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윤하정의 공연 세상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
객석에서
19세기 유미주의(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이를 추구하는 문예 사조)를 대표하는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 국내에서 뮤지컬로 제작돼 첫 선을 보였다.
19세기 유미주의(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이를 추구하는 문예 사조)를 대표하는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 국내에서 뮤지컬로 제작돼 첫 선을 보였다. 런던 사교계에 등장한 아름다운 청년 도리안 그레이. 이상주의자인 화가 배질은 아름답고 순수한 도리안의 모습을 초상화로 담아내지만, 도리안은 쾌락주의자인 헨리의 영향을 받아 초상화 속 영원한 젊음을 간직한 자신의 모습에 영혼을 바친다는 내용이다. 전작인 <데스노트>부터 원 캐스팅을 고집하는 씨제스컬쳐의 두 번째 창작뮤지컬인 데다 티켓파워 1위를 자랑하는 김준수를 비롯해 박은태, 최재웅 등 좀처럼 한 무대에서 만나기 힘든 존재감 있는 배우들이 이름을 올려 개막 전부터 더욱 기대를 모았던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 지난 9월 6일 공연은 일반 관객을 받지 않고 통 크게 기자들에게만 공개했는데 무대는 어땠을까? 객석에서 동료들과 나눴던, 인터미션 때 주위에서 들었던 내용을 토대로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에 대해 관객들이 나눌 법한 이야기를 각색해 보았다.
B구역 6열 9번 : 김준수 씨 나오는 공연을 한 번도 못 봐서 궁금했는데 뭐랄까, 아주 복잡 미묘한 감정이야. 허스키한 음색에 과도한 바이브레이션이 자꾸 신경 쓰이는데 이상하게 무대 장악력이 있네.
B구역 6열 10번 : 1막 때는 확실히 거슬리는데 2막부터는 중독된다니까. 어느덧 ‘저렇게 온몸으로 노래하다 쓰러지는 건 아닐까, 막공까지 무사히 가야 하는데...’ 걱정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야.
B구역 6열 9번 : 1막 마지막 넘버 ‘Against Nature’에서 앙상블과 춤출 때는 정말 멋지더라. <동방신기>의 시아준수를 보는 것 같았어. 아이돌 출신 배우가 아니면 도저히 출 수 없는 안무잖아.
B구역 6열 10번 : 그 무대세트도 근사했지. 이 작품이 1884년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그런 안무를 도입한 건 무척 과감한 시도인 것 같아. 이지나 연출답다고 할까. 하긴 김준수 본연의 음색과 창법이 뮤지컬 무대에서 배척받지 않고 오히려 특별한 관람 포인트가 됐다면 아이돌 댄스 실력 역시 그만이 가진 강점이 아니겠어?
B구역 6열 9번 : 그렇지, 게다가 요즘 수많은 아이돌 가수들이 뮤지컬 무대에 서고 있으니 김준수의 이번 무대가 하나의 기폭제가 되지 않을까? 이제 다른 작품에서 다른 아이돌 출신 배우들도 칼군무를 선사할지 모른다고. 그런데 사실 그 마지막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좀 지루했어. 아름답고 순수한 청년 도리안을 표현해야 해서 그런지 김준수의 음색도 어색하고 행동도 부자연스럽고. 작품 자체가 관객에게 캐릭터를 강요하는 느낌이랄까.
B구역 6열 10번 : 좀 부자연스럽긴 한데, 그래서 2막에서 타락한 도리안이 더 부각되는 거겠지. 김준수의 원래 음색과 창법도 2막의 캐릭터를 훨씬 극대화하고. 장편소설을 러닝 타임 2시간 30분의 무대로 옮기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아. 게다가 이 작품은 ‘죄의식 없는 쾌락을 통해 완벽한 인간이 되려다 타락한’ 도리안의 변화를 담아내야 하잖아. 그래서 1막은 확실히 개연성이 부족했어. ‘이런 일이 있었다’를 알려주기 위해 쉼 없이 장면이 전환되잖아. 영화로 치자면 롱 테이크의 멋을 발견할 수 없는 작품처럼. 관객들이 찬찬히 지켜보고 공감할 시간을 주지 않는 거지.
