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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불안 해본 사람이 제일 잘 안다
『몽키 마인드』
이 책은 엄청나게 자잘한 에피소드와 삶의 기억들, 자책적 평가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것이 처절하게 느껴지기보다, 웃기고 유머러스하다.
출처_imagetoday
불안해 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이 5분 정도 지나다 보면 특이한 일이 벌어진다. 같은 공간에 있고, 말을 듣고 있을 뿐인데, 나 역시 불편해지고 불안감이 올라오는 것이다. 특별히 신경 쓸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그만큼 불안은 전염력을 갖는다. 불안(不安)은 말 그대로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생존과 관련해서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기는 한데, 정확히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는 그런 상태다.
불안은 사실 생존에 이로운 면이 있다. 빨리 도망가거나, 위기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센서가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한 번 켜진 위험신호가 쉽사리 꺼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언제 어느 곳을 가더라도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문제로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을 때 ‘불안장애’(anxiety disorder)라고 진단한다.
실제 모든 사람은 조금씩 불안을 갖고 산다. 특히 현대사회의 빠른 변화와 예측 불가능성은 스트레스를 증가시키고 불안의 기초 평균값을 높였기에 일정 수준의 이상의 불안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수는 급격히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는 정상적이고 필요한 불안이고 어디서부터는 ‘병’으로 봐야 할 지는 애매하기 짝이 없다. 또 불안의 정도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개개인의 감수성과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불안으로 인한 고통의 차이는 클 수 밖에 없다. 매운 걸 잘 먹는 사람에 비해 어떤 사람은 청양고추 한 조각이 들어간 것 만으로도 맵다고 느껴서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다.
이런 개인차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불안에 둔감한 사람들은 불안해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의 감수성, 집요함, 예민함, 집착이 절실한 필요에 의해서 발달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냥 같이 있기 싫고 불편하고, 조금 도와주려다가 지쳐 짜증을 낸다. 나와 같이 불안을 치료하는 사람들조차도 만성적 불안을 갖고 있는 사람을 오랫동안 보다 보면 지칠 때가 있으니 말이다. 진료실에서 상담을 할 때에는 충분히 알아듣고, 약을 처방 받아 갔다. 매번 1주후에 보기로 한 환자가 2일후에 진료실 앞에서 안절부절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몇 달간 반복하다 보면 맷집 좋은 의사라도 지친다. 내게 불안의 소나기가 쏟아져서 내가 쓴 우산을 넘쳐서 옷이 젖는 걸 경험한다.
이런 이들의 심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왕이면 본인의 눈과 귀로 본 세상을 세세하게 알 수 있다면, 이들을 공감하고, 함께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칼럼니스트 대니얼 스미스가 쓴 『몽키 마인드』가 바로 거기에 맞는 책이다. ‘내 마음속 미친 원숭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는 원숭이 한 마리가 내 머릿속에서 날뛰고 있는 것이 불안의 실체라는 것이다. 인지치료의 창시자 ‘아론 벡’이 쓴 추천사에서는 ‘윌리엄 스타이런의 ’보이는 어둠‘이 우울증을 적나라하게 다루듯이, ’몽키 마인드‘는 불안증을 통쾌하게 해부한다’는 격찬을 했다. 이 정도로 대단한 책인가? ‘보이는 어둠’은 심한 우울증을 앓은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1인칭 시점에서 쓴 에세이로 우울증 관련 서적에서는 베스트로 꼽히는 명저 중 하나다.
여기서 일단 최소한 두 책 모두 저자가 실제로 그 병을 진하게 경험을 했다는 것에서 일치한다. ‘보이는 어둠’이 우울증이란 병의 실체만큼 어둡고 진지한 색채인데 반해 몽키 마인드는 훨씬 가볍고 어떨 때에는 유쾌하고, 빌 브라이슨 같은 미국식 유머와 자학코드가 깔려있다는 점은 다른 점이다.
저자는 회상하는데, 꽤 어릴 때부터 불안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뒤늦게 심리상담사가 된 사람으로 집에서 상담을 진행하였기 때문에 우연찮게 어머니의 상담 세션을 몰래 듣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불안과 우울에 대해 과도한 지식을 갖게 된 점도 한 몫 하였다. 갖고 있던 예민한 기질과 그에게 닥친 몇 가지 사건들은 그를 불안의 구렁텅이에 깊이 파묻히게 만들었다.
이 책은 그가 직접 상담을 받고, 또 살아가면서 저널리스트로서 기록하고 기억해낸 자신의 불안의 연대기의 세세한 기록이다. 그가 어릴 때 변기를 내리면 물과 배설물이 함께 내려가지 않고 거꾸로 솟아 오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긴 것, 씹어 먹는 비타민을 알약으로 바꾸려다가 목이 막힐 뻔한 경험들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한다. 10대 중반에 서점에서 함께 일하던 연상의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매력이 있어서 친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함께 한 여행을 가서 하룻밤 원치 않는 섹스를 하였는데 그것은 커다란 혼란과 죄책감을 가져온다. 이를 어머니에게 고백을 했는데, 어머니는 단호하게 “넌 강간을 당한 거야. 너는 피해자야”라고 정리를 해버린다.
