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을 멈추고, 이제 행동하라
미술관에서 만족스럽게 머무르려면 때로는 잘 다져진 길을 벗어나 스스로 일을 처리하고 자기 뜻대로 통찰력 있게 이해해야 한다.
바라건대, 나는 독자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미술관이 좀 더 생기 넘치고 보람을 주는 장소가 되기를, 그저 책을 읽기만 하기 보다는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에 따라 행동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미술관이란 당신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
화이트큐브를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이 책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화이트큐브에 관한 사실 한두 가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화이트큐브가 1970년대에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크고 깨끗하고 중립적인―그러므로 순수한―하얀 공간이란 뜻이었다. 어떤 맥락에서도 자유로운 공간. 화이트큐브 안에는 당신과 미술작품, 그 사이에 아무것도 없이, 침묵 속에 그저 그 둘만 존재할 것이었다. 하지만 뭔가가 잘못됐다. 화이트큐브가 그 자체로 목적이 돼버린 것이다. 화이트큐브는 미술관과 예술가 들이 ‘미술을 위한 미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변명거리를 제공해주었다. 그 결과 화이트큐브 공간을 둘러 싼 벽들은 고립시키는 것처럼, 그 청결함은 멸균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대개의 미술관은 실험실처럼 여겨지게 됐다. 화이트큐브는 그저 어떤 공간이라기보다 미술을 제시하는 하나의 방법을 대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미술관을 경험하는 방식을 깊이 규정짓게 되었다.
이제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어쩌면 상황이 바뀌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미술관 종사자들은 그 이후 지어지거나 리노베이션 된 그 많은 멋진 미술관들을 좀 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말이 맞다. 어떤 화이트큐브에는 창문이 있으며, 또 어떤 것은 스펙터클한 건축물을 뽐내기도 한다. 하지만 미술관이 우리에게 미술작품을 ‘차려내놓는’ 격식은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다. 미술이 지난 반세기 동안 스스로 많은 면에서 다른 모습―이전에 비해 점점 다양하고 복잡하고 터무니가 없어졌다―을 보여준 반면, 미술관은 미술을 이전과 똑같이 단조롭고 미니멀리즘적인 방식으로 전시한다. 이 때문에 유명한 미술 컬렉터 찰스 사치는 화이트큐브를 두고 “살균되었”으며 “걱정스러울 정도로 구식에 클리셰 투성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점점 나빠져서 마치 화이트큐브가 미술을 보여주는 유일한 방식인 것처럼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미술작품에서 미술작품으로 떠다니기
지나친 순수함은 미술관에 해롭다. 미술이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현실 세계와 연결될 필요가 있다. 미술 비평가 제리 살츠가 적절히 언급했듯이 “울퉁불퉁 폭격 맞은 것 같은 환경에 미술을 내놓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공간이나 태도 양쪽 면에서 다른 방식들이 있다”는 뜻이다. 역설적이게도 미술관들은 대체로 그 평온함과 엄격함 때문에 미술을 해설하거나 맥락화하는 것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청결한 벽과 침묵은 적절한 이야기, 대화, 퍼포먼스, 파티 혹은 미술을 이해하거나 감상하도록 도와주는 그 어떤 접근법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에서 좀 더 편안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지표일 수도 있다.
미술 전문가와 애호가 들은 대부분 화이트큐브에 전폭적인 신뢰를 품고 있다. 그들은 그 덕분에 미술 주변에서 최상의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미술관에 가는 사람들 중에는 이와 다르게 느끼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가치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희망 혹은 기대를 품고 미술관에 들어간다. 일단 안에 들어서면 그들이 작품에서 작품으로, 한 작품당 평균 10초 혹은 20초 정도를 쓰면서 옮겨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얼굴에 흥미를 나타내지만, 동시에 권태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을 좀 더 오래 관찰해보면 많은 이들이 길을 잃고 압도되어 당황하거나 심지어 지루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미술과의 만남은 기대한 것처럼 언제나 잘되지는 않는다”라고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적는다. “기관이 미술을 제시하는 방식은 우리가 작품에 가 닿도록 우리를 불러들이지 않는다.”
