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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의 배우 이창엽
너무 잘 생겨서 웃음이 난다!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의 배우 이창엽
고종에 대해 나름 공부를 많이 했어요. 사료에서는 대부분 우유부단한 면이 많이 드러나는데, 저는 그것이 고종이 쓰고 있는 가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가 1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릅니다. 꽤 많은 사진을 남긴 고종과 달리, 사진 찍는 것 자체를 싫어했던 것으로 알려진 명성황후. ‘왜 명성황후의 사진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을까?’ 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잃어버린 얼굴 1895>는 가상 인물과 픽션을 더해 역사적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명성황후의 또 다른 면을 바라보죠. 2년 만에 무대로 돌아오는 김선영 씨가 명성황후를 맡아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자는 <잃어버린 얼굴 1895>의 캐스팅을 확인한 뒤 아직은 턱없이 모자란 경력으로 베테랑 여배우와 마주해야 할 그가 단박에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고종 역을 맡은 이창엽 씨인데요. 올해 스물여섯 살, <잃어버린 얼굴 1895>가 그의 두 번째 무대라면 공연계가 이 배우를 얼마나 눈여겨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겠죠? 그래서 기자도 이창엽 씨를 만나러 서울예술단의 연습실이 있는 예술의 전당으로 직접 찾아가봤습니다.
“서울예술단이 추구하는 가무극, 서울예술단만이 할 수 있는 한국적인 예술, ‘그 무대에 내가 선다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많이 상상하고 기대했거든요.”
그런데 쉽지 않은 작품이네요. 데뷔작이었던 <마마 돈 크라이> 역시 무난하지 않았잖아요.
“<마마 돈 크라이>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압박감이 심해서 제가 44회 공연을 했는데 10회 차 전까지는 공연 전날 악몽을 꿨어요. 가장 중요한 넘버에서 큰 실수를 하는 꿈이었는데, 그 넘버 제목이 ‘달콤한 꿈’이었어요(웃음). 호불호가 분명한 작품이라 상처도 많이 받았죠. 다음 무대에서는 연기적인 부분에 좀 더 집중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됐어요.”
고종이라는 역할 자체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박영수 씨가 다져놓은 고종 캐릭터도 강하고요.
“사실 그 부분이 많이 고민됐어요. 이지나 선생님도 영수 선배님과 같이 가려고 하지 말고 저만의 캐릭터에 도전해보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고종에 대해 나름 공부를 많이 했어요. 사료에서는 대부분 우유부단한 면이 많이 드러나는데, 저는 그것이 고종이 쓰고 있는 가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물이 나이보다 어려 보여서 고종을 연기하기에는 외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닌데, 다행히 앞머리를 올리면 확실히 나이가 들어 보여요(웃음). 제가 뿜어낼 수 있고, 쓰임이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지금 작품에 저를 불러주신 거라 생각해요. 평소에 인간이 갖고 있는 두 얼굴, 이면의 슬픔에 관심이 많거든요. <마마 돈 크라이>, <잃어버린 얼굴 1895> 같은 경우 그런 면을 드러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명성황후를 맡은 김선영 씨가 대선배라서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요(웃음)?
“부담보다는 영광이죠. <마마 돈 크라이>를 할 때도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선배님들과 한 무대에 설 수 있어서 영광이었는데, 이번에도 굉장한 선배님이 계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폐를 끼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는데, 그 생각이 오히려 더 부담되더라고요. 제가 연기적으로 편해지지 않으면 선배님도 힘드시고요. 그리고 김선영 선배님이 워낙 편하게 대해주세요.”
<마마 돈 크라이>는 2인극이지만, <잃어버린 얼굴 1895> 에서는 서울예술단 단원들과 작업하잖아요. 공연장 규모는 물론이고 여러 배우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도 낯설 텐데요.
“맞아요. 2인극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잖아요. <마마 돈 크라이>에서는 내가 마주하고 있는 상대 배우의 눈빛, 그 호흡을 놓치면 100분이라는 시간을 끌어갈 수 없기 때문에 집중하는 힘을 많이 길렀던 것 같아요. 반면에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수십 명이 함께 하는 작품이라서 전체적인 흐름을 깨뜨리지 않도록 에너지를 운용하는 방법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있어요. 모두와 어우러지는 그런 조화를 공부하는 게 행복하고요.”
