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철, 일탈적인 주제를 촘촘한 문체로 엮는 소설가
1993년 제17회 이상문학상 수상
촘촘한 글쓰기와 일탈적인 주제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 소설가 최수철. 작가는 엄정하고 정밀한 언어와 문체 실험을 통해 의식의 분열―언어의 해체―자아와 세계의 단절 사이의 역학 관계를 탐색해왔다.
1958년 춘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불문과 및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0~1991년 프랑스 파리대학교에서 수학했고, 1995년 미셸 뷔토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맹점」이 당선되면서 등단했으며 1998년에 ‘윤동주문학상’을, 1993년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수철은 답을 알지 못한다고 확신할 때 좋은 소설을 쓴다, 그는 분명한 행동 대신 모호한 의식을 표현하려고 한다"는 문학평론가 김인환의 말처럼 해답 불가능한 문제, 일탈적인 주제를 드물게 촘촘한 문체로 엮어내는 그의 소설은 일반적으로 읽기가 힘들다. 데뷔 때부터 작가는 글을 너무 어렵게 쓴다는, 그야말로 비판 아닌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이런 저런 시도를 했었다고 한다. 독자가 읽어주어야지, 하는 쪽으로 애써 의미를 맞춰보려고도 하고, 자기 성찰적인 글쓰기를 위해 어지간한 노력도 기울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의 이질적이고 독자적인 소설 형식은 한국문단에서 최수철을 중요한 작가이자 예외적인 작가로 평가 받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수철의 작품은 대부분 무거운 사유를 바탕으로 한 실험적이고 형태 파괴적인 특징을 보이며, 세밀한 문체와 일탈적인 주제가 두드러진다.
1987년 출간된 중편소설집 『화두, 기록, 화석』에서 개인 사이에 존재하는 소통의 문제를 다루며 개인의 진정한 만남의 언어, 건강한 소통의 언어를 추구했다. 소설집 『즐거운 지옥의 나날』을 통해 일상적인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작업을 했으며, 1991년 발표한 소설 『알몸과 육성』에서 소설가의 허위의식에 대한 점검을 시도했다. 『무정부주의자의 사랑』을 통해 성(性)에 대한 억압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매미를 통해 인간의 삶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매미』, 죽음 앞에 선 인간에 대한 성찰을 담은 『페스트』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소설집으로 『공중누각』, 『화두, 기록, 화석』, 『내 정신의 그믐』, 『몽타주』, 『갓길에서의 짧은 잠』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로 『고래 뱃속에서』,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랑』, 『벽화 그리는 남자』, 『불멸과 소멸』, 『매미』, 『페스트』, 『사랑은 게으름을 경멸한다』, 『침대』 등이 있다. 1998년 『고래 뱃속에서』로 ‘제4회 윤동주문학상’을, 1993년에는 글쓰기에 대한 반성과 모색을 통해 한국적인 누보로망(앙티로망)의 가능성을 보여준 중편소설 『얼음의 도가니』로 ‘제17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르 클레지오의 작품 『사랑의 대지』, 『매혹』, 『우연』, 『타오르는 마음』, 『황금 물고기』를 우리말로 옮겼다.
최수철 작가의 대표작
얼음의 도가니
최수철 등저 | 문학사상
'제17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얼음의 도가니』가 보여주는 언어의 지적 실험성은 한국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의 시경(視境)을 열어놓는다는 점과 보편성의 확대라는 점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작품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비단 이와 같은 실험의 스펙트럼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소리와 함께 '본다'는 인지의 지각이 강조되고 있듯이 투시가 삶의 일상뿐만 아니라 자아를 대상화함에 더 준열함으로써 깊은 존재론적 내성에의 길과 동시에 열림과 화해의 구조를 제시하고 있는 점도 이에 못지않은 의의를 지닌다.
