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철학의 다섯가지 대답
철학도 세대교체를 한다?!
‘대화를 나누며’ 바라보는 철학의 변곡점
철학은 언제나 ‘무엇이 더 나은 삶인가’에 대한 모색이었으며, 궁극적으로 필멸자인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였다.
중요한 철학사조들은 예외 없이 ‘좋은 삶’ 문제에서 정점에 이릅니다. 이 문제는 명시적으로든 암시적으로든 죽음, 곧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과 맞닿아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와 마찬가지로 죽을 수밖에 없는 타자들,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이 삶을 좀 더 잘 살 수 있을까요?
지난 시간에 이어 2천5백 년 서양철학사의 큰 흐름을 한번 훑어볼까. 나는 서양철학이 고대 그리스 시대 철학의 탄생 이후로 크게 다섯 시대를 거쳐왔다고 봐. 이른바 세대교체를 한 거지.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어. 세대교체된 철학이라고 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게 아냐. 저번에 말한 것처럼, “때때로 ‘새로 등장한’ 길은 엄청나게 눈부신 빛으로 몇 세기의 간격을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와 닿곤 한다”니까.
자, 지금 얘기하는 거 머릿속에 기억해 두고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어. 뭔 말이냐 하면, 어느 시대든 위대한 철학 사조에는 반드시 3가지 축이 있어.
첫 번째 축은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진리와 인식),
두 번째 축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윤리와 도덕),
끝으로 세 번째 축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잘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삶의 의미와 구원)라는 질문이지.
난 바로 이 세 축을 중심으로 위대한 철학사조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변곡점을 찾아볼까 해.
고대 그리스가 낳은 첫 번째 대답
세계는 완벽히 조화롭다 - “교만을 경계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살라
고대 그리스 시대, 인류는 ‘더 나은 삶’에 대한 첫 번째 답변을 이끌어내지. 사람들이 보니까, 세계는 완벽하게 조화로운 질서를 이뤄. 그러니 세계 속 사람들의 ‘좋은 삶’ 역시 그 조화 속에 최대한 머무는 거 아니겠냐고 생각한 거야. 히브리스(교만)를 경계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인간을 어리석게 만드는 두려움을 떨쳐낼 지혜를 찾고! 그래서 신화의 세계는 자연스럽게 철학의 탄생으로 이어지지.
종교의 시대, 두 번째 대답
조화보다 유혹적인 영생 - “너의 몸과 마음을 모두 구원받을 거야”
그 다음 답변은 유대-그리스도교 원리를 중심으로 나오지. 두 번째 답변의 포인트는 인간에게 ‘개인적인’ 불멸을 약속하면서 좀 더 인간적인 구원을 제시하는 데 있어. 이건 인간적 관점에서 진보지. 하지만 동시에 이 답변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이성이 신앙에 복종하게 되는 일종의 퇴행도 포함해. 이른바 이중적인 진전이지.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유대-그리스도교는 겉보기에 진부해 보일 수 있어도, 오늘날까지 서양 역사에 계속해서 영감을 불어넣고 있는 강력한 전통이지. 경의를 표할 만해!
이성의 시대, 세 번째 대답
첫 번째 인문주의 원리 - “자유와 이성으로 우리는 진보한다”
종교의 시대에 반기를 들며 등장한 첫 번째 인문주의 시대는 르네상스기와 계몽주의를 거치며 활짝 피어나지. 세 번째 대답인 ‘인문주의 원리’를 내놓으면서. 여기서 인류는 삶의 의미를 ‘인간의 이성과 자유’에 두면서 또 다시 인간적 관점에서 진일보하고, 또 한편으로 삶의 의미를 이성과 도덕으로 환원하면서 인간 존재의 모든 차원을 소외시키는 뒷걸음질을 경험하지. (이제 좀 감이 잡히지 않나? 크게 철학의 시대가 바뀔 때마다 ‘나아지는 면’과 ‘후퇴하는 면’이 있다는 것!) 그 뒷걸음질 끝엔 무엇이 나왔을까?
