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이명세와 시인 채호기가 주고, 받은 이야기 『주고, 받다』
영화, 시,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주고, 받다』는 영화감독 이명세와 시인 채호기, 두 친구가 나눈 예술과 삶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무더운 여름 가운데서 마치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듯 감각적이고 친밀하고 다정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두 친구는 영화감독과 시인이다. 영화감독과 시인이 될 당시, 이들은 친구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만난 이들에게 지난 시간을 나누는 것은 일이 아니었고, 그저 영화와 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바빴다. 신기하리만치 서로가 살아온 얘기는 뒷전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할 깊이의 우정을 나누고, 이제 이들은 서로에게 훌륭한 영감을 주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주고, 받다』는 영화감독 이명세와 시인 채호기, 두 친구가 나눈 예술과 삶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무더운 여름 가운데서 마치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듯 감각적이고 친밀하고 다정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소규모로 진행된 이 만남 행사에는 영화를 사랑하고,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두 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채호기 시인이 먼저 “이런 자리는 저도 처음입니다. 조금 서툴더라도 양해해 주세요.”라고 웃으며 인사했다. 이어 이명세 감독은 “1988년에 데뷔해 지금까지 여덟 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3년에 한 편 정도 만든 것 같아요. 가끔 올림픽 감독(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에 비유한 표현)이기도 하고요.(웃음) 지금은 영화를 만든 지 꽤 됐죠. 마지막 작품 <M>이 2007년에 개봉했으니까요. 계속 놀고 있습니다. 그냥 노는 것은 아니고, 이 시간을 아주 좋은 시간으로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라는 내용으로 근황을 전했다.
두 친구의 첫 만남
예술가의 삶을 오랫동안 살아온 두 친구가 주고받은 편지들은 그 시간의 깊이만큼이나 묵직했다. 가장 먼저 낭독의 시간으로 두 친구의 내밀한 세계에 참석자들을 초대했다. 채호기 시인은 “가장 사적인 글이 있어요. 그 부분은 읽어보겠습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며 낭독을 시작했다. 이명세 감독과의 첫 만남을 추억하는 대목이었다.
늦은 귀갓길에서 나는 종종 밤의 한복판에 섬처럼, 등대처럼 서 있는 그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가서 한참을 홀로 서 있곤 했다. 그 늦은 밤에 어디론가 뚜렷이 전화할 곳도 없으면서, 수화기를 들고 마치 보이지 않는 상대와 심각한 이야기라도 나누는 듯이 전화 거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159~160쪽)
우리 둘은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름과 어느 정도의 인간됨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네가 먼저 연락해온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놈인지 한번 보고 싶다.” 그리고 신촌사거리 근처 어느 술집에서 우리는 만났다.(167쪽)
이명세 감독은 곧이어 “이심전심인지, 제가 읽으려고 했던 글 역시 우리 관계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함께 읽어보겠습니다.”라 하며 투박하지만 진실된 낭독을 이어갔다.
그랬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니, 서로의 지나간 시간에 대해 단 한 번도 작정하고 물어본 적이 없었다. 너나 나나 만날 때부터 그렇게 하자고 규칙을 정한 것도 아니었다. 묵계였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영화를, 시를 그리고 살아가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과거사나 서로의 사생활은 메인 정식이 아니었다. 그때그때의 에피타이저나 디저트쯤, 혹은 간식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동안은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먹는 사치(?)가 허용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73쪽)
채호기 시인은 이명세 감독의 영화 <개그맨>을 보고 감탄했다. 시인이 영화를 본 곳은 그러나 동시상영관. 시인이 이명세 감독에게 물었다. “제가 삼류극장, 동시 상영하는 곳에서 영화를 봤다고 했는데요. 그것이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어요. 왜 삼류극장에서 보게 됐을까, <개그맨> 상영과 관련한 배경을 좀 설명해주세요.”
