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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의 꿈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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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으며 14년을 개똥밭에서 굴러 온 작은 회사 사장은 이 책으로 인해 전투력 상승 중이다.

노비 문장(안 이후 로소 보이는 문장)

 

단순히 장사하고 남은 빵만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 하루에 찐빵 300개를 만들면 100개 정도를 이웃과 나눴는데, 그에게 찐빵 장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면 장사에 차질에 생기는 것쯤은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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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3년에 창업했다. 14년차 회사다. 10개 창업 기업 중 4곳은 1년 내 문을 닫고 절반은 2년 이내 폐업을 하며 10년 이상 생존율이 13%라고 하니(신용보증기금, 2014년), 수명으로 본다면 선방한 셈이다. 14년 동안 오만 가지 일이 있었고, 흥과 쇠를 왔다 갔다 했고, 맑음보다는 흐림이 더 많은 것 같았으며, 지금도  월급 날만 다가오면 속이 새카맣게 타는 신세지만 직원 월급, 이자, 세금의 연체가 지금 이 시점에서는 없는 것만으로도 홀로 살짝 신통해지려 한다. 

 

슨 연고인지 내가 머물렀던 회사들이 하나 같이 승승장구 하고, 그 곳에 있던 동기들이 벼락 부자가 되거나 갑의 권세를 누리게 되었을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회사를 퇴사하고 창업한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다. 설령 후회가 무지막지하게 된다 해도, “엄청 후회돼요”라는 말은 약이 올라서라도 안 했겠지만, 사실만을 놓고 본다 해도 젊어서 창업한 것은 잘 했다는 생각을 매번 했던 것도 같다. 

 

따박따박 월급 받는 안정감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저지를 수 있는 자유로움을 사장이 아니라면 어찌 누릴 수 있었으랴. 월요일 오후 2시, 일하기 너무 싫다고 직원들 다 끌고 소래포구를 가는 도발을 사장이 아니면 어찌 벌릴 수 있었으랴. 다만, 몇 년 전 『사장의 본심』이라는 책을 내고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하는데, 느닷없이 어느 남성이 손을 번쩍 들더니, “회사를 크게 키운 사장도 아니고, 성공한 사장도 아닌데, 이런 책을 낸다는 것이 좀 부끄럽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을 한 이후로, 작은 회사 사장은 어디 가서 명함도 잘 못 내미는 더러운 세상이라며 의기소침했지만, 그럼에도 회사를 크게 키우고 싶은 욕망은 생기지 않았다. 작더라도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명랑하게 일하고 마음껏 도발하며 빵을 나눠먹는 부족을 꿈꿨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라는 것을 사장 초기에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돈으로 고민하고 사람 때문에 머리 아프고, 미래가 불안해 잠을 못 이루는 것은 배고픔처럼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사장의 일상이었고, 어제 함께 일했던 사람이 내일 다른 곳에서 내 욕을 하는 배신과 불필요하게 생긴 사장과 직원 간의 오해,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경쟁사의 반칙들이, 상대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내가 저들에게 죽일 놈일 것이라는 자책감까지 생기게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낮의 삶과 밤의 삶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소설가를 꿈꾸던 동사무소 직원이 낮에는 밥벌이로 일을 하고 밤에는 책 속에 묻혀 본격적인 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어느 때 부터인가 내가 딱 그 짝이었다. 낮의 지옥과 밤의 천국,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사장일과 잠시라도 그것을 잊기 위해 탐닉하는 밤의 독서 그리고 글쓰기. 이러하니 한번 굴린 회사를 멈추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을 뿐, 나에게 회사를 크게 키우고 싶은 동력이라거나 기업의 의미 따위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올해부터 누군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아주 큰 기업을 만드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전에는 소설을 한 권 쓰는 것이라 했는데 완전히 꿈이 바뀐 셈이다. 회사가 대박 아이템을 잡은 것일까? 네버. 순실 씨 같은 큰 손 스폰서를 잡은 것일까? 전혀. 그냥 단순한 이유였다. 어느 순간 50살이 됐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력적으로 일할 시기가 길어야 10년 인 것 같고, 그렇다면 아직 눈 잘 보이고 기억력도 큰 무리 없고 체력도 남아있는 동안, 사업가로서 업적 하나는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한 것이 이유의 전부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사람이 그 전에 그냥 시들하게 생각했던 어떤 일에 강렬한 집착을 보이는 심리 같은 것이라 할까? 그러나 그냥 딱 그 정도의 낭만적 서원에서 더 진도가 나가지는 않고 있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거나, 그렇게 되었을 때 어떤 행복이 있다거나, 최소한 내가 한 일이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나는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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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근 그 막연한 꿈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 권의 책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 대전의 빵집, 성심당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이 그 책이다. 대전에 사는 후배가 내 회사에 놀러 올 때마다 사가지고 온 것이 튀김 소보루와 판타롱 부추빵이다. 내가 간혹 대전에 출장을 가게 되면 대전역에서 길게 늘어선 줄에 동참한 후 반드시 사가지고 오는 빵도 성심당 빵이다. 그만큼 빵이 맛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올해 60살이 된 이 집의 역사도 빵만큼이나 속이 꽉 차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흥남부두 피난민이었던 창업자가 사과 23알을 살 돈만을 가지고 거제로 내려왔다가 운명처럼 대전으로 터를 옮기게 되고 성당에서 받은 밀가루 두 포대로 찐빵 장사를 시작했다가 대전역 앞 천막 성심당을 거쳐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빵집으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책 속에 담겨있다. 대전의 대표 빵집으로 승승장구하다 2005년 불이 나서 최대의 위기를 겪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 재기에 성공한 후 눈부신 혁신과 도전을 하는 모습이 더 없이 진솔하고 뭉클하며 훈훈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이 책에서 내가 얻은 가장 인상적인 키워드는, 책의 표지에도 등장하는 ‘모두가 행복한 경제’라는 말이다. 빵 하나를 나눠 먹더라도 남보다 내가 더 많이 먹어야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을 터인데, 어떻게 모두가 행복한 경제라는 말이 가능할까? 그런데 성심당이라는 기업은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바로 성심당의 임영진 대표와 그의 아내 김미진 이사가 가톨릭 교회의 사회운동이라 할 수 있는 ‘포콜라레(Focolare?벽난로) 운동’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콜라레는 2차 대전 중 이탈리아에서 시작됐고 따뜻한 가족공동체, 형제애, 이타주의적 삶 등을 핵심가치로 삼는다. 경제에 있어서는 EoC(Economy of Communion) 철학을 행동화한다. EoC에서는 기업이 경영을 통해 공동선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본주의의 핵심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업이 바뀌어야 하고, 기업가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며, 가난한 사람을 수혜가 아닌 존중의 마음으로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한다’를 사훈으로 정하고 사장이 이를 직원에게 발표하는 대목을 읽고 한참을 묵상했다.


