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흥겨운 입담과 날렵한 필치의 소설가
2002년 제33회 동인문학상 수상
성석제의 이름 앞에는 ‘탁월한 이야기꾼’ ‘해학과 풍자의 장인’ ‘입담과 재담의 진면목’이라는 수식어가 자리한다. 전하는 사람에 의해 각양각색으로 생명을 얻어 태어나는 것이 이야기가 가진 특별한 매력이라면, 성석제 작가에 의해 태어나는 이야기는 조금 더 특별하다. 아주 익숙한데, 주변에서 익숙하게 벌어질 때는 느끼지 못했던 재미가 그 안에 있는 것이다.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으며,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에 <문학사상>에 시 「유리 닦는 사람」을, 1995년 <문학동네> 여름호에 단편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소설가로서의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성석제에 대해 평론가 우찬제는 거짓과 참, 상상과 실제, 농담과 진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경계선을 미묘하게 넘나드는 개성적인 이야기꾼이며, 현실의 온갖 고통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올바로 성찰하면서도 그것을 웃으며 즐길 줄 아는 작가라 평했다. 또한 평론가 문혜원은 “성석제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농담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막힘 없이 풀어놓으며 “마치 무협지의 고수들처럼”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입담을 펼친다”고 전한다. 평론가들의 말처럼 성석제는 미묘한 경계선을 거닐면서 재미난 입담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작가이다.
대표작 『소풍』은 흥겨운 입담과 날렵한 필치가 빛나는 산문집이다. 성석제는 음식을 만들고 먹고 나누고 기억하는 행위가 곧 일상을 떠나 마음의 고삐를 풀어놓고 한가로운 순간을 음미하는 소풍과 같다고 말한다. 음식은 “추억의 예술이며 오감이 총동원되는 총체예술”이며 “필연코 한 개인의 본질적인 조건에까지 뿌리가 닿아 있다”는 지론은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사 람살이의 다양한 세목을 되살려온 성석제의 소설 세계와 상통한다.
단편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역시 비극과 희극, 해학과 풍자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세상의 통념과 질서를 향해 성석제 특유의 유쾌한 편치를 날린다. 모든 면에서 평균치에 못 미치는 농부 황만근의 일생을 묘비명의 형식을 삽입해 서술한 표제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포함하여, 한 친목계 모임에서 우연히 벌어진 조직폭력배들과의 한판 싸움을 그린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해 잘살아보려던 한 입주과외 대학생이 차례로 유복한 집안의 여성들을 만나 겪는 일을 그린 「욕탕의 여인들」, 세상의 경계선상을 떠도는 괴이한 인물들의 모습을 담은 「책」, 「천애윤락」, 「천하제일 남가이」 등 2년여 동안 발표한 일곱 편의 중 ? 단편을 한 권으로 엮었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이후 3년간 발표한 단편들을 모았다. 혼기에 이른 맏딸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이야기와 딸이 어머니에게 읽어드리는 옛이야기를 교차 시키며 유려하게 텍스트를 직조해낸 표제작을 비롯해 ‘제49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내 고운 벗님」 등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기성의 통념과 가치를 뒤집는 화려한 수사와 “웃음의 모든 차원을 자유자재로 열어놓는 말의 부림”으로 우리 주변에 있음직한 각양각색 인물들의 삶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표면에 드러나는 유쾌한 재미와 해학, 풍자의 밑에는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통찰이 번뜩이기도 하고 그리움이나 인간을 향한 건강하고 따뜻한 시선이 은근히 깔려 있다.
이외의 소설집으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새가 되었네』, 『재미나는 인생』,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 『호랑이를 봤다』, 『홀림』, 『지금 행복해』, 『이 인간이 정말』 등과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궁전의 새』, 『순정』, 『투명인간』 등이 있으며, 명문장들을 가려 뽑아 묶은 『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이 있다.
1997년 단편 「유랑」으로 ‘제3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2000년 「홀림」으로 ‘제13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고, 단편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제2회 이효석문학상’과 ‘제33회 동인문학상’을 받았으며, 2004년 「내 고운 벗님」으로 ‘제49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성석제 작가의 대표작
소풍
성석제 저 | 창비
음식과 맛에 얽힌 추억 속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건져 올린 맛깔스러운 산문집이다. 십 수년간 각종 매체에 연재하며 갖가지 음식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낸 작업을 한 데 모았다. 한 끼 식사로 적당한 음식부터 국수, 곁다리 음식, 마실 거리 등을 두루 다루며 '음식의 맛, 사람의 맛, 세상의 맛'을 함께 음미하도록 한다. 인도, 중국, 베트남, 미국 등 각국을 대표하는 음식들도 소개한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저 | 창비
'제2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이 수록된 소설집.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 「욕탕의 여인들」, 「천애윤락」 등 일곱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성석제는 현실에 널린 대상을 포착해 그것을 묘사하는 고전적인 방식이 아니라, 현실의 세목을 하나하나 수집하고 분해한 뒤 거대한 거짓말의 세계로 끌어들여 정교하게 재구성함으로써 기존의 소설문법을 유쾌하게 뒤집어 보인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남다른 문체와 소재로 우리 소설에 유례없는 활기를 불어넣어온 성석제의 작품세계가 한층 무르익은 가운데 새로운 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홀림
성석제 저 | 문학과지성사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 춤판, 노름판, 술판 등에서 벌어지는 온갖 인간사의 희극과 비극, 다양한 인간의 속성들을 성석제 특유의 거침없는 문체와 결코 가볍지 않은 유머로 경쾌하게 풀어놓았다. 표제작 「홀림」은 자전소설로 볼 수 있다. 서른까지 계속 아이로 남고 싶어 하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학창 시절, 직장 생활을 한 삼십 대까지 스스로를 자기 분열, 복제된 다수로 만들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맞춰가며 홀린 듯이 살아온 인생을 그리고 있다.
호랑이를 봤다
성석제 저 | 문학동네
성석제의 인간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 스스로의 존재를 초월하는 '무엇'을 꿈꾸지만 어쩔 수 없이 보통 인간일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호랑이를 봤다』에 등장하는 41개의 에피소드에서 아둔하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과 생의 구조, 평범하고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담아낸다.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로써 완결성을 갖는다. 삶의 우스꽝스러운 면과 불완전성을 수용하도록 만드는 '성석제식 희극'이 어김없이 빛을 발한다.
투명인간
성석제 저 | 창비
장편소설 『투명인간』은 눈물겹게 아름다운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묵묵히 우리 곁을 지켜온 그의 일생이 우리가 잊고 있던 주변의 누군가를 돌아보게 하고, 굴곡의 역사 가운데 던져진 개인의 운명을 생각하게 한다. 가진 것 없고 잘난 것도 없지만 미련스러울 만치 순박하고 헌신적으로 가족과 삶을 지켜나가는 '만수'는 수많은 평범한 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나의 아버지, 누이, 그리고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끈질기게 닥쳐오는 비정한 현실의 무게 속에서 끝내 투명인간이 되어야만 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가족을, 삶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뒷모습이 숭고하기까지 한 감동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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