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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카타르시스, 그 사이의 어디 <오피스>

<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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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대하고 가볍게 막 대하는 약자들이 내 뒤통수를 내리칠 수도 있다는 각성이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오피스>는 확실한 메시지 하나를 묵직하게 툭 던져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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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사원의 애환과 낭만적 생존법, <미생>이 웹툰에 이어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마트 비정규직 사원들의 현실을 끝까지 들여다본 영화 <카트>도 있었고, 외국계 마트에서 ‘노조’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 웹툰 <송곳>은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을 앞두고 있다. 와중에 호러 스릴러 장르의 <오피스>가 제작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스릴러 장르 속에 직장생활이 주는 막연한 공포와 폐쇄성을 담고, 역으로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오피스>는 기대처럼 정갈한 공간이지만, 꽉 막혀 숨소리조차 쉽게 낼 수 없는 사무실 속 사원들의 모습을 비교적 현재에 충실하게 잘 구현해 낸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약자일 수도 있는 인물이 가장 잔혹한 장면들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

 

세계에서 근로시간이 가장 긴 멕시코 2,200시간에 이어, 연간 근로시간 2,090시간으로 세계 2위에 달하는 대한민국 근로자들.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면서도 도발을 꿈꿀 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 많은 실업자와 구직자들 사이에서 직장을 유지하는 것만도 처절한 생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TV 프로그램은 숨 막히는 회사를 때려 치고 나와 ‘자기개발’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성공담과 유유자적한 생활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자괴감과 달아나고 싶은 욕구를 부추기거나 대리만족하게 만든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임금피크제와 해고를 통해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주자는 정부의 정책 때문에 겨우 잡은 직장 내에서도 숨소리 한번 제대로 내보지 못하는 수많은 이 시대의 노동자들, 소위 88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은 인턴 제도를 통해 겨우 기회를 잡고 정규직이 되기 위해 다시 한 번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대학은 취직을 위한 숙련의 시간을 지나면 정규직이 되기 위한 비정규직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실만큼 공포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오피스>는 이러한 숨 막히는 현실에서 소재를 빌려 온다.

 

인턴사원 고아성이 지하철, 버스, 엘리베이터라는 밀폐된 공간 속을 달리고 또 달리는 영화의 도입부는 효과적으로 직장인의 아침을 보여준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숨 막히는 현실이다. 게으른 것도 아니고, 꾀를 피우는 것도 아닌데 늦을까봐 전전긍긍하지만, 결국 그녀는 늦고 말았다. 심지어 조직이라는 곳에 뒤섞이지 못할까봐 고심하고, 온갖 굳은 일은 다 하는데도 팀에서는 소속감이 없고, 늘 열외로 밀린다.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려도 제 시간에 도착하기 어려운 곳이 사무실이라는 상징적인 장면과 함께, <오피스>는 착실한 회사원인 김병국 과장이 일가족을 살해하고 사라져버린 사건을 배치한다. 형사 종훈은 회사 동료들을 상대로 수사를 시작하지만 모두 말을 아낀다. 모두 뭔가를 숨기고 있는 눈치다. 게다가 김병국 과장은 사건 직후 회사로 복귀하지만, 그가 회사를 떠난 장면은 어디에도 없다. 사무실 직원들은 그가 ‘오피스’에 숨어서 그들 곁을 부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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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회사라는 공간에서 쌓인 인간관계를 비교적 세밀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학교와 동네에서 사귄 친구들과 달리, 늘 경쟁의 중심에 서 있는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는 그 깊이는 얕지만 좀 더 폭 넓은 이해관계로 얽혀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이해관계로 뒤얽힌 사람들의 관계는 늘 모호함 속에 부유하는데, 그런 모호하면서도 현실적인 관계 설정 때문에 <오피스> 속 인물들은 우리가 쉽게 사무실에서 만나는 동료의 모습으로 채색된다. 누구도 악인은 아니지만, 모두가 악인일 수 있는 관계 속에서 뒷담화와 경쟁, 그리고 생존의 이야기는 암묵적인 왕따를 만들어내고 누군가를 조금씩 죽여 가는 것이다. 또한 가해자이자 피해자일 수도 있는 그들 사이를 오가는 죄의식과 무책임, 그리고 거기서 오는 불안과 공포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사무실에서 오갈 수 있는 여러 가지 소재 중에서, 경쟁과 승진, 비정규직 사원과 정규직 사원,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의 이해관계 등 아주 많은 것을 고루 다루려다 보니 이야기가 하나로 집중되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아주 유연하고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지만 미례(고아성)와 종훈(박성웅)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다른 직장 동료들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다소 겉돌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 몫 이상을 하는 모든 배우들의 열연은 <오피스>를 보는 가장 큰 장점이고, 즐거움이다. 특히 복잡하면서 설득력을 가져야 하는 미례 역할의 고아성은 또래 배우들이 가지지 못한 깊이와 표현력으로 <오피스>를 단단하게 이끈다. 김과장 역할의 배성우는 친절한 직장 상사에서 가족 살인마 사이를 오가며 영화의 가장 큰 미스터리를 움켜쥔다. 형사로서의 사명감과 역시 경찰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직장인인 종훈 역할의 박성웅은 속물근성을 굳이 숨기지 않으며 이야기의 한 축을 이끈다. 홍원찬 감독은 스릴러 장르 속에 공포 영화의 긴장감을 유연하게 녹여내며 인상적인 데뷔작을 성공적으로 직조해낸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잔인한 살해와 보복의 이야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비약으로 느껴질 법한 마지막 장면에서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잔인한 장면들을 통해 충분히 대리만족을 느꼈다. 쉽게 대하고 가볍게 막 대하는 약자들이 내 뒤통수를 내리칠 수도 있다는 각성이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오피스>는 확실한 메시지 하나를 묵직하게 툭 던져낸다. 그러니 오늘도 사무실에서 누군가를 괴롭히고 비난하고 뒷담화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사람’ 귀한 줄 알고 역시 ‘사람’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사무치게 새기라고 전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오피스>를 꼭 보라고 권하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오피스>의 관람을 추천 혹은 지목 받을 ‘그’ 혹은 ‘그녀’가, 스스로 ‘자신’이라고 느껴진다면 부디 ‘반성’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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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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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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