사실 최근 몇 개월 동안 남자배우들로부터 ‘이창엽 씨가 잘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날 정도라고 칭찬하던데요.
“저를 행복하게 해주시려고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잘 생겼다는 걸 부인하는 건가요(웃음)?
“엄... 정말 민망하고요, 부모님께서 주신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그럼 질문을 바꿔서 어려서부터 외모가 훈훈하면 자연스레 배우를 꿈꾸게 될 때가 많잖아요. 그런 케이스인가요?
“아니요, 저는 10년 정도 컴퓨터 공부를 했어요. 고등학교 때 연극을 보고 무대에서 호흡하는 모습이 인상 깊어서 청소년 극단도 따라다녔지만, 하고 싶은 건 대학에 가서 하라는 부모님 말씀에 공대에 입학했고요. 그 학교 연극 동아리 오디션을 봤는데 처참하게 떨어졌던 기억도 있어요. 그러다 서울에 가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뒤늦게 한예종에 들어가서 아직 학교 다니고 있습니다.”
첫 배역이 <마마 돈 크라이>의 뱀파이어였는데, 캐릭터는 물론이고 의상이며 분장이 예사롭지 않잖아요. 주위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부모님도 보셨는데 별 말씀을 안 하시더라고요(웃음). 친구들은 나중에 배꼽 잡고 웃었어요. 매혹적이고 멋있는 인물이잖아요. 맨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뛰어다니던 애가 무대 위에서 그러고 있으니까. 저도 민망했고요(웃음).”
배우가 된 건 실감하나요? 팬들도 생겼을 텐데요.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디 가서 배우 이창엽이라고 말도 하지 않고요. 배우라는 아른거리는 단어를 잡기 위해 살고 있는데, 그 타이틀을 얻는 것 보다는 제가 하고 있는 연기를 하면서 행복하다는 마음을 갖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정말 든든한 응원군은 생겼죠. 언제나 내 편인 팬 분들이 생겨서 좋아요.”
배우를 꿈 꾼 만큼 꼭 해보고 싶은 작품도 있겠죠?
“<헤드윅>은 항상 하고 싶은 작품이라고 떠들고 있어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떠들고 다니라고 하잖아요. 사실 어떤 작품을 봐도 연기를 공부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서울예술단의 <윤동주, 달을 쏘다.>도 꼭 해보고 싶은데, 이건 <잃어버린 얼굴 1895> 끝나면 떠들고 다니려고요. 지금은 선배님들도 계시니까(웃음).”
배우로서 출발이 좋은데, 지금 하는 생각들이 나중에 돌아오면 초심이잖아요.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나요?
“저도 요즘 초심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요. 여행을 좋아하거든요. 돈이 없고 힘들어도 여행지에서 마시는 공기, 그곳에서 바라보는 한적한 오후의 하늘은 청춘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산뜻한 설렘이 있잖아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적당한 설렘을 줄 수 있는 매력적인 배우요. 무엇보다 어떤 작품이든 가리지 않고 행복하게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웃음).”
기자에게 이창엽 씨는 꽤 흥미로운 인터뷰이였습니다. 평소에는 친구들과 한강에서 맥주 마시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지만, 비 오는 날에는 포장마차에도 즐겨 간다는 이창엽 씨의 내적 나이를 가늠하기가 힘들었거든요. 게다가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답변을 잘해서 따로 트레이닝을 받았나 의심이 될 정도였습니다. 데뷔 1~2년 차 배우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니까요. 공식적인 대화가 끝나고도 10여 분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여유까지 보여주는데, 왠지 반쪽짜리 인터뷰만 했다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그가 배우로서 주목하고 있다는 사람의 두 얼굴... 이창엽이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두 얼굴은 어떤 것일까요? 결국 무대에서 수많은 옷을 갈아입게 될 배우 이창엽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이창엽 씨의 새로운 얼굴을 확인해 보시죠!
관련태그: 배우, 이창엽, 잃어버린 얼굴1895, 가무극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