흔히 서비스 업에서 '모든 이'는 손님으로 치환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부부는 '모든 이' 가 남녀노소는 물론 부자와 가난한 자, 손님과 직원, 거래처와 협력업체, 심지어 경쟁업체와 퇴사 후 개인 창업자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이 모두에게 형제애를 실현하는 것을 성심당의 경영 이념으로 선포한 것이다. (179 쪽)

 

이런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손님과 직원까지는 몰라도, 경쟁업체와 퇴사를 해서 또 다른 빵집을 차린 이전의 직원에게까지 공리의 덕목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이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포콜라레를 알기 이전부터 창업주는 빵을 가난한 사람과 나눴고 노숙자들을 위해 시식 빵을 두껍게 썰고 있으며 매장 앞 포장마차들을 위해 수돗물을 무상으로 공급한다거나 매달 3,000만 원 어치의 빵을 기부하고 회사 수익의 15%는 무조건 인센티브로 직원에게 돌려준다거나 하는 것들을 성심당은 응당 해야 할 일인 것처럼 드러냄 없이 한다.

 

 

이런 정도의 기업을 만들 수 있다면, 소설을 쓰겠다는 꿈 대신 모두가 행복한 큰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구체화 해볼 만 하지 않은가? 자본주의의 진창에서 오물을 쏟아내는 기업이 아닌 그 진창을 오히려 정화해낼 수 있는 것이 또한 기업의 기능일 수 있다면, 이건 참으로 가슴 두근거리는 도전 과제가 아닐 텐가?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으며 14년을 개똥 밭에서 굴러 온 작은 회사 사장은 이 책으로 인해 전투력 상승 중이다. 물론, 세상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큰 회사라는 것이 만들고 싶다고 만들어 질리는 없을 테지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니 나의 꿈은 유효하고 이제 시작이다.

 

모두가 행복한 기업, 이건 아무리 되뇌어도 입 안이 달다.

기업의 존재 이유로 이처럼 매력적이고 침이 고이게 하는 말이 또 어디 있을까?

 

독후 한 줄

 

# 몇 년 전 모 인터넷 쇼핑몰에서 시니어 전문몰을 만든다며 컨설팅을 의뢰했을 때, 첫 번째로 했던 말은 “폰트 14 준수” 였다. 노안의 세대들에게 깨알 같은 글씨로 상품 홍보하는 짓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이 책을 딱 펼쳤을 때 그 생각났다. 아아, 만주벌판 에서 말과 레이스하는 공룡처럼 큼직하며 시원시원한 글자들. 노안 독자들에게 행복한 나눔은 이런 글자체이리니. 출판 제위들은 본받으시길.

 

# 휴일 아침 침대에서 뒹굴 거리며 책장을 넘기다가 그만 펑펑 울어버렸다. 239쪽의 사진 한 장. 세상에 이렇게 행복한 어른들의 얼굴이 또 있을까? 맑고 순하고 여린 원형 그대로의 인간 표정, 도대체 무슨 사진인지는 직접 확인하심이. 그러나 여전히 그날 아침 눈물의 이유를 잘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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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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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딴지일보> 편집장을 거쳐 현재 노매드 힐링트래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심리에세이 《어른의 발견》,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사장의 본심》, 《남편의 본심》, 여행서 <<시가 있는 여행> <발리> 등의 책을 썼다. 또한 주요 매체들에 ‘윤용인의 심리 사우나’, ‘아저씨 가라사대’, ‘남편들의 이구동성’ 등 주로 중년 남성들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럼을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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