이명세: 저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1988년 데뷔라고 한 곳도 있고 1989년 데뷔라고 한 곳도 있어요. 분명하게는 1988년 <개그맨>이 개봉했어요. 부산의 한 극장에서요. 당시는 지금 같은 복합 상영관이 아니라 단관 상영이었죠. 이 영화는 당시 가장 잘 나가는 영화사에서 데뷔했는데도 당시 <다이 하드>가 개봉하는 바람에 <개그맨>의 상영이 계속 연기되었어요. 흔히 영화는 생물 같다고 하는데요. 이런 이유로 영화가 계속 묵혀지니까 제작사 쪽에서는 그냥 버릴 수도 없고 해서 부산의 한 극장에서 먼저 상영을 했던 거예요. 그 다음 해에 단성사에서 개봉을 했고요. 계획된 개봉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문에 간단한 정도의 광고만 났었죠.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알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삼류극장에서 상영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던 것이죠.
첫 작품이 계획대로 개봉해서 알려지지 못해 아쉬울 법도 하지만 결국 이 <개그맨>이라는 영화가 채호기 시인과 이명세 감독에게 단단한 연결 고리가 된 셈이다.
이어 편안하게 질문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계속 되었다.
두 예술가에게 궁금한 모든 것
낭독하신 부분에서 서로가 알지 못했던 유사성에 의해 가까워졌다고 하셨어요. 전체적인 글에서 두 분은 유사성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어떤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채호기: 유사성이라고 한 것은 저 혼자의 생각인데요. 저 역시 『밤의 공중전화』라는 시집을 내고, 공중전화에 관한 시도 썼습니다. 무의식 속에 공중전화박스에 대한 어떤 것이 있었는데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이라는 영화에 나온 공중전화박스 장면을 보니 무척 인상 깊었어요. 그 장면이 많이 나오진 않지만 말이죠. 도망 중에 도시 외곽에서 잠시 한숨 돌릴 때 배우가 공중전화박스에 가서 전화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 장면이 인상 깊었고 그 부분에서 어떤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개그맨>에서 주로 열차를 타고 도주를 하는데요. 제 시에도 열차에 대한 많은 이미지들이 있거든요. 열차와 공중전화박스라는 유사성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물론 성격도 많이 다르고요. 글 쓰는 스타일 역시 물론 다를 수밖에 없겠죠. 지적하신 부분이 맞습니다.(웃음)
영화를 볼 때 늘 고민되는 지점이 정말 좋은 영화임에도 관객과 가까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간격을 좁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명세 감독님의 작품 역시 미학적이고 공부할 부분이 많은 영화인데 관객 입장에서는 좀 어렵게 느끼는 면도 있어요.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명세: 영화야말로 시간 예술이잖아요. 물론 시대가 바뀌면서 DVD라든지 다른 방법으로 영화를 볼 수 있지만요. 환경도 많이 달라졌고요. 보는 공간, 방식 등이 다양해졌어요. 문제는 그런 영화가 그곳까지 닿는 과정이에요. 좋은 영화들이 있지만 소개가 안 되잖아요. 저널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소통을 시키고, 좋은 영화를 찾아내주는 것이 저널의 역할인데 말이죠.
브로드웨이의 경우 연극도 시사회를 했어요. 어떤 연극은 보고난 후 관객들의 표정이 아주 어두워요. 이해도 안 되고요. 그래도 그들이 기다리는 것이 있어요. 다음날 새벽 <뉴욕타임스>의 기사예요. 아직도 저널이라는 게 살아있다는 거죠. 우리가 알고 있는 근현대사 최고의 극작가 작품들이 다 시사회 때는 관객들에게 외면 받았지만 평론가들이 ‘꼭 봐야 한다’고 한 작품들이에요. 그렇지 않았다면 이 위대한 극작가들의 작품을 우리는 볼 수 없었겠죠. 문학,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순간, 특히 국내에서는 지식인들의 역할이 많이 축소되었어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요. 대중이 평론가들에게 배신을 느낀 경우도 생기고요. 저널이 얼마나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써주느냐가 중요해요. 요즘은 어떤 면에서 혼돈의 시대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매체의 힘은 커졌는데, 그 안에서 뭔가 하는 사람들의 힘은 적어진 것 같아요.