해체의 시대, 네 번째 대답
이상을 해체하다 - “인간 실존의 모든 면이 해방되어야 ‘좋은 삶’이지”
뒤이어 등장한 네 번째 대답은 ‘해체의 원리’야. 쇼펜하우어, 니체 등 어딘가 강렬한 이미지의 ‘망치를 든 철학자들’이 등장하지. 이들의 초점은 하나. 앞서 나온 대답(종교라든가 인문주의 원리)에서 나온 이상(理想)들을 끊임없이 해체하는 것이었어. 그래서 그간 원리나 이데올로기를 비롯해 각종 허상에 짓눌려온 인간의 실존적 차원을 해방시켰다는 점에서 한층 더 인간적인 관점을 얻었으나, 역시 극단적인 상대주의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부딪히고 말지.
사랑의 시대, 다섯 번째 대답
21세기의 삶에 가치를 부여할 새로운 목표
- “사랑하는 사람들, 곧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모든 이상이 해체된 21세기, 이제 막 등장한 철학의 다섯 번째 대답은 새로운 ‘삶의 의미’의 원리를 표방하지. 바로 ‘사랑의 시대’에 토대가 되는 ‘사랑의 원리’야. 이 대답은 첫 번째 인문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인간적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두 번째 인문주의’라 할 수 있어. 사랑은 연애결혼의 보편화와 현대 가족의 탄생, 그리고 현대 인도주의의 탄생을 거치면서 사적 영역을 넘어 사회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었지. 가족사랑이 곧 이웃사랑이 된 거야. 철학 얘기하는데 웬 사랑 타령이냐고? 다른 모든 ‘이상’들이 빛이 바랜 지금, 다른 감정들과는 달리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랑’이야말로 ‘새로운 형이상학적 원리’라니까. 사랑만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어.
“결국 철학은 언제나 ‘무엇이 더 나은 삶인가’에 대한 모색이었으며, 궁극적으로 필멸자인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리스인들은 두려움이 지혜의 가장 큰 적이라고 했다. 신과 이성이 사라진 시대, 두려움 없는 삶을 위한 아름다운 철학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로쟈(이현우)|한림대학교 연구교수,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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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 알랭 르노, 질 리포베츠키 등과 더불어 루이 알튀세르, 장 보드리야르, 미셸 푸코, 피에르 부르디외, 자크 데리다 같은 프랑스 68혁명 세대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소장학자다. 파리4대학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랭스대학에서 정치학으로 국가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캉대학, 파리7대학 등에서 교수를 지냈다. 알랭 르노와 함께 쓴 책 『68 사상La pensee '68』(1985)으로 처음 작가로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으며, 이후 1994년부터 2002년까지 교육부 국가자문위원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2년부터는 장 피에르 라파랭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철학자로서 뤽 페리는 그간 주로 종교와 분리된 인문주의를 주창해 왔다. 그의 저서는 지금까지 전 세계 30여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두려움을 극복하다Vaincre les peurs』, 『인간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homme?』(장 디디에 뱅상과 공저, 한국어판 제목은 『철학적 인간, 생물학적 인간』)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프랑스 인권문학상을 수상한 『인간-신 또는 삶의 의미L'Homme-Dieu ou le sens de la vie』, 메데치상(에세이 부문)과 장 자크 루소 상을 받은 『새로운 생태학적 질서Le Nouvel Ordre ecologique』, 도덕?정치과학 아카데미 에르네스트-토렐 상을 수상한 『현대인의 지혜La sagesse des modernes』(앙드레 콩트-스퐁빌과 공저), 『사랑 혁명La Revolution de l'amour』 등 의미 있는 저작 활동을 활발하게 계속해 오고 있다. 특히 지은이가 외딴 휴가지에서 무료함을 못 견딘 지인들에게 서양철학의 흐름을 이야기로 풀어 들려주는 『철학으로 묻고 삶으로 답하다Apprendre a vivre』는 프랑스는 물론 영어권에서도 베스트셀러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뤽 페리>,<클로드 카플리에> 공저/<이세진> 역13,5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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