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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 ‘장얼’ 식 로큰롤의 완성
장기하와 얼굴들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톡톡 튀는 사운드와 듣기 좋은 멜로디, 재미를 일으키는 장치들 모두 어느 하나 놓칠 것이 없고 어느 하나 모자라다 할 것이 없다.
장얼 식 로큰롤의 완성. 그간의 여러 결과물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밴드의 장점과 특징들이 한 데 모였다. 장난기 가득한 텍스트와 심드렁한 특유의 보컬은 물론이거니와, 짤막하면서도 직관적인 멜로디와 펑키한 리듬, 이따금씩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여러 고전들을 독창적으로 재조합한 창의적인 터치에 이르기까지.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에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지금까지 보인 특성들이 모두 담겨있다. 이처럼 집합과 결합의 모토 아래에 온갖 요소들이 모여 있으나 그 결과물은 결코 과하지 않다.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서부터 「그러게 왜 그랬어」로 이어지는 초반부 곡들의 벌스를 보자. 퍼커션 위에 베이스나 기타, 오르간 중 하나만을 얹어 구성한 사운드에서 작품에 절제의 미를 입히는 미니멀한 접근 방향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발생하는 깔끔함이 먼저 앨범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앨범의 초입에서부터 흥미를 자극하는 미니멀한 구성은 장기하와 얼굴들이 가진 펑크적, 혹은 뉴 웨이브적 기질에서 발로된 것이라 생각해본다. 간편한 사운드 스타일에 그루비한 펑크(funk) 리듬이 결합한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와 「빠지기는 빠지더라」의 큰 줄기에서는 토킹 헤즈의 스타일이 짙게 묻어나는 데다, 도입부와 짧은 솔로 구간에 전형적인 펑크 기타가 올라 탄 「쌀밥」에서는 더 잼이나 버즈콕스의 빈티지한 펑크 컬러가 잡힌다. 레게 리듬이 더해진 「ㅋ」 또한 뉴 웨이브 시대의 투 톤 사운드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이러한 장르성에 기초하는 미니멀리즘은 더 나아가 「괜찮아요」와 「그러게 왜 그랬어」와 같은 스타일이 모호한 팝 트랙에서도 드러나며,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 「오늘 같은 날」 등 비틀스, 산울림 영향 하에서 구축된 장기하 표의 서정적인 발라드 트랙에서도 얼핏 만날 수 있다.
음반을 빛내는 것은 이와 같은 단순함이다. 밴드는 음악을 간단하게 풀어내고 공간에 여유를 넉넉히 둔다. 이에 따라 매끈하게 떨어지는 사운드가 개개의 곡을 근사하게 채운다. 신나는 펑크 리듬과 아름다운 보컬 코러스, 캐치한 기타 리프, 이들이 빚어내는 잘 들리는 멜로디가 노래 속에서 명료하게 제 존재를 드러낸다. 트랙 단위로부터 한 발짝 더 나아가 작품 전반의 단위에서도 얘기해보자. 펑키한 뉴웨이브, 미니멀한 팝 위주로 조직한 장르와 스타일의 큰 틀은 사랑이라는 굵직한 텍스트 테마와 함께 앨범에 통일감을 제공한다. 안정감을 일으키는 구심점을 앨범에 내재시키면서 완급 간의 큰 격차와 다소 산만한 곡 구성이 낳았던 전작들에서의 아쉬움을 걷어냈다.
이렇듯 사운드 메이킹에서의 높은 완성도가 특히 두드러지마는, 그것만을 이 앨범의 전부라 칭할 수는 없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이 결정적으로 위력을 발휘하는 지점, 결국 노래라고 하는 그 지점이 잊지 않고 이번 음반에서도 흡인력을 만든다. 독창적인 사운드를 뽑아내는 데에 한껏 집중하는 듯 하다가도 밴드는 후렴구에 소구력 강한 선율을 걸어 귀를 쉽게 잡아당긴다. 리듬감을 강조하며 스타일을 독특하게 주조해낸 「괜찮아요」와 「그러게 왜 그랬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노래」, 「살결」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부드러운 멜로디를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비치 보이스와 비틀스 풍의 보컬 코러스로 예쁜 선율을 강조한 「가나다」는 높은 수준의 송라이팅과 스타일링이 만난 맥락 점에서 베스트 트랙으로 충분히 꼽힐 만하다. 장기하와 얼굴들 특유의 유머러스한 성격에 쉽게 가려지는 좋은 선율감이 작품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멋진 작품이 탄생했다. 밴드를 정의하는 온갖 성분들이 음악을 멋지게 구축한다. 스스로를 향한 조소를 한 가득 담아다 극적인 보컬 연기로 들이붓는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와 「ㅋ」, 가나다로부터 귀여운 가사를 뽑아내는 「가나다」와 같이 웃음을 이끌어내는 트랙들 위에서 여유 가득하고 재치 넘치는 퍼포먼스가 빈틈을 잔뜩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저편에는 구성 단계에서의 치밀함이 위치하고 있다. 톡톡 튀는 사운드와 듣기 좋은 멜로디, 재미를 일으키는 장치들 모두 어느 하나 놓칠 것이 없고 어느 하나 모자라다 할 것이 없다.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는 현재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작품이다. 앞선 앨범들을 충분히 상회하는 결과물이 등장했다. 이 음반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의 로큰롤은 한 차례 완성됐다.
2016/06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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