B구역 6열 9번 : 김준수 씨에 비해 다른 배우들의 비중도 상대적으로 너무 약하지 않았어? 이렇다 할 연기를 드러낼 장면이 없잖아. 헨리 역의 박은태 씨는 몇몇의 넘버에서 가창력이라도 확실히 돋보였지만, 배질 역의 최재웅 씨는 어쩔 거야. 제대로 된 넘버도 없는 셈이야.
B구역 6열 10번 : 그러게, ‘박은태와 최재웅을 그렇게 쓰다니!’라는 생각이 들더군. 4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시빌 베인 역에 뽑혔다는 홍서영 씨도 실력 발휘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 도리안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도, 죽음을 결심할 정도로 상처 입은 과정도 너무 축약되다 보니 그렇겠지.
B구역 6열 9번 : 결과적으로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김준수를 위한 뮤지컬’ 같아. 재연될 때 과연 다른 배우가 할 수 있을까? 의상도 김준수를 가장 돋보이게 보이도록 제작됐던데 뭘.
B구역 6열 10번 : 원 캐스트이고 제작 단계부터 김준수를 생각하고 만들었을 테니까. 의상도 여타 유럽을 배경으로 한 작품과 많이 다르잖아. 원작의 시대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캐릭터의 성격에 맞게 현대적인 해석을 더했다고 해. 나쁘지 않았어. 김준수 씨가 옷을 너무 자주 갈아입어서 놀라긴 했지만. 주인공이 옷을 그렇게 많이 갈아입는 작품도 드물지(웃음).
B구역 6열 9번 : 웬만한 사람은 소화하기 힘든 옷들이고(웃음). 등이며 맨다리를 노출하기도 하잖아. 그런 차원에서는 ‘김준수 효과’를 십분 활용한 셈이지.
B구역 6열 10번 : 그 말은 ‘김준수가 없다면’ 극이 전반적으로 힘을 잃는다는 얘기이기도 하지. 정말이지 도리안이 더블이라면 누가 캐스팅될까?
B구역 6열 9번 : 또 다른 아이돌 가수가 그나마 유력하지 않을까? 그런데 다들 안 하려고 할 것 같아(웃음). 무대세트는 전체적으로 괜찮았어. 요즘은 간결하면서도 색다른 시도가 좋더라고. 체코에서 촬영했다는 영상을 더해서 굉장히 색다른 공간을 구현하잖아.
B구역 6열 10번 : 체코 플로스코비체 성이라던데, 원작이 영국이고, 작품에서도 계속 영국 얘기가 나오는데 체코에 가서 촬영한 건 좀 웃기지 않아? 유럽 사람이 보면 이야기는 조선시대인데 영상이 일본 고택인 셈이잖아. 전체적으로 모든 틀을 깨려는 시도로 이해해야 하나?
B구역 6열 9번 : 거기까지 생각 안 하면 일단 그림은 멋지니까(웃음). 그나저나 오늘 배우들 꽤 힘들었겠어. 보통 때면 관객들로 꽉 찬 공연장에서 박수갈채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을 텐데, 오늘 공연장 분위기 참 숙연하다(웃음).
B구역 6열 10번 : 이 정도면 나름 정성껏 박수는 친 거지(웃음). 기자만 모아놓고 공연 보여주는 건 별로야. 공연은 극이 아무리 좋아도, 배우가 아무리 훌륭해도, 관객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 뜨거운 마음으로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 속에서 관람해야 무대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관객의 열기와 반응도 중요한 장치니까. 특히 김준수 나오는 공연은 축구장 함성이 쏟아지는 객석 분위기가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인데 무척 아쉽네.
B구역 6열 9번 :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이래저래 김준수가 빠지면 할 얘기가 크게 줄어들 작품이구만.
관련태그: 도리안그레이, 뮤지컬, 오스카 와일드, 김준수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