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정택용의 책과 마주치다
담장을 넘어 좁은 하늘을 뒤덮은 감나무 그늘 아래 동네 사람 하나 둘 모여 두런두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골목이 아직도 남아 있는 서울 망원동.
망원동
지금은 하루가
구부정히 걸어가고 있다
박스 줍는 노인처럼 뒷짐을 지고서
반짝이는 조약돌을 주웠다
온전한 동그라미 속 온전한 온기를
손 안에 꼭 쥐고
십 년 전 골목을 걸었다
여전한 감나무, 여전한 목욕탕, 여전한 놀이터
여전히 부서진 장난감들
인형 하나를 주웠다
눈알 하나만 없어도 악마처럼 보이는
천사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나는 소식이 필요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소식
너무 많은 잎들이 지고 있었지만
살려달라는 절규 같은 건
들리지 않는다
귀머거리의 수화처럼
하루종일 잎들이 떨어지고 있다
조금 더 어두워져야 한다
여린 불빛들을 모두 볼 수 있으려면
더 여린 불빛들로 옛집을 찾아가려면
아직 아무것도 도착하지 않았지만
기다리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그 자리에서 나는 기도를 멈춘다
십 년 전 하루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는다
무사히 밤이 온 것이다
- 김소연 시집 『수학자의 아침』에 수록
수학자의 아침김소연 저 | 문학과지성사
세 권의 시집을 통해 서늘한 중에 애틋함을 읽어내고 적막의 가운데에서 빛을 밝히며 시적 미학을 탐구해온 시인 김소연이 네번째 시집 『수학자의 아침』을 출간했다. 시인은 묻는다. “깊은 밤이란 말은 있는데 왜 깊은 아침이란 말은 없는 걸까”.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조금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배운 뒤 불성실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관뒀다. 사진이 가장 쉽겠거니 지레짐작하고 덤볐다가 여태껏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개인 사진집으로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5일 헌정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와 고공농성과 한뎃잠을 찍은 《외박》이 있다.
<김소연> 저10,800원(10% + 5%)
‘그렇지 않았던 것들’을 포착해내는 아침의 감각 1993년 등단한 후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을 통해 서늘한 중에 애틋함을 읽어내고 적막의 가운데에서 빛을 밝히며 시적 미학을 탐구해온 시인 김소연이 네번째 시집 『수학자의 아침』을 출간했다. 시인은 묻는다. “깊은 밤이란 말은 있는데 왜 깊은 아침이란 말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