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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헤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벡의 결합! - 아톰스 포 피스, 허각, 로지 피피
스스로의 패러다임을 탁월하게 구현하다-아톰스 포 피스(Atoms For Peace)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1440」으로 댄스 가수(?!) 되다-허각 어느 것보다도 더 강하게 봄을 알리는 계절의 이정표-로지 피피(Rossy PP)
낯선 이름일 수도 있지만, 아톰스 포 피스는 라디오헤드의 프런트맨 톰 요크,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베이시스트 플리, 벡의 다수 작품에서 드럼을 연주한 나이젤 고드리치 등, 장르를 아우르는 멤버들이 한 데 모인 슈퍼 밴드입니다. 언뜻 상상이 안 가는 그들의 프로젝트는 어떤 모습일지, 리뷰를 통해 만나보세요.
낯선 이름일 수도 있지만, 아톰스 포 피스는 라디오헤드의 프런트맨 톰 요크,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베이시스트 플리, 벡의 다수 작품에서 드럼을 연주한 나이젤 고드리치 등, 장르를 아우르는 멤버들이 한 데 모인 슈퍼 밴드입니다. 언뜻 상상이 안 가는 그들의 프로젝트는 어떤 모습일지, 리뷰를 통해 만나보세요. 「1440」으로 호응을 얻고 있는 허각의 앨범과 봄을 부르는 듯 온화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 로지 피피의 신보도 함께 들어보시길.
아톰스 포 피스(Atoms For Peace) < AMOK >
라디오헤드(Radiohead)의 프론트맨 톰 요크(Thom Yorke)의 독집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아톰스 포 피스(Atoms For Peace)라는 밴드 이름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만약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난 2006년 발매되었던 그의 솔로 앨범 < The Eraser >를 다시 꺼내보자. 6번 트랙 쯤 도달했을 무렵, 찬찬히 훑어보던 당신의 입에서 기억과 텍스트가 접합하는 신호, “아!”하는 소리가 나올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 밴드의 이름은 일찍이 톰 요크의 솔로 음반에 실렸던 여섯 번째 곡 제목과도 동일하다.
그러고 보면 앨범 커버 아트도 < The Eraser >의 그것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 The Bends > 이후로 라디오헤드의 그래픽 작업을 전담해 온 스탠리 돈우드(Stanley Donwood)의 프린팅은 여전히 선이 굵으며, 흑백의 평면 위에 표현되었던 대재앙의 모티브도 고스란히 이번 작품에 구현되었다. 이만하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밴드 이름도, 음반 커버도 지난 솔로 앨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지금, 다른 음악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가 기대했던 새로운 프로젝트 그룹은 결국 톰 요크 식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로 수렴할 것이 분명하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li Peppers)의 베이시스트 플리(Flea)와 < Odelay >, < Guero >와 같은 벡(Beck)의 작품들에서 드럼을 연주했던 조이 와론커(Joey Waronker)가 멤버로 참여했다 해도 톰 요크가 중심이 되는 역학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 애초부터 이 조합은 톰 요크의 음악을 구현하려고 만든 것이다. 지난 2009년, < The Eraser > 미국 공연에서 음반의 전 곡을 연주하는 라인업으로 일찍이 선보였을 때에도, 이후의 각종 투어나 합주, 곡 작업을 같이 하는 콜라보레이션에서도 이들의 동기는 확실했다.
나이젤 고드리치(Nigel Godrich)가 밴드 멤버로 올라섰다는 사실 또한 크게 어색하지 않다. 그는 누구보다도 톰 요크의 세계관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다. < Pablo Honey >를 제외한 라디오헤드의 모든 음반에 프로듀서로 자리해 오면서 일렉트로니카로 선회해가는 프론트맨의 음악적 변화 추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왔고 아티스트가 어떤 방식으로 스펙트럼을 펼쳐나가려는지 명료하게 해석해낼 줄도 안다. 콘솔 앞에 앉아있는 또 다른 톰 요크라 해도 무방한 그의 가세는 밴드의 색채를 더욱 확고히 하는 요소이다.
그렇기에 아톰스 포 피스의 데뷔작은 톰 요크의 두 번째 솔로 앨범이라 해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4집 < Kid A >에서부터 눈에 띄게 강조되어온 전자음의 구성과 리듬의 배치 작업은 이번 음반에서도 역시 최우선시 해야 할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비트를 짜 맞추고 루핑(looping) 식으로 재배열하는 작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공정을 거쳐 탄생된 사운드들은 트랙 위를 횡행하면서 갈라지고 또 바스라진다.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우리가 늘 생각해 온 일반적인 음악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아름다운 화음이나 유려한 전개와 같은 보통의 심미성은 찾아보기 좀처럼 찾기 힘들다. 여러 종류의 리듬 라인들만이 러닝 타임 속에 끊임없이 나열되고 불규칙하게 진행될 뿐이다. ‘음’이라는 개념 또한 톰 요크에게는 리듬을 표현하는 또 다른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수직으로 음을 쌓아 만드는 하모니의 영역은 이미 벗어난 지 오래며, 그때그때 톤과 텍스쳐를 달리한 공간화된 소리들만이 오직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이러한 경향은 솔로 앨범 < The Eraser > 때보다 더욱 심화된 양상이다. 전작에서 어느 정도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멜로디 라인은 이번 작품에서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질감이 부여된 비트들이 지속적으로 오르내리면서 트랙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것에 반해 선율이 담긴 프레이징은 리듬에 의해 절개되며 그 힘을 빠르게 잃는다. 그나마 선율의 방향을 인지하게 하는 것은 톰 요크의 보컬이지만, 곡을 리드하는 주체의 역할이기보다는 도리어 커다란 분위기에 이끌리는 객체의 존재처럼 다가온다.
