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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영화 <라라랜드>
<라라랜드>를 보니 13년 전 나의 연애가 겹쳤다. <라라랜드>가 나를 포함해 많은 이의 마음을 움직인 건 극 중 미아와 세바스찬과 비슷한 연애 경험을 공유하는 까닭이다.
겨울
추운 계절이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시렸다. 도대체가 생각한 대로 이뤄지는 일이 없었다. 창고를 개조한 감각적인 사옥은 영화팀 기자로서 역량을 발휘하기 좋은 환경이었지만, 월급을 받지 못하니 의욕만 가지고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전기까지 끊겨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사옥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때 신입 기자가 입사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미아(엠마 스톤)는 배우 지망생이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대사를 연습할 정도로 열심이지만, 오디션에서는 늘 떨어진다.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재즈 피아니스트다. 그는 자주 찾는 재즈바가 별안간 음식을 팔기 시작하자 분노한다. 정통 재즈를 고수하는 세바스찬으로서는 재즈를 외면하는 분위기가 야속하다. 살려면 별수 있나. ‘징글벨’을 피아노 연주하다 즉석에서 재즈로 음악을 변경하니, 돌아오는 건 주인의 해고 명령이다. 역시나 추운 계절이다.
봄
슬슬 날이 따뜻해졌다. 회사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추운 겨울보다 버티기에는 좀 나았다. 단지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겨울에 입사한 기자는 여행 팀이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자주 다니지는 않아도 관심이 있었다. 그녀는 영화를 좋아했다. 공통 관심사가 있다 보니 말이 통했다. 마침 뮤지컬 영화 <시카고>의 일반시사회 일정이 있어 함께 가자고 했다. 그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후 종종 영화를 같이 보러 다녔고 극장에서 손을 잡았다. 세상이 달라 보였다.
세바스찬은 먹고 살기 위해 키보드를 쳤다. 이를 본 미아가 그를 놀려댔다. 지난 겨울 미아는 세바스찬에게 모욕을 당했다. 오디션에서 탈락해 마음이 좋지 않던 미아는 재즈바에서 흘러나온 세바스찬의 연주에 위안받았다. 감사를 표하려던 미아를 해고 통보를 받은 세바스찬은 외면했다. 키보드를 맨 세바스찬을 놀려댄 건 미아의 복수였다. 그것은 사실 관심의 표명이었다. 둘은 어두운 언덕을 함께 걸었다. 고지에 오르자 눈앞에 ‘라라랜드’의 화려한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나누던 대화와 몸짓이 어느 순간 노래와 춤으로 변모했다.
여름
월급이 나오지 않는 생활은 여전했다. 그래도 마음은 뜨거웠다. 우리는 사내 연애를 했다. 회사에서 몰래 하는 연애는 짜릿했다. 그녀는 간식거리를 사옥 모처에 숨겨놓았고 나를 이를 찾아 먹었다. 그녀와 나는 근무 중 메신저로 퇴근 후 놀러 갈 장소를 정했다. 내가 먼저 퇴근해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면 나중에 그녀가 합류하는 식이었다. 기사도 술술 써졌다. 내가 완성한 기사에 그녀는 제목을 달아줬다. 그녀가 원고를 쓰다 막히면 내가 옆에서 응원해줬다. 영화와 같은 나날이었다. 온 우주가 우리를 축복하는 듯했다. 월급 몇 달 안 나오는 것 따위 걱정도 아니었다.
리알토는 유서 깊은 극장이다. <이유 없는 반항>을 보기 위해 미아와 세바스찬은 리알토를 찾는다. 여기서 손을 잡은 둘은 장소를 옮겨 그리피스 천문대를 찾는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이유 없는 반항>에 등장했던 배경이다. 천문대의 천장에는 별들이 가득하다. 그 아래에서 키스한 미아와 세바스찬은 그 기분에 취해 온몸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우주를 배경으로 기쁨의 춤을 추는 이들이 스탭을 밟을 때마다 떨어지는 사랑의 감정이 별이 되어 어두운 하늘을 밝힌다. 오디션에 떨어져도, 대중이 재즈를 이해하지 않아도 미아와 세바스찬의 마음은 더는 춥지 않다.
가을
깊은 관계로 발전하면서 장래를 걱정했다. 나는 월급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 회사에 머물고 싶었다. 첫 직장이었고 그녀를 만난 곳이어서 의미가 깊었다. 그녀도 이해하는 것 같았다. 오래 가지 않았다. 연애 초기에는 캔커피 하나만으로도 이 세상이 부럽지 않았는데 돈이 없으니 반복되는 데이트가 지겨워졌다. 그녀가 나의 기사에 제목을 붙여주는 일이 줄어들었다. 원고 아이디어가 없어 고민하는 그녀를 나는 지켜만 보았다. 모든 영화를 극장에서 봤는데 이제 재미없는 영화는 건너뛰었다. 영화(映畵)를 매개로 했던 우리의 영화(榮華)는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세바스찬과 미아도 생계를 걱정했다. 세바스찬은 언젠가 재즈바를 열리라 다짐했다. 미아는 ‘솁스’라는 멋진 이름을 지었다. 미아도 오디션에 연연하지 않고 1인 극을 직접 무대에 올려 승부 보기로 결심한다. 그때 미아에게 걸려온 엄마의 전화. 어떤 남자니? 돈은 벌고? 이를 들은 세바스찬은 친구의 밴드에 들어가 혐오해 마지않는 키보드 연주를 하며 돈을 번다. 좋아할 줄만 알았던 미아의 반응이 의외다. 자기가 원하는 게 아니잖아. 세바스찬 왈, 내가 돈 벌기를 바란 거 아니었어? 둘은 그리피스 천문대를 다시 찾았다. 별이 가득했던 하늘엔 잔뜩 구름이 껴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리알토 극장도 문을 닫았다.
다시 겨울
다미안 차젤레 감독의 <라라랜드>를 보니 13년 전 나의 연애가 겹쳤다. <라라랜드>가 나를 포함해 많은 이의 마음을 움직인 건 극 중 미아와 세바스찬과 비슷한 연애 경험을 공유하는 까닭이다. 평생을 함께할 줄 알았던 연인과의 예상치 못한 이별이 남긴 상실감. 그리고 오랜 시간 이어진 쓸쓸한 감정의 여진. 그(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헤어지고 3~4년이 지났을 때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남이 된 지 오래인데 마음이 복잡했다. 만약에 관계를 지속하였다면 나의 옆에는 그녀가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혼자고 <라라랜드>를 보고 나서 감상에 젖어 지금의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쓰고 나니 꽤 행복한 기분이다. 사실 맺어지지 않은 사랑이라고 해서 그냥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이제는 유명한 배우가 된 미아는 남편과 함께 어느 재즈바를 찾는다. 간판을 보니 ‘솁스’다. 세바스찬이 무대에서 그녀를 보고는 당황하는가 싶더니 곧 피아노에 앉아 곡을 연주한다. 동시에 세바스찬과 미아의 머릿속에는 헤어지지 않았다면 완성됐을 관계에 대한 상상이 재즈 선율에 맞춰 흐른다. 그렇게 우리가 겪은 경험은 엉킨 감정을 효과적으로 푸는 예술의 좋은 재료가 되고는 한다.
나 또한, <라라랜드>를 핑계로 한동안 잊었던 내 과거의 기억을 반추하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5년 만에 재회한 세바스찬과 미아가 그랬던 것처럼 말없이 미소 지어주고 싶다.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선사해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란다고. 또 다시 봄이 찾아오고 있다.
그림_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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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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