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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을 위로하는 바늘의 손길처럼

『그 쇳물 쓰지 마라』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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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을 위로하는 바늘의 손길처럼. 모서리를 둥글게 깎는 목수의 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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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던 끝에 지난 7년간 인터넷 뉴스에 달았던 댓글을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2010년 충남의 한 철강업체에서 발생한 29세 청년의 추락사 보도에 시 형식의 댓글을 단 것을 시작으로 지금껏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댓글 쓰기를 이어오고 있다.


출간 결정에 따라 지난 글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동안 우리 사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가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건물 외벽을 청소하던 중년 가장이 추락사하였는가 하면, 무명 시나리오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으며,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한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과, 아이에게 먹일 체리를 훔쳤다가 체포된 가난한 엄마와, 구제역 파동 속에 무참히 생매장당한 가축들의 비명과, 임금을 체불당한 일용직 노동자의 무력한 고공 시위와, 그처럼 홀대받는 노동자를 위해 평생을 바치고 하늘로 돌아간 열사의 모친과, 배웅 없이 떠난 고독사와, 배가 가라앉은 지 2년이 지나도록 진실을 알 수 없는 300여 명의 죽음과…. 아, 그해 봄에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랑을 잃었다.


어디 그뿐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신산한 삶과, 모래늪 같은 저임금의 수렁과, 저녁을 용납지 않는 노동시간과, 그 틈바구니에 버려지고 잊힌 아이들의 탈선과,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끝내 대물림되고 만 가난과, 그 와중에도 부를 독점한 이들의 끝 모를 횡포와, 아마도 우리를 미치게 할 요량으로 화려한 대저택을 앞다투어 자랑하는 스타들과,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할 이슈가 얄팍한 이슈에 잡아먹히는 아이러니 속에서 매일 아침 인터넷 브라우저를 실행하는 일은 마치 판도라 상자를 여는 일 같았고,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흡사 아수라장의 중심부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전해오는 봄꽃 소식과, 가뭄을 끝내는 비 소식과, 축복처럼 내리는 첫 눈 소식과, 황금빛 물든 억새밭 풍경과, 불편한 몸으로 힘들여 일군 소금을 이웃에게 베푼 염전의 성자와,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사지로 들어간 소방관들에 관한 보도를 보면서, 앞서 느낀 혐오와 절망은 적잖이 민망한 것이 되었고, 다시 살아갈 명분과 희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비록 아프고 쓸쓸한 댓글이 8할쯤 되지만, 오래지 않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오면 사회면 뉴스를 떠나 조금은 나른하고 사소한 것들에 관하여 쓸 수 있을 게다. 유년 시절의 초가집 창호로 여과돼 들어왔던 무겁고 따스한 빛에 관하여 묘사를 시도한다거나, 자칫 거룩해지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속되고 능숙한 것들과 합숙시킨다거나, 무엇보다 나의 글쓰기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알아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으며 댓글을 엮은 1, 2부와 달리 제3부는 블로그에 올린 글 중에서 추렸다. 고쳐 쓰는 데에 적잖은 시간을 할애했음에도 여전히 서툴고 투박한 까닭은 순전히 필자의 부족함 때문이니 독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란다. 더불어 종이의 입장에서 봉변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은 모든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풍선을 위로하는 바늘의 손길처럼
모서리를 둥글게 깎는 목수의 마음처럼
2016년 여름 제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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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쇳물 쓰지 마라제페토 저 | 수오서재
댓글시인 제페토는 이후 꾸준히 시 형식의 댓글을 남겼다. 누리꾼들은 그의 시를 캡처해 공유했고 일부러 그의 댓글을 찾아 들어가 읽었다. 그게 벌써 7년, 댓글시는 120여 편이 넘었다. 댓글로 시작한 그의 글은 한 권의 책, 전례 없는 '댓글시 모음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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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제페토

그 쇳물 쓰지 마라 (리커버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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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시인 제페토를 아시나요? 벌써 7년간, 뉴스기사에 시 형식의 댓글을 남겨 수많은 이들을 감동시킨 ‘댓글시인 제페토’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작은 것들의 아픔과 소외된 이들의 고독을 향한 따뜻한 시선 일부러 찾아 읽는 댓글이 있다. '제페토'라는 이름을 쓰는 누리꾼에게 사람들은 '댓글시인'이라는 수식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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