타이틀 곡 「Before your very eyes…」나 이어지는 「Default」, 「Dropped」와 같은 트랙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리듬과 사운드 운용으로만 집적된 결과물들에는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뚜렷한 멜로디가 없다. 음반 속에서 살아있는 것은 프로그래밍을 통해 제작된 음향과 음향을 전개시키는 구조들뿐이며 둘 사이에서 조성된 공간감이 서서히 존재 영역을 넓혀간다. 어쿠스틱한 구성으로 표면적으로는 밴드 음악에 가까워 보이는 「Judge, jury and executioner」 또한 조금만 깊게 들어가 보면 듣는 이들의 예상을 깨는 장치들로 가득하다.
라디오헤드와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벡이 결합했다는 홍보 문구가 만들었던 록 음악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감은 산산이 깨어진다. < AMOK >은 오히려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나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등이 보여주었던 앰비언트 뮤직에 훨씬 가깝다. 매 트랙에는 각기 다른 주제를 바탕으로 한 사운드 스케이프가 펼쳐져 있고 밴드 구성원들은 공감각(共感覺)의 조성을 위한 분절된 역할만 수행할 뿐이다.
확실한 점은 대다수의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앨범은 대중적인 취향과는 분명 적지 않은 거리감이 있으며 기호에 맞지 않는다면 결코 쉬이 다가올 수 없는 사운드를 지니고 있다. 현 시점의 팝 신에서 손꼽힐 정도로 강력한 브랜드 가치를 가진 톰 요크이지만 결과물은 또 다시 보편성을 외면했다. 실로 이율배반적인 행보다. 이번에도 기대감과 실망감이 공존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늘 그래왔듯 단순히 아쉬움으로만 재단할 작품은 아니다. 음반으로 통해 스스로의 패러다임을 탁월하게 구현했기 때문이다. 톰 요크의 실험은 이번에도 성공했다.
허각 < Little Giant >
대개의 창작자들에게 ‘평범함’이라는 단어는 폄하의 근거이기 일쑤다. ‘특별함의 결여’로만 곧잘 해석되는 탓이다. 그러나 평범성은 정도와 균형의 문제이지 그 자체로는 부정어가 아니다. 일반적이기만 한 것도 매력 없지만, 오직 남다르기만 해도 거리감을 부르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보편성의 가치라는 측면에서 평범함이 주는 대변성과 대표성은 대중을 품어야 하는 분야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소중한 자격이자 임무이기도 하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 당시 허각에게 더해진 우려도 ‘어딘지 모를 평범함’이었다. 기본기가 탄탄한 가창력을 갖췄지만 그것만으로 주류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러나 특유의 평범함은 결과적으로 그의 노래가 더 넓은 대중 층을 소구하게 만들었다. 튀지 않은 음색과 유별하지 않은 접근은 자연스런 스며듦을 가능케 한 동시에 차별점을 특출한 보컬에 집중시켜 그 위력을 배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같으면서도 좀 다르게’라는 대중의 까다로운 주문을 허각은 보통성에 곁들인 남다른 실력으로 부응한 것이다. 그 은근한 파워는 그간의 싱글과 드라마 OST의 무시 못 할 인기로 여러 차례 증명되었다.
첫 정규 앨범 역시 그답게 대중음악으로서의 미덕을 다한다. 의도적으로도 그렇고 결과적으로도 그렇다. 마치 모든 곡이 앨범 내에서 수록곡으로만 남기를 거부하는 듯, 전곡이 고르게 단단하고 트렌디하다. 각종 차트에서 다수 곡들이 함께 선전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타이틀곡은 「1440」이지만 유승우와 함께 부른 「모노드라마」도 상당한 각광을 받고, 그 외 정은지와 듀엣한 「헤어질 걸 알기에」나 「사랑하고 싶어서」, 「눈물이 되어줄게」도 인기다. 허각의 앨범 안에서 대중들은 가수가 내세우는 곡에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기호를 챙겨가며 호흡한다.
