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진짜 이유
디지털 시대 출판·콘텐츠 산업의 미래 #1
내가 처음 큐레이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주변에 읽을거리가 너무 많다고 느끼면서부터였다. 디지털 혁명이 불어 닥치기 직전이던 지난 2006년, 나는 출판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디지털 시대의 출판업, 과연 이 구시대적 산업에 미래가 있을까?
모두 알고 있듯 디지털 혁명은 오고야 말았다. 일부 산업은 공황상태에 빠지기도 했지만, 출판업의 경우 문을 닫을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음악 산업처럼 도산해버리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했다. 계속해서 감소한 종이책 판매량은 전자책 판매분으로 어느 정도 상쇄할 수는 있었지만 가격이 여전히 불안정했다. 더욱이 출판계 종사자들의 업계 이탈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랜 생각 끝에 나는 기술이 아니라 과잉 시장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두 가지 과잉 문제
첫 번째 과잉은 책 자체의 문제다. 오늘날에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책이 출간되고 있다. 1800년 영국에서 일주일 동안 나오는 신간도서는 12권이었지만 2014년에는 무려 2,875권이었다. 공식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책까지 더하면 그 숫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1800년에는 인구 1만 7,500명당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던 것에 비해 2011년에는 350명당 한 권이 출간되었다. 이 기간 동안 인구는 6배 증가하는 것에 그쳤지만 출간된 책의 권수는 무려 250배나 증가했다. 문맹률이 낮아졌고 가처분 소득이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이 같은 증가율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두 번째 과잉 요소는 바로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양의 비 정제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다. 킨들 다이렉트 플랫폼(Kindle Direct Platform)의 등장으로 누구나 출판을 할 수 있게 된 이후, 출판업자만이 해당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그 결과 갑작스레 1인 출판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지금까지는 출판업자의 판매 채널 독점으로 그 영향력이 미미했다), 기존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으로 팔리던 책은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데 그쳤다. 결국 2013년 말, 킨들의 베스트셀러 가운데 25%가 1인 출판으로 나온 책이었고, 그 비중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책이 너무 많아서 어떤 게 좋은지 알 수 없다
출판업자 입장에서는 펴내야 할 책이 너무나 많은 반면, 소매판매 기회 및 독자 규모는 너무 작은 상황이다. 출판 및 콘텐츠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시장이 과도하게 성숙하고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정말 좋은 책을 선별해내기가 어렵고, 결국 이것이 독자에게는 문제로 작용한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출판이 가능한 시대에 만약 출판업자가 되고자 한다면 큐레이션, 즉 독자를 위해 선별하고 단순화하는 행위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사회 속에서 큐레이션은 ‘이것을 읽으세요’라는 하나의 지침일 수 있다.
이제 큐레이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개인의 위치에서는 물론 전문가의 입장에서도 큐레이션은 포화 상태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 즉, 뭔가를 더하지 않으면서도 가치를 높인 것이다. 출판업자와 독자 모두 밀려드는 콘텐츠에 압도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큐레이션 전략의 핵심이 놓여 있다.
큐레이션마이클 바스카 저/최윤영 역 | 예문아카이브
큐레이션은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덜어내는' 힘이자, '선별과 배치를 통해 시장이 원하는 것만 가려내는' 기술이다. 큐레이션은 이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사용되는 의미를 넘어서서, 패션과 인터넷을 비롯해 금융?유통?여행?음악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트렌드다.
경제학 연구자, 작가, 저널리스트이자 디지털 퍼블리싱 콘텐츠 기업 카넬로(Canelo)의 발행인. 옥스퍼드 브룩스 국제 센터(Oxford Brookes International Centre) 연구원으로 영국문화원 ‘미래를 이끄는 젊은 창조 기업가’로 선정됐고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수여하는 ‘깁스상(Gibbs Prize)’을 받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디지털 시대 콘텐츠 산업의 미래와 해법을 다룬 《콘텐츠 머신(The Content Machine)》 이 있다.
<마이클 바스카> 저/<최윤영> 역16,200원(10% + 5%)
“대신 선택하고 미리 보여줘라!” 시장이 원하는 것만 가려내는 기술 이미 수많은 정보·콘텐츠·상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어느 것 하나 주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선택을 대신할 수 있는 큐레이션(Curation)의 개념을 살펴보고 이를 적용할 수 있는 방법과 분야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제시하는 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