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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춘이 까발리는 억울한 내 삶

김태춘 <악마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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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에 포착된 모든 기름진 존재(예컨대 권력자, 매스 미디어, 포악한 자본가, 변절한 예술가)들이 이번에도 새 음악의 제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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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무슨 험한 꼴을 당하려고 이렇게까지 솔직한 건지. 그의 눈에 포착된 모든 기름진 존재(예컨대 권력자, 매스 미디어, 포악한 자본가, 변절한 예술가)들이 이번에도 새 음악의 제물이 되었다. 노래의 품은 1집 <가축병원블루스>(2013)보다 더 여유로워졌고, 음악가 자신은 배포가 커졌다. 템포가 느리다거나, 과격한 밴드 사운드가 아니라고 방심했다면 오산이다. 여과 없이, 가감 없이 담아낸 현실이기에, 끝을 모르고 추락하기 쉽다.

 

이른바 ‘인디계의 삼김시대’라는 세 사람 김일두, 김대중, 김태춘 중에서도 김태춘의 화법은 단연 직설적이다. 그를 보고 있자면 시위대 선봉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타악기의 투박한 두드림을 다리 삼아 ‘메기고 받는’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독재자에게 죽음을」을 들어보자. 그의 목소리는 한 섞인 울음이 느껴지면서도, 무당이 살을 던지듯 단호하며 서늘하다. 위선을 향한 제의(祭儀)에 있어 냉정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영화 <악마의 씨>(1968)의 원제는 <로즈메리의 아기>다. 그렇다면 씨를 품은 로즈메리는 악마인가? 혹은 악마가 되었는가? 이 물음에 근접하는 데 필요한 것이 시대성이다. 시대는 언제나 컨템포러리의 기준으로 마녀를 마녀라고 부르며 사냥한다. 김태춘의 시선에는 그 악마를 품은 테두리마저 이미 악마가 된 듯하다. 일정 부분에서 급진파의 선전물 같기도 한 가사는 결코 텍스트의 울타리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으며, 실제 공간과 생생하게 호흡한다.

 

암울한 이야기 가운데 발견되는 균형 잡힌 요소, 바로 이 어두운 가사와 전원적 음향의 불합치가 불편함의 궁극적인 원인이다. 음반에는 뜻밖에 구조의 안정감이 있다. 가깝게 배치한 「서울의 삶」과 「이태원의 밤」은 포크?컨트리 장르의 전형을 보여주는 민요 식 구성이며, 「저질들」과 「홍대귀신」은 리듬상 유사성을 띠고 있다. 「새마을 노래」를 인용하며 풍자하는 「뉴타운 무브먼트 블루스」는 또 어떠한가. 「집을 잃고 울었네」에서 헨리 비숍의 「즐거운 나의 집」을 그대로 붙여 비극성을 극대화한 작법과 일치한다. 그래서 통쾌하다. 겉으로는 브라스의 옷을 입고, 결이 고운 기타를 연주하면서, 재지한 분위기를 내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때는 트로피컬의 느긋함마저 풍기면서도, 끝내는 억울한 내 삶을 낱낱이 까발리는 시원함. 그리고 씁쓸한 위로가 남는다.

 

물론 (어떻게 보면 전작보다는 덜해졌지만) 날것을 마주하는 기분은 여간 찝찝한 게 아니다. 친근한 쪽으로의 질감 변화가 청취를 도울 수는 있겠으나, ‘불순함’은 여전하기에. 그러나 거울이 불편한 것은 그에 담긴 현실이 눈부시게 선명하기 때문일 테다. 터져버린 웃음도 거짓이 아니며, 흐르는 눈물도 진짜다. 김태춘 때문에, 아니 덕분에 우리는 우리를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홍은솔(kyrie17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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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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