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이야기가 있는 망원동 골목

김소연 시인의 「망원동」을 읽고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사진가 정택용이 시 한 편을 읽고, 시에 등장하는 동네에 가서 사진을 찍습니다.

채널예스9월호_서울망원동_정택용-(1).jpg

담장을 넘어 좁은 하늘을 뒤덮은 감나무 그늘 아래 동네 사람 하나 둘 모여 두런두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골목이 아직도 남아 있는 서울 망원동.

 

 

망원동

 

지금은 하루가
구부정히 걸어가고 있다
박스 줍는 노인처럼 뒷짐을 지고서

 

반짝이는 조약돌을 주웠다
온전한 동그라미 속 온전한 온기를
손 안에 꼭 쥐고

 

십 년 전 골목을 걸었다
여전한 감나무, 여전한 목욕탕, 여전한 놀이터
여전히 부서진 장난감들

 

인형 하나를 주웠다
눈알 하나만 없어도 악마처럼 보이는
천사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나는 소식이 필요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소식

 

너무 많은 잎들이 지고 있었지만
살려달라는 절규 같은 건
들리지 않는다
귀머거리의 수화처럼
하루종일 잎들이 떨어지고 있다

 

조금 더 어두워져야 한다
여린 불빛들을 모두 볼 수 있으려면
더 여린 불빛들로 옛집을 찾아가려면

 

아직 아무것도 도착하지 않았지만
기다리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그 자리에서 나는 기도를 멈춘다

 

십 년 전 하루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는다
무사히 밤이 온 것이다

 

- 김소연 시집 『수학자의 아침』에 수록 

 


 

 

img_book_bot.jpg

수학자의 아침김소연 저 | 문학과지성사
세 권의 시집을 통해 서늘한 중에 애틋함을 읽어내고 적막의 가운데에서 빛을 밝히며 시적 미학을 탐구해온 시인 김소연이 네번째 시집 『수학자의 아침』을 출간했다. 시인은 묻는다. “깊은 밤이란 말은 있는데 왜 깊은 아침이란 말은 없는 걸까”.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조금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정택용(사진가)

대학에서 언어학을 배운 뒤 불성실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관뒀다. 사진이 가장 쉽겠거니 지레짐작하고 덤볐다가 여태껏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개인 사진집으로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5일 헌정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와 고공농성과 한뎃잠을 찍은 《외박》이 있다.

수학자의 아침

<김소연> 저10,800원(10% + 5%)

‘그렇지 않았던 것들’을 포착해내는 아침의 감각 1993년 등단한 후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을 통해 서늘한 중에 애틋함을 읽어내고 적막의 가운데에서 빛을 밝히며 시적 미학을 탐구해온 시인 김소연이 네번째 시집 『수학자의 아침』을 출간했다. 시인은 묻는다. “깊은 밤이란 말은 있는데 왜 깊은 아침이란 말은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나의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좋을 단 하나, 사랑

임경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주인공의 일기를 홈쳐보듯 읽는 내내 휘몰아치는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자기 자신을 잃어가면서도 그 마음을 멈추지 못하는, 누구나 겪었을 뜨거운 시간을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표현해낸 소설.

매혹적인 서울 근현대 건축물

10년째 전국의 건축물을 답사해온 김예슬 저자가 서울의 집, 학교, 병원, 박물관을 걸으며 도시가 겪은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살펴본다. 이 책은 도시의 풍경이 스마트폰 화면보다 훨씬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며, 당신의 시선을 세상으로 향하게 해줄 것이다.

2024 비룡소 문학상 대상

비룡소 문학상이 4년 만의 대상 수상작과 함께 돌아왔다. 새 학교에 새 반, 새 친구들까지!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처음’을 맞이하고 있는 1학년 어린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섬세한 시선이 눈부신 작품. 다가오는 봄, 여전히 교실이 낯설고 어색한 친구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전한다.

마음까지 씻고 가는 개욕탕으로 오시개!

『마음버스』 『사자마트』 로 함께 사는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김유X소복이 작가의 신작 그림책. 사람들이 곤히 잠든 밤, 힘들고 지친 개들의 휴식처 개욕탕이 문을 엽니다! 속상한 일, 화난 일, 슬픈 일이 있을 때, 마음까지 깨끗히 씻어 내는 개욕탕으로 오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