페스트
최수철 저 | 문학과지성사
장편소설 『페스트』에서 최수철은 지금껏 자신이 천착해온 의식의 해체, 엄정한 문체, 도저한 지적 사유라는 작가적 과제와 스타일을 견지하면서도, 개인 스스로 삶을 방기하는 자살이라는 문제를 전면화한다. 그리고 폐쇄적 개인에서 사회로 문제의식의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개인 의식사에서 사회구조로 확대된 내러티브 속의 구체적인 무대, 등장인물, 사건의 출현 그리고 이어지는 한껏 외연화 된 주제의식 등을 고려할 때, 그의 소설이 전통적 서사 문법에 근접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야기 전편에 걸쳐 작가는 그 어떤 장르와 소설에서도 시도된 바 없는 자살에 대한 종교적, 철학적 성찰과 마주하고 있다. 동시에 의식과 무의식(꿈) 사이를 위태롭게 줄타기하는 최수철의 집요한 탐색은 때로 냉철한 분석자의 목소리를 띠면서도 등장인물의 내면과 사물을 파고드는 구체적이고 섬세한 시선 때문에 언어와 문체가 관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은 게으름을 경멸한다
최수철 저 | 현대문학
'의자'라는 메타포를 중심으로 인간의 광기와 욕망, 억압과 공포, 그리고 사랑과 치유를 그린 작품이다. 저자는 오래 전부터 '의자'에 관심을 가져왔고, 연애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따라서 '의자'를 통해 얻은 관찰과 성찰을 토대로 한 사랑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강박적일 만큼 '의자'에 관한 트라우마를 지닌 이들이다. 이들이 서로 사랑하고 관계 맺는 과정을 통해 '의자'로 대변되는 각자의 억압을 떨쳐내고 치유 받는 모습이 존재론적 사유와 미학적 상상력, 엄정한 문체로 치밀하게 그려져 있다. 작품 속에서 의자는 인간의 본성과 삶을 표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 그 자체를 의미하고 있기도 하다. 즉, 작가는 의자를 "한 인간이 태어나서 늙어 죽을 때까지 거치는 역사"로, "인간의 삶을 재구성하는 장치"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월간 <현대문학>에 2012년 7월호부터 2013년 7월호에 이르기까지, 1년간 절찬 연재되었던 동명의 작품을 단행본으로 엮었다.
침대
최수철 저 | 문학과지성사
최수철이 『페스트』 이후 6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로,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변화가 훨씬 더 견고해졌다. 사람이자 요람, 관으로 살아온 침대에 얽힌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이번 장편은 '2010년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한 단편 「침대에 대한 기이한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그 단편의 이야기들이 수정을 거쳐 이번 장편 적재적소에 들어 있기도 하다. 여덟 편의 짧은 이야기로 이루어졌던 단편에서 "세상의 모든 일은 침대로부터 비롯되고, 또한 그 모든 일은 침대로 향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던 작가는, 『침대』에서 한 그루의 자작나무가 침대로 탄생한 후 시베리아-리에파야 항구-발틱-희망봉-싱가포르-대한해협에 이르는 백여 년간의 삶으로 확대하고 "모든 것은 모든 것을 위한 침대다"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우리 모두의 삶을 꿈으로 꾸면서 그로부터 그치지 않는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는 만큼, 이 작품을 통해 보여지는 침대의 삶은 또한 우리의 삶, 우리의 역사이기도 할 것이다.
갓길에서의 짧은 잠
최수철 저 | 문학과지성사
단편소설집 『갓길에서의 짧은 잠』에 실린 8개의 소설들은 최수철의 작품 세계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기존에 보여준 정교한 언어와 문체 실험을 통해 의식의 분열과 해체, 자아와 세계의 단절을 탐구해 온 모습은 이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에 더해 보다 강해진 서사적 측면은 긴장과 고통의 시간을 지나 모순적인 것들끼리 통합하려는 성질들을 보여준다. 소설에는 기억이나 통각을 잃은 인물, 복화술적인 언어로밖에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이들이 다시 자신들이 상실한 것들을 찾아 나서고 망각과 무통증, 배속의 언어에서 기억과 사랑, 심장의 언어라는 모순된 것들과 한 쌍을 이루게 되는 과정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낮고 희뿌연 천장」은 자전소설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어 소설 쓰기의 기원에 대해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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