채호기: 저도 영화는 잘 모르지만 들은 얘기가 있어요. 영화가 만들어지더라도 극장에 올리지 못해서 사장되는 영화들이 1년에 200편정도 된다고 해요. 영화라는 것이 적은 돈을 들여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그런 영화들이 있다고 하니까 무척 안타까운 일이죠.
문학이나 책은 현재 매니악하게 느껴질 만큼 소수가 향유하는 분야라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영화에 비하면 훨씬 더 그런 면이 강한데요. 문학 안에서도 시라는 분야는 더욱 그럴 테죠. 시인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세요?
채호기: 시를 쓰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이제 시를 써서 먹고 산다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그런 점에서 시라는 것은 판매라는 것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죠. 마음대로 쓸 수 있어요. 대중의 눈치를 안 보고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쓸 수가 있죠. 어떻게 생각하면 시인들이야말로 예술가적 태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독자 눈치를 안 보고도 쓸 수 있는 단계가 있으니까요.
시인들은 대부분 직업을 가지고 있죠. 그렇다면 이들에게 시 쓰는 일이 자기 일의 주변부에 있는 것이냐? 그렇지 않아요. 시가 중심이라고들 해요. 직업은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갖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때문에 시가 소중한 것이고 시야말로 지금 시대에 가장 순수한 예술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거친 세상에 시는 섬세함으로 대항하고 있다”고 누군가 말했어요. 모든 언어가 거칠죠. 방송, SNS 모두 그래요. 섬세하고, 꼼꼼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왜 시가 중요한지 알 수가 없겠죠. 이 바쁜 세상에 밥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웃음) 과장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시를 읽는다는 사람을 보면 좀 다르게 보여요.
이명세: 정말 중요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대중에게 시가 공급되지 않음으로써 예술성을 지킬 수 있다는 이야기에 무척 공감했어요. 사람들에게서 멀어져갈 때, 이때 진짜 예술이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어느 곳에 박혀있는 수도자들,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시인은 그런 수도자와 같은, 가장 순수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죠. 저도 영화를 하는 사람들에게 꼭 시를 읽으라고 해요. 하지만 안 읽어요. 그게 너무 좋아요.(웃음) 예술은 보물과 같은 것이고, 인간 정신에 있어 시야 말로 순수함을 수혈하는 어떤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순수함이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죠. 태고에 갖고 있었던 느낌들을 품은 것을 보고 ‘시적이다’라고 하잖아요. 제가 어떤 영화에 ‘시적이다’라고 말하면 그건 최고의 칭찬이에요.
예술이라는 틀 안에서 시와 영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채호기: 시와 영화, 그림은 굉장히 가까워요. 모두 이미지일 수 있죠. 시와 소설은 약간의 거리가 있는 것이 소설은 이야기 중심이라는 점인데요. 시는 언어로 이미지를 만들어내요. 그런 점에서 영화와 시가 가깝다고 말할 수 있어요. 실제 우리 기억에 오래 남는 것들은 이미지예요. 감각적이거든요. 감각적인 것들은 육체에 새겨지죠. 어떤 음식의 맛, 감각적이기 때문에 안 잊어버려요. 이야기는 머리로 이해하는 성격이 강한 거죠. 이야기는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접근이 쉽죠. 그렇지만 쉽게 잊어버릴 수 있어요.
이명세: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전시회를 갔는데 너무 시끄럽더라고요. 뭐가 시끄러웠냐 하면 너무 설명을 많이 써놨어요. 이를 테면 그림 이야기책이었어요. 채호기 시인이 한 얘기와 같은 맥락이에요.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여러 감각을 방해했죠. 추상이라는 건 뽑아내는 거예요. 수학에서 빼기와 같은 것인데요. 작가의 눈으로 무언가를 빼서 뽑아내는 거죠. 시는 언어를 뽑아내고, 영화는 프레임의 움직임으로 장면을 뽑아내요. 카메라 앵글, 프레임으로 장면을 만들죠. 다양한 방법으로 사물을 달리 볼 수 있어요.