모호한 상황이 생기면 심리상담가인 어머니는 자기 논리로 사실로 정리를 해버리고, 이는 불안과 공포의 근원으로 차곡차곡 쌓여나간다. 정식으로 상담을 받는 과정도 그의 불안을 더욱 정교하게 논리화한다. 문학을 공부하고, 저널리스트 경력을 쌓아나가면서 불안을 이해하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공부를 한다. 키에르케고르 본인이 겪은 것이 분명한 불안의 경험을 인용하며 ‘추상적인 관념조차 생생한 진실의 느낌을 담고 있고, 이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쓸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일종의 동병상련을 읽으면서 강하게 느낀 것이 분명하다.
물론 불안해야 인간이고, 이는 출발점일 뿐이지만 불안을 완전히 억제하지 않으면서 다스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매번 실패하고 괴로움 속에 허덕인 것이 실제 책 속에서 반복되는 그의 인생이었지만 말이다.
이 책은 엄청나게 자잘한 에피소드와 삶의 기억들, 자책적 평가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것이 처절하게 느껴지기보다, 웃기고 유머러스하다. 그가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한 일들, 정신치료를 받을 때 상담사와 관계, 여자친구와 진지하게 사귀어나가다가 여행을 가서 관계의 진전의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분명해” 따위의 자학적 고백을 해서 헤어진 것, 전기충격치료에 대한 글을 애틀랜틱 지에 싣고 엄청난 전국적 반응을 얻었지만 곧 소송을 당했을 때 느낀 공포등을 생동감 있게 전한다.
치료자 입장의 전문가가 쓴 치료사례나, 이론서가 절대 가질 수 없는 일인칭 시점의 글이 갖는 장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에 더한 장점이 한 가지 더 있으니, 불안해하는 사람의 기억력은 특정한 영역에서 매우 탁월하다는 것이다. 책을 외우는 것은 특별히 차이가 안 나거나, 시험스트레스로 인해 도리어 떨어질 수 있다. 불안과 관련한 일이나 주변 상황에 대해서는 아주 아주 생생하게 오랫동안 기억해낸다. 불안이란 생존과 관련한 것이니 그때 일을 잘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다시 그 일이 벌어질 때 기억해내서 잘 대응할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잊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게 당연하다. 대니얼 스미스의 이 책은 아주 어릴 때의 기억부터 현재까지 본인에게 일어난 많은 사건들을 참 맛깔 나고 실제같이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는데 참혹하고 보고 있으면 함께 불안해지기보다 재미있는 한바탕 소란을 보는 느낌이 먼저다. 저자가 이제는 불안을 다스리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힘이 성장을 한 다음에 이 책을 썼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한다.
그는 불안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 잃은 후에 다음과 같이 고심한다.
“불안의 불확실성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또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내 감정에 영향을 주거나 감염되지 않도록 불안을 내 안에 단단히 막아두는 방법을 말이다. 나는 불안으로부터 사랑을 지키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사랑에 빠진 불안한 사람은 자기학대자는 물론이고 박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애정에 굴복해 순진한 사람을 오염구역에 끌어들인다. 심리적인 자학이 심리적 폭행이 된다. 사랑을 할 때 불안은 피해자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치열한 반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실천을 반복하면서 수 년 동안 반복은 악화와 회복을 반복하였지만 서서히 나아지는 과정을 거쳐간다. 다시 헤어진 여성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악화된 상태는 점점 짧아지고 회복기는 길어지며, 책임감을 붕괴에 대비한 방어벽으로 삼아 전에 비해서는 잘 버텨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자신을 끈질기게 추락시킨 장본인은 외부에 있지 않았고 바로 자신이었다는 본질적인 면을 드디어 깨달음은 그가 그 과정을 거치면서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불안한 사람과 함께 하는 사람들, 나의 불안의 실체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한번 그 안에서 푹 빠져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사람의 마음속을 여행해보는 체험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러기에 좋은 책이 『몽키 마인드』다.
몽키 마인드대니얼 스미스 저/신승미 역 | 21세기북스
‘몽키 마인드’는 ‘원숭이처럼 날뛰는 불안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불교의 ‘심원의마(心猿意馬)’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 말은 불안장애를 겪는 이들을 명쾌하게 정의함으로써 이들을 현실로 이끌어냈다. 이 책은 불안장애로 고통받는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불안을 잘 이해하게 해주었다.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대니얼 스미스> 저/<신승미> 역13,5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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