‘개봉 뒤’라는 전제를 듣자마자 바로 내려왔다. 영화 망했다고 울진 않았지만 촬영하는 동안 딱 한 번 울었다. 촬영감독과 피디랑 한참을 심각하게 싸우고 밤새 술 마시다가 끝내 울었다. 사실 거기엔 여러 사적인 이유와 공적인 문제가 뒤섞인 아주 개인적이고 은밀하고 피곤한 일이었는데 이후 PD가 그 때의 나를 두고 온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닌다니 하는 수 없지. 그래, 나 울었다.
어제는 오랜 친구 감독들과 송년회를 가졌다. 7년째 매년 갖는 우리들만의 행사다. 한참 술을 마시다 누군가 올 한해 가장 사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순서대로 털어놓자 제안을 했다. 아, 그거 재미있겠다! 원석 감독이 먼저 해영 감독에게 물었다. “해영이 형, 누구 있어요?” 해영은 실없는 농담으로 대신하고 되물었다. “원석 감독은 누구에요?” 원석 감독은 답을 피해 바로 내게 넘겼다. “빵 감독은 누구 있어?” (여기서 빵 감독은 나다) 어... 있는데 그게 누군지 콕 집어낼 수가 없어. (나 혼자 웃음) 그게 왜냐하면... 있잖아... 내가 지금도 이 상황이 잘 파악이 안 되는 것이... 하고 웃으며 시작했다가 그만 목줄이 끊어질 듯 핏대를 세우고 얼굴 빨개졌다.
아무튼 간에 뭐든 내 맘 같지 않은데 내가 분노해야 할 명확한 상대도 잘 파악이 안 되고 그저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불을 뿜었다. ‘그래! 나는 영화 망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돈도 못 버니까 밖에선 다들 나만 무시하고! 내가 망하지 않았으면 다들 나한테 안 그랬을 거면서!’ 다들 대꾸가 없으니 나는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다가 정작 내게 질문한 원석 감독은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핸드폰을 들고 나가버렸다. 제발 공감을 구하는 내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허공을 향해 분에 찬 얼굴은 밉상으로 일그러지고 다들 끝내 별다른 대꾸가 없자 내 이야기는 저 혼자 그렇게 소멸했다. ...나 혼자 너무 솔직했다. 짧고 불편한 이 침묵. 아, 웃자고 시작한 걸 내가 지금 융통성 없이 죽자고 덤볐구나. 아직 한국말 이해가 어려운 외국인 남자친구가 옆에서 내 등을 쓸어준다. ‘응, 그래... 너는 충분히 화날 수 있어, 이해해.’ 얘는 내 이야기를 잘 이해 못 했을 텐데.
타인의 작품에 대해서 악담만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누군가의 글을 보았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생이 있었는지를 알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악담해도 된다. 그리고 나도 악담할 것이다. 물론 악담을 받으면 기분 나쁘다.
그래서 나는 일단 나를 단련시키기 위해 모든 악담을 진짜 일일이 찾아 읽고 악담을 쓴 사람의 성향을 파악해서 내가 그 악담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하기 위해 그의 앞뒤 다른 글까지 다 찾아 읽는 편인데 세달 동안 온 동네방네 해외를 다니느라 오랜 시간 검색을 쉬었더니 흐름이 끊겼다. 이젠 살도 많이 쪘고 열정도 다했다. 누가 악담을 하든 말든. 모두가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든 말든. 행사인지 파티인지 아무튼, 나는 괴롭다.
괴롭다. 정말 괴롭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순간, 이 사건을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 스마트폰을 세로에서 가로로 뉘어보던 학생은 결과가 발표되기 무섭게 벌떡 일어났다. 교실은 변성기 중인 남학생들의 우렁찬 환호로 폭발 기세다. 녹화버튼이 눌린 스마트폰을 든 학생은 바로 튀어나가 복도를 질주한다. 우어어어- 각 교실마다 터져 나오는 괴성과 같은 환호, 박수소리. 국적불명의 춤을 추는 학생들. 카메라도 같이 펄떡 펄떡 뛰어다닌다. 나는 그만 또 울었다.
세월호 아이들의 동영상도 그랬다. 침몰 전, 학생은 스마트폰을 셀프 카메라로 고정한다. 요리조리 예쁜 표정도 지어보고 친구들과 함께 웃는다. 학생은 카메라를 세로에서 가로로 뉘어본다. 어떻게 해야 이 작은 프레임 안에 이 순간을 제대로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한 것 같다. 지금 찍는 이 동영상을 나중에 사람들한테 보여줘야지. 생각했을 것이다.
눈물이 흐르기 무섭게 벌떡 일어나 아파트 복도로 나왔다. 새벽 4시, 소리 하나 없는 이곳은 진공의 우주다. 문득 깊고 어두운 물속을 떠올렸다. 차르르륵- 한 차례 소나기 소리. 어라? 복도 밖으로 손을 내밀어본다. 비 아닌데? 빗소리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여기는 다시 검은 바다, 아니 우주, 아니 칠흑 속 아파트 복도. 문득 뒤통수가 서늘해지면서 휘우우웅- 저기 멀리서 우는 소리와 함께 다시 차르르륵- 아파트 단지를 휘감아 공명한다. 분명히 비 안 오는데? 그럼 박수 소리? 기름 튀기는 소리? 아니 그게 어떻게 하늘에서부터 울리지? 싶은데, 가을 끝자락을 놓친 마른 낙엽들이 휘우우웅- 부는 찬바람에 휘둘려 차르르륵- 가로등 불빛을 지나 무리 지어 구른다. 아 깜짝이야, 귀신인 줄 알았네. 눈물 닦는다. 뭐 하나 제대로 마무리 되지 않았는데 2017년이 온다. 어제 청문회에서 발표된 통화 녹취록에서 최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큰일 났네, 정신 바짝 차려야지. 안 그러면 다 죽는다” 그래, 너 아주 말 한 번 잘했다. 어디 보자, 정신 바짝 차려야지, 다음 작품도 아직 못 정했는데 돼지같이 찐 살도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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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생. 영화 <비밀은 없다>, <미쓰 홍당무> 등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