스스로 경험을 만들어나가자
미술관은 미술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형성되는 주요 장소로 기능한다. 그렇다면 미술을 이해하는 것에 관한 멋진 책들이 그토록 많은데도,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식의 미술관 활용법을 알려주는 책은 왜 단 한 권도 없는 것일까? 미술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보람을 느낄 수도 있고 심지어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속지 말자. 그저 미술관 안에 있다고 해서, 위대한 미술작품 앞에 서 있다고 해서, 또 그것을 감상한다고 해서 당신의 미술 경험이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아무튼 그 작품을 이해하거나 그것에 감동받음으로써 미술과 개인적인 연결고리를 가져야만 한다. 보통의 경우 그런 불꽃은 스스로 점화되지 않는다. 미술관이 그 여정에 도움이 되어주길 기대할지도 모르겠지만, 화이트큐브의 의례적 관습은 실은 대체로 정반대의 효과를 낳는다. 우리의 뜻깊은 경험을 방해 하는 것이다.
좋은 소식은 자신의 미술관 경험을 당신 스스로 상당부분 주도해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미술관이 작품을 그런 식으로 제시하는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경험할 것인지는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미술관이 살균된 하얀 공간처럼 보이고 느껴질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당신이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술관 방문 후에 잘 다녀왔다고 느끼려면 실제로 다른 접근법을 취하는 편이 낫다. 그게 바로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이다. 이 책은 미술관 방문을 뜻깊은 기억으로 바꾸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약간의 용기와 창의성
처음 가는 사람에게든 자주 찾는 사람에게든, 이 책은 미술관에 관한 신선한 관점을 전하고자 한다. 이 책은 미술관 에티켓이 상식적인지 비상식적인지를 보여준다. 또 좀 더 스스로 판단하게 함으로써 화이트큐브가 제기하는 도전에 딴죽을 걸게 한다.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이 제안한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걸어라” 같은, 미술관 안에서의 전형적인 행동으로 보람을 느끼기란 좀처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미술관 경비원이 관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구별할 수 있는 경험칙을 익혀라. 미술작품 이면에 숨어 있는 세계를 발견하는 법을 아이들에게서 배우라. 미술관에서 만족스럽게 머무르려면 때로는 잘 다져진 길을 벗어나 스스로 일을 처리하고 자기 뜻대로 통찰력 있게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은 작은 용기와 창의성을 발휘해 미술과 관계 맺는 새롭고 적극적인 방법을 알려줌으로써 당신의 미술관 방문을 진정 보람 있게 만들고자한다.
『미술관 100% 활용법』은 호기심 넘치고 결단력 있는 미술관 관람객을 위한 실용적이고도 상상력 넘치는 안내서로서 기획되었다. 바라건대, 나는 독자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미술관이 좀 더 생기 넘치고 보람을 주는 장소가 되기를, 그저 책을 읽기만 하기 보다는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에 따라 행동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미술관이란 당신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
미술관 100% 활용법요한 이데마 저/손희경 역 | 아트북스
『미술관 100% 활용법』은 관람객의 미술관 방문을 좀 더 뜻깊게 만들어 줄 32가지 제안이자 실용적인 안내서다. “미술관을 체크리스트가 아닌 일종의 메뉴”라고 여기라며 조언하고, “미술은 벽에 걸려 있는 사물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과 만날 때에만 일어나는 사건”이라며 당신의 사고를 전환시킬 관점을 제시한다.
관련태그: 미술관 100% 활용법, 안내서, 요한 이데마, 경험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요한 이데마> 저/<손희경> 역11,400원(5% + 2%)
“미술관, 다 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발걸음 가볍게, 미술관 가는 길! 한국인의 1인당 영화 관람 횟수는 연간 4.12회다. 1년에 1천만 명을 넘긴 영화가 두 편 정도 나온다. 미술관의 해당 숫자와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지만 (상영관의 수와 콘텐츠 등 양적 · 질적 요인은 차치하더라도) 그 마음가짐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