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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을 꿈꾸는 양성애자, 프랭크 오션
열반을 꿈꾸는 양성애자, 프랭크 오션 〈Blonde〉
화자가 서술한 개인적 서사들과 감정의 변천들은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의 상실감과 불안감에 위로가 될 것이다. 분명히.
<Blonde>는 프랭크 오션의 자위행위에 가깝다. 전작 <Channel Orange>가 부패해버린 미국 사회와 소시민들의 행태를 전지적인 입장에서 서술한 작품인 반면, 음반엔 지극히 개인적인 텍스트로 가득하다. 집단에서 개인으로, 외부에서 내부로 주체를 옮겨가는 과정을 통해 화자의 연약한 심리상태와 이를 감추기 위한 위로의 과정들이 섬세한 단어들과 어구들을 통해 낱낱이 드러난다. 특히 약물에 대한 화자의 관념과 태도가 전작과 다르게 다가온다. 전작에서의 약물은 급격한 팽창의 과정을 겪은 사회의 부도덕한 단면을 비추는 상징으로써 사용되었다면, 음반에서의 약물은 그저 사랑과 이별에 취약한 화자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한 도구로써 작용한다. 「Be yourself」에서의 음성이 그토록 고취했던 약물에 대한 경각심을 받아들이면서도, 높은 피치의 음성으로 변조된 「Nikes」의 초반부나 마리화나를 흡입하고 있음이 직설적으로 표현된 「Solo」와 같은 트랙들로 자신이 약물과 떨어질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탄식한다.
화자는 양성애자다. 커버엔 흰 피부와 금발을 가진 남성을 일컫는 ‘Blond’가 적혀있고, 금발의 여성을 뜻하는 ‘Blonde’가 공식적인 이름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 이를 대변한다. 동성애와 관련되어 상당히 보수적인 힙합과 알앤비 씬에서 높은 위치에 올라갔음에도 아직까지도 불가항적인 죄의식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이는 그는 종교적인 탄압과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으로부터의 탈출, 즉 열반을 꿈꾸고 있다. 이러한 고뇌로부터 일시적인 해방을 선사하는 것 또한 그가 손에 쥐고 있는 약물이다. 온갖 치부로 점철되는 선택들은 그에게 불투명한 희망을 곁눈질할 기회를 선사하며, 농담조가 섞인 저속한 단어들을 통해 그 감상을 표현한다.
작가가 아닌 음악가로서의 그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 비교적 기시감이 드는 「Pink White」와 「Solo」, 「Self control」을 제외하고는 귀에 쉽게 들어오는 후렴구도 적고 구조의 경계도 뚜렷하지 않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선율감과 미니멀한 사운드는 당혹감을, 도전적이고 전위적인 기운들은 이질감을 선사한다. 전형적인 알앤비의 얼개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힙합의 요소들을 전작보다 적극 수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애매모호함이 음반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같은 장르 뮤지션으로 여겨지는 위켄드(The Weeknd)의 <Beauty Behind The Madness>가 대중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면, 프랭크 오션의 새 음반은 오히려 대중에 무심한 뉘앙스를 취한다.
그럼에도 프랭크 오션의 내면세계가 투영된 음악은 다시금 아름답다. <nostalgia, ULTRA>와 <Channel Orange>가 그랬듯, 그는 개인적인 서사를 음악으로 그려내는 데에 도가 튼 뮤지션이다. 다변의 보컬 톤과는 달리 굉장히 정돈되고 깔끔한 프로듀싱을 들려주는데, 여기서 프로듀서로서의 프랭크 오션의 역량이 빛이 난다. 기타 톤의 변화를 통해 짙은 심연을 그려낸 「Skyline to」, 중반부의 변주를 통해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Nights」 등, 사운드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몽환적인 오르간과 기타 연주는 스토리텔링의 색조와 인상적으로 부합한다. 특히 미래를 전망하는 비관적인 시선과 희망의 메시지가 역설적으로 뒤섞인 「Futura free」에선 드럼 비트 하나만으로 감동을 연출한다.
실패의 정서를 오롯이 담아내는 프랭크 오션표 알앤비는 <Blonde>를 통해 한 층 더 깊어졌으나 더욱 어려워졌다. 흡입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음반은 이성보다 감성의 적극적인 대입을 요구한다. 핵심은 논리적 비약과 메타포가 난무하는 가사와 이에 수반하는 프로듀싱에 있다. 화자가 서술한 개인적 서사들과 감정의 변천들은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의 상실감과 불안감에 위로가 될 것이다. 분명히.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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