이명세 감독이 크게 영향 받은 감독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이명세: 다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과거에는 지난 영화들을 볼 수가 없었어요. 어린 시절에 본 영화들이 기억의 창고 속에 남아있었겠죠. 지금처럼 공부하듯이 어떤 영화를 계속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영상자료원이라는 곳이 생긴 것도 얼마 안 됐으니까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나서 그때는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상력을 더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요. 영화를 많이 보면 영화를 잘 찍을 수 있느냐? 아닐 거예요. 책을 많이 읽으면 소설을 잘 쓰나? 그렇지도 않잖아요. 잘 볼 수 있는 훈련이 되어야 하는데 그건 많이 본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책을 통해서 상상력을 더 키웠던 것 같아요. 시도 그렇고요. 어떻게 이런 단어를 썼을까 깜짝 놀라요. 그건 영화의 한 샷과 같거든요. 이야기 자체에 빠졌던 적은 없는 것 같고요. 문장이 주는 배열의 힘에 태생적으로 반응했던 것 같아요.
현대시를 읽다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추상화 같은 면이 있다고도 생각해요. 읽기가 쉽지 않은데 과거 윤동주 시인처럼 읽기 편한 시만 읽어야 할지 고민이 들기도 하고요.
채호기: 시가 2000년대 이후부터 많이 달라졌어요. 그 이후 등단한 한국의 시인들부터 말이에요. 이전 시들은 주로 ‘나’라는 사람, 시인의 가면이 쓴 화자가 중심이 되어 그 화자가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들을 썼어요. 2000년 이후에는 화자 ‘나’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거예요. 화자가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화자가 감각, 동물 등으로 많이 바뀌었어요. 물론 모든 시들이 그런 것은 아니고 시들이 각자 다 다릅니다. 이런 상황이니 예전 시만 읽었던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굉장히 낯선 세계죠. 하지만 그것이 한국의 젊은 시인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화자들이에요. 전문 비평 용어로는 ‘비인칭 화자’라고 합니다. 왜 이런 화자를 썼는지 질문을 던져봐야 해요. 주체의 문제가 화두가 된 이후 시가 변했다고 볼 수 있죠.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말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이명세: 전체가 다 기억에 남아요. 오고 갈 때는 잘 몰랐어요. 원고 교정하면서 읽으니까 제가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준 것 없는 것 같고요. 책 제목이 ‘주고, 받다’인데요, 저는 ‘받다, 받다’인 것 같아요.(웃음)
채호기: 책 출간 후에 출판사 대표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이성복 시인이 이 책을 읽고 하신 말씀 중에 “채호기는 인파이터고 이명세는 아웃파이터다”라고 하신 말씀이 있대요. 왜 그런 말씀을 했는지 저는 금방 알아들었어요. 인파이터는 주먹을 먼저 날리고, 아웃파이터는 주먹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받아치죠.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이명세 감독은 글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와 같이 글을 쓰게 되다보니 생긴 모습이죠. 싸움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제가 해야 했고요, 이 친구가 받아치는 구조였어요. 이명세 감독이 ‘받다, 받다’라고 한 것은 그만큼 아웃파이터 입장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아요.
주고, 받다이명세,채호기 공저 | 꽃핀자리
이명세 감독과 채호기 시인의 서간집 『주고, 받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1년 6개월 동안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풀어서 다듬고, 에필로그에 따끈따끈한 새 편지를 추가해서 묶어낸 서간집이다. 두 사람의 운명 같은 첫 만남 이후 진짜 20년지기가 된 두 사람은 서로 힘이 들 때, 흔들리고 있을 때 위로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따듯한 교감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영화감독과 시인으로서 영화와 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친구로서 서로의 삶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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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이명세>,<채호기> 공저12,600원(10% + 5%)
이명세 채호기가 주고받은 편지 영화와 시, 그리고 삶에 대한 따뜻한 교감 이명세 감독과 채호기 시인의 서간집 『주고, 받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1년 6개월 동안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풀어서 다듬고, 에필로그에 따끈따끈한 새 편지를 추가해서 묶어낸 서간집이다. 두 사람의 운명 같은 첫 만남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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