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남인의 직장언어 탐구생활
무능한 상사에게 직언하기
내가 이러려고 직장인이 됐나?
상사에 대한 습관적인 투덜거림과 직언을 혼동하지 말자. 싸움닭이라는 불명예와 함께 ‘너나 잘하세요’라는 반격을 받을 수 있다.
“팀장님, 죄송하지만.. 지난번 섭외 지시하신 디자이너는 결국 불참 통보해왔습니다. ㅠㅠ 현재 대안이 없는데요. 매번 시간을 너무 촉박하게 주시는 것 같습니다...ㅜㅜ”
이메일을 쓰던 김 과장은 노트북을 홱 닫아버렸다. 대체 내가 왜 죄송하단 말인가. 과도한 자신감과 서툰 판단에 근거해 상사는 오만 가지 일을 벌였고 그로 인한 피해를 수습하는 건 팀원들 몫이었다. 내가 이러려고 직장인이 됐나? 50명 남짓한 회사에서 다면평가는 배부른 소리고 팀장과 사장은 심지어 고교 절친이었다.
무능한 팀장의 원군은 영혼 없이 자신을 과잉 적응시키는 예스맨들이었다. “바른 소리 해 봤자 바뀌겠어요? 부딪히는 거 피곤하니 시키는 대로 할래요.” 뭘 시키면 표정부터 바뀌는 직원들은 팀장 눈 밖에 났다. 그런 ‘근성 없고’ ‘만사에 투덜대는’ 직원들은 투명인간 취급하면 혼자 씩씩대다 회사를 나가기 마련이었다.
무능한 상사들의 공통점? 그것은 잘 듣지 않는(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지위에 도취돼 그른 판단을 내리거나 선별해 들을 능력이 없어 꼭 필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이런 상사에게 매번 꿀 바른 말만 하다가는 그의 하수인이 되어 고립되거나 부당한 대우를 각오해야 한다. 싫은 일을 떠맡거나 져도 되지 않을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가시 송송 박힌 쓴소리는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해야 할 때가 있지만 쉽지 않다. 무능한 상사일수록 자신의 지위가 손상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격지심도 강하기 때문이다.
핵심 목표에 집중하라
욱! 할 때는 잠시 멈추자. 나는 왜 직언을 하려 하는가? 뭔가 구실 삼아 “당신이 싫다”는 걸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서? 아마추어 상사에게 내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런 내밀한 욕구를 들킬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괜찮지만 그게 아니라면 핵심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그의 승인이나 결제를 얻어내야 하는 건지, 상사의 불합리한 지시나 무모한 프로젝트를 피해가야 할지... 피해자 앵글에 갇히면 상대를 더욱 악마화하게 되고 협상이나 절충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부지불식 밀어 넣기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가타다 다마미는 『나쁜 상사 처방전』에서 “프로들은 상사의 근원적 인정 욕구나 자격지심을 달래서 상대를 컨트롤한다”고 했다. 무능한 상사의 마음에는 ‘과거의 성취(내가 왕년에 말야~)’ ‘내가 특별하다는 의식(내가 누군지 알고?)’ ‘자신의 무능을 숨기고 싶음’(무시당하면 어쩌지) 이 숨어 있다. 이 중 한가지만 건드려도 대화는 진전되지 않는다. 이 때, ‘우리는 당신만큼 뛰어나지 않다’는, 부드러운 식빵 같은 어법을 활용해 그 사이에 쓴소리를 끼워 상대가 꿀꺽 삼키게 해보자. “부장님이 주신 인풋에서 착안한 건데요~” “과거 제가 팀장님에게서 배운 게 있다면~ 입니다만”
상사의 뜻에 반대하거나 지시를 거부할 때는 ‘시키는 대로 했다가 잘 안되면 윗사람인 당신에게도 피해가 갈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겨야 한다. “지금 서둘러서 실수가 생긴다면 과장님께도 안 좋을 수 있으니 시간을 더 주시는 게 어떨까요?” 상사의 상사를 언급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지난번 옆 팀도 비슷한 보고를 했는데 상무님이 돌려 보내셨답니다”
팩트로 말하기
남이 해놓은 성과를 채가거나 도통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든가, 거짓말이나 폭언 등 성품 자체가 무능한 경우가 있다. 이 때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상사의 상사에게 달려가는 것이다. 세상에 비밀은 없으며 고발자는 언젠가 밝혀진다. 게다가 상사의 상사는 당신을 고마워하기보다 ‘언젠가 나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는’ 배신자로 여길 수 있다.
도저히 출구가 없다면 HR이나 상사의 상사에게 이야기하되 당신이 느끼는 불안과 좌절감을 이야기하지 말라. 대신, 상사의 무능함이 조직에 어떤 해를 가하고 있는지 팩트로 말하라. ‘부당하다’ ‘비겁하다’ 같은 형용사는 비난으로 들리지만 ‘얼마의 손실’ ‘고객의 강한 항의’ ‘팀원의 심리치료’ 같은 팩트는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상사에 대한 습관적인 투덜거림과 직언을 혼동하지 말자. 싸움닭이라는 불명예와 함께 ‘너나 잘하세요’라는 반격을 받을 수 있다. 대신, 조용히 팩트를 수집해 기름기를 빼고 직언의 주기까지 조정한다면 모두가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일 것이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사회부에서 각종 사건사고를 취재하는 경찰기자, 교육 이슈를 다루는 교육기자로 일했으며 문화부에서는 서평을 쓰며 많은 책과 함께했다. 다른 의미 있는 일을 찾아 2013년 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HR Communication을 담당하다 현재 SK 주식회사에서 브랜드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과장을 시작으로 차장, 부장을 압축적으로 경험했고 그 사이 한 번의 이직까지 겪으며 다양한 장르와 층위의 ‘내부자의 시선’을 장착할 수 있었다. 기자였다면 들을 수 없었던, 급여를 받고 노동을 제공하는 ‘우리’가 일하고 관계 맺고 좌절하고 성취하는 진짜 이야기들을 책『회사의 언어』에 담았다.
<가타다 다마미> 저/장윤선> 역2,97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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