허각을 춤추게 만든 「1440」이나 경쾌한 리듬으로 파이팅 정신을 다독이는 「백수가」 등 잘 선보이지 않았던 업 템포의 곡들은 앨범의 새로운 감상 포인트다. 「술 한잔하면」과 「눈물이 되어 줄게」에서의 감정 처리도 한층 성숙해졌다. 앞서 말했듯 개별적으로는 모든 곡이 큰 거슬림 없이 듣기에 괜찮다. 그러나 앨범 덩어리째로 보면 임팩트가 다소 휘발된다. 음으로 표현하자면 1번곡부터 9번곡까지 모두 안정적인 ‘솔’음을 내는 것 같달까. 그 합이 모여 만들어 내는 ‘솔솔솔솔솔’의 단조로움처럼, 노래 간의 개성이 죽고 인기가요 모음집을 듣는 듯 딱히 부각되는 곡이 없게 느껴진다.
앨범의 퀄리티를 끌어올리는 건 역시나 안정된 보컬이다. 이제 겨우 1집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그의 가창은 노련하다. 곡마다 창법의 차이를 두며 접근을 다양화했고, 확대된 표현 영역으로 앨범의 밋밋함을 조금은 보완했다. 단단한 발성에서 뻗어가는 음들은 저마다의 감성의 결로 분화되어 가사에 담긴 메시지를 디테일하게 표현해낸다. 이 시원스러우면서도 섬세할 줄 아는 보컬 운용이 바로 ‘허각표 발라드’라는 말까지 등장케 한 그만의 특색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허각적인 것’의 밑그림을 어렴풋하게나마 그려냈다는 것만으로 첫 앨범은 제몫을 했다. 오디션 우승자라는 후광을 벗고도, 감정적 호소를 불렀던 개인 사연을 등에 업지 않고도, 오직 노래만으로도 음악의 드라마를 펼쳐낼 수 있음을 예견해 보였다는 가능성, 또한 그 드라마는 언제라도 대중과 밀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만큼 가깝고 친절할 것임을 시사했다는 점은 대중가수로서 그의 음악이 기능할 역할을 짐작케 한다. 이를테면 평범하면서도 비범하고 그래서 위로와 공감인 동시에 감탄인 음악이 그것이다.
로지 피피(Rossy PP) < Romantica >
목소리의 온기로 터뜨리는 봄의 꽃망울
로지피피 음악의 핵심은 역시 그녀가 가진 음색이 아닐까 싶다. 팝으로의 접근이 도드라졌던 < Aloha Oe >(2011)와 경량화된 편곡으로 진정성 있게 다가온 < 29 >(2012). 이 두장이 가진 각각의 이미지가 흩어지지 않고 그녀의 이름 안에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보컬에서 느껴지는 통일감 덕분이었다. 업템포든 발라드든 곡과의 높은 일체감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대중성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고, 그렇게 순조로운 페이스로 출발 테이프를 잘랐다. 반년여만에 부지런히도 작업해 내놓은 이번 EP 역시 여태까지의 행보 위에서 또 다른 갈림길을 닦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미니 앨범의 주요 과목은 모던 록과 소울, 보사노바다. 리드 트랙인 「늦지 않았길」에서 느껴지는 청량감은 여느 모던 록 밴드에게서도 찾기 힘든 따뜻함과 중첩을 이룬다. 건반과 드럼의 울림을 시작으로 퍼져나가는 탄탄한 구성의 연주와 최대한 기교를 배제하고 노래 본연에 충실한 그녀의 ‘팝보컬’이 뒤늦게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는 가사와 어우러지며 꾸밈 없는 편안함을 안겨주는 덕분이다.
이런 발랄함도 잠시 「드물게 피는 꽃」에선 소울풀한 일면을 어필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이러한 흐름은 좀 더 펑크(Funk)에 기반을 둔 「몽상가들」로 이어지며 잠시 블랙 뮤직의 기운을 한껏 내뿜는다. 이처럼 장르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급변하는 그녀의 창법은 싱어송라이터이기에 앞서 좋은 보컬리스트임을 먼저 느끼게 한다. 이후 보사노바 트랙 「낭만의 계절」이 등장해 그만의 위트로 진지함을 희석시키고, 피아노 한 대에 자전적인 이야기로 여백을 채워 낸 발라드 「노래해볼까」로 짧은 러닝타임을 마무리한다.
각각의 곡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성격이 이질적임에도, 로지피피라는 이름 안에서 해석됨과 동시에 어딘가 공통된 목적지로 달려가고 있다는 안정감의 발현이 인상적이다. 겨울을 노래하면서도 그 속성과는 관계없이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기에 항상 곡들은 온화함을 내포한다. 나머지 곡들도 마찬가지이다.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라거나, ‘힘든 상황을 극복해내자’라는 강요가 아니라, 상황과 그 때 느껴지는 감정 자체를 소중히 하자는 것에서 그녀의 서정은 시작된다. 매서웠던 겨울이 끝나갈 즈음에 나온 이 시디 한 장, 어느 것보다도 더 강하게 봄을 알리는 계절의 이정표로 삼기에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듣다보면 로지피피라는 이름의 계절이 어느새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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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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