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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1975만의 독자적인 양식
The 1975 <I Like It When You Sleep, For You Are So Beautiful Yet So Unaware Of It>
약 74분의 시간 동안 열일곱 번이나 자신들의 결과물을 내밀지만 1975는 좀처럼 결점을 노출하지 않는다.
앨범은 꽤 어지럽게, 혹은 꽤 산만하게 들리기도 한다. 열일곱 곡에 달하는 상당한 분량 속에서 여러 양태의 사운드들이 제 존재를 강하게 알리는 탓이다. 1975의 음악을 한 차례 정의했던 기존의 알앤비, 펑크(funk), 댄스 록, 신스팝뿐 아니라 앰비언트와 같은 실험성 짙은 전자음악까지 이번 음반을 통해 새로이 모습을 드러내며 앨범에 복잡성을 추가한다. 신스팝 트랙을 이끄는 신시사이저 또한 현시대를 가리키는 톤을 머금고 있기보다는 1980년대의 한순간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복고성이라는 기질도 역시 강화된 셈이다.
각기 다른 사운드 특색을 가진 각각의 트랙들이 제멋대로 날뛰는 듯하나, 잘 들어보자. 이들의 출현에는 일정한 흐름이라는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1980년대 펑크(funk)-디스코 스타일의 「Love me」, 「Ugh!」와 초기 신스팝 풍의 사운드를 깔아놓은 「A changed of heart」, 가스펠과 재즈의 컬러가 들어선 「If I believe you」 등의 초반부 곡들에선 레트로 터치가 주로 보이며, 이를 이어받는 「Please be naked」, 「Lostmyhead」와 같은 곡들에선 너른 사운드스케이핑을 구사하는 앰비언드 풍 사운드가 잡힌다. 앰비언트 트랙들이 한 차례 지나간 뒤에는 앞선 노래들이 남긴 공간감 가득한 잔향 속에서 1975식의 현대적인 팝 사운드를 퍼뜨리는 「The ballad of me and my brain」. 「Somebody else」, 「The sound」 등이 등장하고, 작품의 종장에 거의 다다른 지점에서는 차분한 어쿠스틱 스타일의 「Nana」, 「She lays down」이 나타난다.
이번 작품으로 우리는 몇 가지 의미를 살필 수 있다. 우선 밴드의 음악적 영역이 넓어졌다는 점. 본래의 활동범위에서 더 나아가, 4인조는 이제 복고식으로도 신스팝을 운용하고 앰비언트식으로도 전자음악을 이끌어낸다. 인에섹스와 OMD, 브라이언 이노가 다함께 보이는 앨범을 통해 이들은 전작보다 사운드 경계가 더욱 확장됐음을 알린다. 그다음으로, 1975는 자신들의 가치 있는 변화를 단순하게만 늘여놓지 않는다. 앨범에 맥락을 부여하고 이를 바탕으로 결과물들을 잘 갈무리한다. 만듦새 좋은 작품으로 음반을 완성해내는 데에까지 역량이 미칠 정도로 물이 올라있다.
마지막으로, 결코 완만하다고만은 볼 수 없는 이러한 음악적 변이 속에서도 이 4인조는 자기 본연의 빛깔을 절대 잃지 않는다. 앞선 작품과는 다른 사운드 콘셉트가 수면 위를 떠다니나 그 아래를 들여다보자. 대중적인 멜로디와 그루브 넘치는 리듬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1975만의 독자적인 양식이 강력히 꿈틀댄다. 데뷔 앨범에서부터 캐치한 팝 멜로디들을 잔뜩 내걸면서 획득한 ‘듣기에 좋다’는 속성은 이번에도 이들의 음악에 탄탄한 기반을 제공한다. 작품 전반에 깔린 흡입력 높은 선율들은 대부분 곡을 싱글로도 충분히 쓰일 수 있게끔 하는 데다, 트랙 리스트 전체에서 감상의 지속성을 끌어올리며, 디스코그래피에서도 어제와의 연결 고리를 튼튼하게 만든다. 이러한 통일성에는 이력 내내 텍스트 소재로 다뤄온 사랑에 대한 단상들도 물론 큰 힘을 보탠다.
훌륭한 앨범이다. 약 74분의 시간 동안 열일곱 번이나 자신들의 결과물을 내밀지만 1975는 좀처럼 결점을 노출하지 않는다. 귀에 감기는 멜로디와 리듬이 계속해 찰랑거리고, 각양각색의 사운드 테마가 외피로 등장하는 덕분에 이들의 두 번째 정규 음반은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빛을 발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화려하고 근사하게 데뷔하며 따랐던 소포모어 징크스에 대한 우려도 기우로 돌렸다. 만든 사람들, 듣는 사람들 모두가 만족할만한 앨범이 탄생했다.
2016/03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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