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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숲 전문가가 들려주는 나무와 숲의 비밀
『나무 수업』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자연 상태의 숲을 당장 복원하거나 가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그동안 무생물처럼 취급했던 나무와 숲의 역동적인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제가 소개할 책은 『나무 수업』입니다. 저는 이 책의 담당 편집자 엄정원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여러분은 하루에 몇 번이나 나무를 보거나 떠올리시나요? 이 책을 만들기 전 저에게 나무란 도시의 미관에 기여하는 푸른색의 어떤 것, 또는 인간 생존을 위한 베이스캠프라는 이미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 책은 숲에서 온전한 주인공인 나무가 인간의 주변부로 밀려나 어떻게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지, 원래 자신의 세계인 숲에서 나무가 펼치는 역동적인 삶은 어떠한지를 들려줍니다. 이 책을 읽고 제가 가장 놀랐던 점은 나무의 삶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상적이고 훌륭한 인간의 삶과 매우 닮았다는 점입니다. 이 점이 제목에 ‘수업’이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선 이 책의 저자 페터 볼레벤의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볼레벤은 독일의 숲 전문가입니다. 숲에 어떤 종류의 나무를 심을 것인지, 수령이 얼마나 된 나무를 베어서 목재로 공급할 것인지, 나무 사이의 간격이나 비료를 결정하는 것 등이 그의 일인데요. 저자는 20년간 독일 주 정부의 산림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친환경 숲 경영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대규모 기계나 농약을 쓰지 않는 휨멜 숲 조합으로 일자리를 옮깁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방식으로 나무와 숲을 보았는지를 깨달았다고 하는데요. 인간에게 유용한 것만 생각하다 보니 전문가인 저자조차 나무의 생태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숲을 관리했다는 성찰이 인상적이었고, 더불어 숲 관리라는 개념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우리의 현실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독일에서 국립공원이 조성된 역사가 500년이 넘고, 스위스 연방헌법에는 식물의 존엄성에 대한 규정이 있다는 점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고요.
이 책에서 단연 눈에 띄는 대목은 나무가 사회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숲을 오가면서 이끼 낀 돌을 발견했는데, 실은 이것이 돌이 아니라 수백 년 된 나무 그루터기의 자투리였습니다. 이것이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뿌리를 통해 이웃 나무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았기 때문인데요. 왜 나무는 자신의 영양분을 다른 동료들과, 그리고 적이 될 수도 있는 다른 개체와 나누는 것일까요? 나무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함께하면 더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나무 한 그루는 그 지역의 일정한 기후를 조성할 수 없고 비바람이나 외부의 불리한 변수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데요. 숲이라는 나무 공동체를 이루게 되면 유리한 환경을 만들 수 있고, 공동체의 구성원 나무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빛을 향한 경쟁에서도 동료 나무에게는 가지를 뻗지 않는 우정을 보여 줍니다. 또 나무는 ‘향기’라는 그들만의 언어를 갖고 있어서, 해충이나 동물 등의 포식자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향기 물질을 전달해 공격에 대비하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자신의 곁에 있는 어리고 약하고 나이든 동료를 보살피고 배려하는 나무의 생존 기술이 감동을 줍니다.
그렇다면 도시의 나무인 가로수의 삶은 어떨까요. 저자는 도시의 나무를 ‘거리의 아이들’이라고 부릅니다. 나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느린 속도로 자라는데요. 무턱대고 키를 키우려는 철없는 어린 나무는 주변의 어른 나무로부터 빛을 적절히 통제하여 견고하고 튼튼하게 자라는 법을 배우는 엄격한 교육의 시기를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고향에서 뿌리가 뽑혀 머나먼 낯선 곳에 뚝 떨어져 살게 된 나무는 이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이웃으로부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도시의 공해나 수해에 휘둘리게 되는 것이죠.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자연 상태의 숲을 당장 복원하거나 가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그동안 무생물처럼 취급했던 나무와 숲의 역동적인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자의 말처럼 숲은 우리 집 대문 앞에 남은 마지막 자연이니까요. 지구가 힘겨운 봄을 맞이한 지금 여러분께 『나무 수업』을 권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자막이 길게 올라가는 동안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하지만 표정까지 읽어내기는 힘들었다. 뭔가 잘못된 거겠지, 라고 생각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물을 마시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이런 소리가 귀에 날아왔다.
"밖에서 잠깐 볼까요?"
노인답지 않게 또렷하고 낭랑한 목소리였다. 또한 거기엔 상대를 묘하게 지배하는 힘이 배어 있었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녀를 다시 돌아보았다.
"잠깐 보자는 말일세. 먼저 밖으로 나가 기다려도 상관없고."
영문을 알 수 없었으므로 나는 대꾸를 하지 않고 일단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마시고 계단을 올라가 담배를 피워물었다. 밖에는 이미 짙은 어둠이 내려 있었다. 휴대폰을 확인해보았으나 그동안 걸려온 전화나 문자는 없었다. 담배를 다 피울 즈음 극장 안에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고 짐작되는 노인이 느린 동작으로 계단을 올라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거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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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