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낮은 곳으로 향한다 – 뮤지컬 <더 언더독>
버림받은 개들의 눈으로 잔혹한 현실을 바라본다
감성적인 음악과 극적인 드라마로 무장한 새로운 캐릭터 뮤지컬
인간은 쓰레기 버리듯 우리를 버린 거야
막이 오르기 전, 어지럽게 흔들리는 영상이 무대를 채운다. ‘낮은’ 시선의 주인공은 가쁜 호흡으로 거리를 헤맨다. 사람들은 무심하게 그를 지나쳐 가고, 골목을 질주하는 차량은 금방이라도 덮쳐올 듯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날 선 말들이 날아와 박힌다. 그는 쓰레기 더미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다시 정처 없이 떠돈다. 간혹 먼저 다가와 손길을 내미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유 없이 발길질을 하거나, 이유 없이 그를 결박했다. 애끊는 절규만 남긴 채, 그는 모습을 감췄다. 이 비참한 삶은 또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까.
뮤지컬 <더 언더독>의 인물들은 모두 그와 비슷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주인에게 버려진 후 투견으로 길러진 진돗개 ‘진’, 군견으로서 충성을 다했지만 ‘용도폐기’ 된 셰퍼트 ‘중사’, 강아지 공장에서 ‘새끼 낳는 기계’처럼 이용당하다 버려진 마르티스 ‘마티’... 그들은 자신이 버려진 이유도 모른 채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유기견 보호소에 오게 된다. ‘진’이 나타나기 전까지 그들에게 보호소는 안식처였다. 자신들은 단지 길을 잃었을 뿐이라고, 곧 새 주인을 만나 따뜻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한 번도 이유 없이 밥을 먹어본 적이 없”는 ‘진’은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인간은 우리를 쓰레기 버리듯 버린 거라고’ 보호소의 개들에게 외친다. 잔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개들은 ‘진’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버려진 건 너 하나 뿐”이라며. 동시에 그들은 내심 ‘진’의 등장을 반기고 있었다. ‘한 놈이 들어오면 한 놈이 나간다’는 보호소의 규칙의 따라 ‘선택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들은 꿈꿨다.
군견 출신의 셰퍼트 ‘중사’는 보호소 내의 규율을 책임지는 인물이다. “인간은 우리를 도와주는 존재들”이라 믿는 그는 ‘진’의 반항과 의심을 이해하지 못한다.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안식은 없어”라고 말하며 ‘진’과 대립한다. 의아한 점은, 이토록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중사’가 ‘선택의 날’만 되면 모습을 감춘다는 것이다. 이를 수상히 여긴 ‘진’은 그의 뒤를 쫓다 감춰진 진실을 알게 된다. ‘진’을 통해 선택 받는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게 된 개들은 “살고 싶다, 살아가고 싶다”는 한 마음으로 보호소 탈출을 감행한다.
본질은 약자에 대한 폭력이다
뮤지컬 <더 언더독>은 SBS <TV 동물농장>의 ‘더 언더독’을 인상 깊게 본 제작진이 4년여의 대본 작업과 개발을 통해 선보이는 작품이다. 당시 프로그램이 유기견의 참혹한 삶을 조명했던 것처럼, 작품은 버림받은 개들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을 인간의 언어로 되살려낸 것이다. 이를 위해 개들의 감정 속으로 뛰어든 배우들의 연기는 작품을 지탱하는 든든한 축이다. ‘진’ 역의 배우 김준현과 이태성, ‘중사’ 역의 김법래와 김보강, ‘마티’ 역의 정명은과 정재은 등 탄탄한 내공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호소력 짙은 연기를 선보인다.
무대 위의 그들은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자신들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닫는다. 이 불편한 이야기가, 아주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런 점에서 뮤지컬 <더 언더독>은 목소리를 낼 수 없던 이들에게 목소리를 찾아준 작품이라 할 만하다. 동시에 우리의 시선이 가 닿지 못했던 곳에 빛을 비춰준 작품이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 국민들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고 간디는 말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동물을 향한 학대는 근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폭력이라는 것을. 힘없는 이들을 향해 폭력이 자행되고 그것이 묵인될 때, 그 세상 속에서 인간은 보호받을 수 있을까. 뮤지컬 <더 언더독>이 말없이 건네는 경고다.
작품은 2월 26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만날 수 있다.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