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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난 집에 기름 붓는 사과는 이렇게

상대가 받아들이는 사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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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실패의 잔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의 진전 상황을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 당신은 ‘가해자’가 아닌, 상황을 주도하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사람으로 비춰질 것이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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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만 틀면 다양한 형태와 스케일의 사과가 쏟아진다. “제가 가정주부로 집에만 있다 나와서 전문성이 부족했습니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국회 청문회장에서 이 한마디와 함께 눈물을 훔쳤다. “부디, 나의 철 모르는- 뜨거운 생에 대한 갈망을 접으면서 드리는 진정한 맘으로 받아주세요.” 소설가 박범신 씨는 성희롱 논란 이후 SNS를 통해 심경을 밝혔으며, 대통령마저 방송을 통해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저로서는 더 꼼꼼하게 챙겨 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국민 여러분께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심려를 끼치고…(중략)”

 

실망과 함께 어떤 강렬한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죄송한데 제가 갑자기 몸살 기운 때문에 마감을 못 지켰어요.” “이 대리를 위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내가 전문성이 부족해서… 이거 어쩌지?” “본의 아니게 이렇게 됐지만, 옆 팀도 제때 자료를 안 줘서 그런 거니 이해해주세요.” 언뜻 사과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자기 방어고 ‘난 이제 손 떼겠다’는 무책임이다. 듣는 사람의 속을 뒤집는 사과는 다음 세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폭탄 던지기


최은영 전 한진회장의 ‘전문성이 부족했다’는 자각은 실패의 전조가 감지될 때 나왔어야 했다. 복구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는 사과는 ‘이제 네가 해결해’라며 던지는 폭탄이나 다름없다. 몸살기운이 느껴지면 상대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 대안을 찾게끔 하고, 전문분야가 아닌 데 대한 요청을 받았으면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선을 그어야 한다. 

 

나, 나, 나


나도 노력은 했다느니, 원래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느니, 일이 그렇게 될 줄 몰랐고 나도 힘들다느니 하는 자기 합리화는 곪아 있는 상대의 속을 아예 썩게 만든다. 상대는 내 심리나 상황에 아무 관심이 없다. 어서 피해를 수습하기 바랄 뿐이다. 비난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잠시 접고 내 잘못으로 인해 신음하는 상대에게 집중하자. 상대가 어떤 심정일지 지금 원하는 게 무엇일지 신속히 파악해야 한다. 

 

무릎이라도 꿇을까?


최 전 회장은 “사과에 진심이 안 느껴진다, (피해복구를 위해) 추가로 사재 출연을 하라”는 국회의원들의 성토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그건 어렵겠다”는 단호한 거절. 아마추어는 사과를 ‘내가 얼마나 미안한지’ 표현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이지만, 프로들은 사과의 무게를 안다. 사과는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책임지겠다는 선언이다. 사태를 완전히 복구시킬 수는 없더라도 최선을 다해 대안을 찾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실수는 누구나 저지를 수 있지만 사람들이 보는 것은 그 이후다. 책임지고 행동하는 사람에게만 관계 회복의 기회가 주어진다. 

 

KAIST 정재승 교수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가 쓴 『쿨하게 사과하라』는 제대로 된 사과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미안하다라는 말 뒤에 ‘하지만’ ‘다만’ 같은 말은 붙이지 말자.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 사과할 때는 ‘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래야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확실히 인식하고 있음을 상대도 알게 된다. 그런 후, 책임을 인정하며 앞으로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개선의 의지나 보상 의사를 밝혀야 한다.”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이일수록 보상보다는 공감을 원할 수도 있다. 나의 잘못으로 인해 상대가 얼마나 속상할지 어떤 피해를 입었을지 구체적으로 표현해보자. 문제 해결을 위해 상대가 무엇을 바라는지도 물어봐야 한다.

 

어렵지 않다. 어릴 적 엄마 몰래 학교 수업을 빼먹었다든가 하는 잘못을 수 차례 저지르고 난 뒤 어머니 입에서 후렴구처럼 나온 세 마디 말만 떠올리면 된다.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긴 아냐?”(잘못 인정) “네가 내 마음을 알아?”(공감과 위로) “잘못했다면 다니?”(개선과 보상 의지)

 

<하버드 비즈니스리뷰>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잘못을 저지른 ‘옛 자아’와 확실히 선을 긋고 비슷한 행위를 저지르지 않을 ‘새 자아’를 창조하라고 조언했다. 어느 선까지 변화할 수 있는지 먼저 파악하고 나로 인한 피해가 복구 가능한지, 대안은 무엇이며 언제 어떻게 완료 가능한지 설명하자.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실패의 잔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의 진전 상황을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 당신은 ‘가해자’가 아닌, 상황을 주도하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사람으로 비춰질 것이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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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남인(<회사의언어> 저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사회부에서 각종 사건사고를 취재하는 경찰기자, 교육 이슈를 다루는 교육기자로 일했으며 문화부에서는 서평을 쓰며 많은 책과 함께했다. 다른 의미 있는 일을 찾아 2013년 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HR Communication을 담당하다 현재 SK 주식회사에서 브랜드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과장을 시작으로 차장, 부장을 압축적으로 경험했고 그 사이 한 번의 이직까지 겪으며 다양한 장르와 층위의 ‘내부자의 시선’을 장착할 수 있었다. 기자였다면 들을 수 없었던, 급여를 받고 노동을 제공하는 ‘우리’가 일하고 관계 맺고 좌절하고 성취하는 진짜 이야기들을 책『회사의 언어』에 담았다.

쿨하게 사과하라

<정재승>,<김호> 공저12,6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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