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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낡지 않았어

레드 핫 칠리 페퍼스 〈The Get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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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달려온 밴드임에도 여전히 다채로운 시도를 해내고 잘 들리는 곡을 써내며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낡지 않는 감각과 창작, 재치로 무장한 젊은 전설들의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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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버릴 트랙 하나 없는 앨범이다. 하지만 묘하다. The Getaway〉에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직선적으로 내달리며 방방 뛰어대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고유의 거친 펑크(funk) 록 사운드는 음반의 표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Detroit」와 「This Ticonderoga」 정도가 그러한 결과물에 해당하나 예의 강렬한 대표곡들에 비하면 이들 역시 꽤나 차분하다. 정돈된 양상을 취하는 가운데서도 세기 강한 펑크 사운드를 과감하게 내보였던 〈By The Way〉와 함께 놓고 보아도 〈The Getaway〉는 역시나 조용하다.

 

프로듀서 데인저 마우스의 감각이 진하게 묻어난다. 〈Blood Sugar Sex Magik〉에서부터 〈I’m With You〉까지의 긴 여정을 함께해온, 오랜 프로듀싱 파트너 릭 루빈을 대신해 콘솔에 앉은 데인저 마우스는 음반 전체에 큰 부피감과 묵직한 무게감을 얹어 입체적인 사운드와 침잠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The getaway」, 「Dark necessities」, 「We turn red」로 이어지는 초반부의 결과물들에서 위와 같은 앨범 전반의 색깔이 잘 나타난다. 신디사이저와 스트링, 리버브 음향, 레이어링의 활용으로 구축한, 널찍한 사운드가 트랙들에 공간감을 덧씌운다. 때문에 곡들에서는 데인저 마우스가 일원으로 있는 브로큰 벨스 식의 스페이스 록 컬러나 2014년에 프로듀싱했던 〈Turn Blue〉에서의 더 블랙 키스 식 사이키델릭 록 컬러가 잡히기도 한다.

 

기존의 행보와 비교해 조금은 낯선, 몽환적이고 우주적인 스타일 속에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음악은 과연 어떻게 구현될까. 감상의 포인트는 바로 이 의문에서 출발한다. 밴드는 「The getaway」와 「Goodbye angels」에는 무겁게 일렁이는 공기를, 「Go robot」에는 몽롱하게 울리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엘튼 존과 버니 토핀과 함께한 「Sick love」에는 「Bennie and the jets」 풍의 부드러운 팝 멜로디를 내걸어 여유롭고 아득한 이미지를 연출하면서도, 골자에 자신의 정체성이 담긴 펑크 사운드를 배치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 낯선 접근 방식이 여러 번 수면 위로 등장한다지만 기저에서 음악을 이끄는 원동력은 결국 플리의 그루비한 베이스와 조쉬 클링호퍼의 날카로운 펑크 기타고, 앤소니 키디스의 리드미컬한 보컬이며 밴드 특유의 캐치한 멜로디다.

 

정중동의 미가 작품을 관통한다. 공백 가득한 앰비언스와 정적인 분위기 아래에서 밴드는 치밀하게 펑크 리듬을 짜 맞추고 록 사운드를 조직해낸다. 완력이 한껏 뿜어져 나오진 않지마는, 응축된 에너지가 각각의 트랙에 자리해있다. 음향이 부옇게 번져나가는 공간 속에서도 「Dark necessities」와 「Goodbye angels」는 날렵한 펑크 록 사운드의 존재를 계속해 알리며, 전개의 형식미를 갖춘 「Detroit」와 앨범을 마무리하는 6분짜리의 어두컴컴한 대곡 「Dreams of a samurai」는 넘실대는 그루브를 자랑한다. 그런가 하면 「Go robot」은 또 어떠한가. 트랙 안에서 1980년대풍 레트로 일렉트로 펑크와 데인저 마우스의 사이키델릭 팝이 멋지게 뒤섞인 형상을 보자. 어제의 작법에 새 문법을 적용하고자 하는 〈The Getaway〉의 사운드 콘셉트가 이 지점에서 가장 훌륭하게 구체화됐다.

 

잘 만든 앨범이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던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사운드와 새로운 접근 방식이 탁월하게 배합돼있다. 매력적인 멜로디를 기반으로 한 밴드의 펑크 록도 끊임없이 움직일 뿐 아니라 프로듀싱에서의 신선한 터치도 분명하게 살아있다. 멋진 사운드를 이끌어낸 아티스트들의 재능이 빛을 발한다. 물론 아쉬운 점이 아예 없지는 않다. 데인저 마우스의 색이 워낙 강한 탓에 몽환이 자욱하게 내려앉은 몇몇 지점에서는 프로듀서가 밴드를 압도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음반의 가치를 크게 깎아내리는 수준의 한계는 아니다. 30년 넘게 달려온 밴드임에도 여전히 다채로운 시도를 해내고 잘 들리는 곡을 써내며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데에 〈The Getaway〉의 의미가 모인다. 낡지 않는 감각과 창작, 재치로 무장한 젊은 전설들의 수작이다.

 

2016/06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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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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