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윤하정의 공연 세상
요즘 TV를 보면 수많은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가수들이 태어나고, 잊힌 노래들이 다시 사랑받고, 실력파 가수들이 재조명받기도 하는데요. 오랜 세월 무명이었던 그에게도 이 프로그램은 대중을 만나게 된 소중한 통로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2001년에 데뷔해 가수로서 제대로 활동도 못해봤던 그는 요즘은 심심찮게 음악방송에 얼굴을 내밀고 있죠. 항상 모자를 쓰고 있어서 힙합가수인줄 알았는데, R&B의 교본으로 불리며 남서울예술종합학교 실용음악과 교수로까지 임용됐습니다. 최근에는 싱글 앨범을 발표했고, 며칠 뒤에는 단독 콘서트도 마련한다고 하는데요. 무척이나 드라마틱한 삶을 살고 있는 그, 가수 문명진 씨를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봤습니다.
“음악 차트 같은 걸 보면 주식하는 것처럼 계속 보게 돼서 이제는 안 봐요. 저야 노래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고.”
문명진 씨는 최근 신곡 ‘겨울 또 다시’를 발표했습니다. 요즘은 음원 차트가 있으니 정말 실시간 평가받는 기분이겠네요.
“<불후의 명곡>을 하면 이 정도는 뭐... 거기서 너무 평가를 받으니까요.”
그런 프로그램에서는 3~4분 안에 점수가 매겨지는 거니까 다 쏟아내잖아요. 그래선지 신곡은 좀 밋밋한 것도 같고요.
“경연 곡처럼 하면 듣는 사람도 힘들어요. 현장에서 보는 분들은 더하시겠지만, 노래를 듣는 사람도 긴장하거든요. 음반으로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곡, 경연할 때는 다이내믹하게 빌드 업을 많이 하죠. 특히 이번 신곡은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쉬운 패턴으로, 멜로디도 난해하지 않게 풀어봤어요. 옛날 느낌, 첫사랑의 향수가 나는 느낌으로요.”
경연 당시 마이클 볼튼이 극찬했다는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도 실렸는데, 마이클 볼튼이 직접 디렉팅에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만나보니 어땠나요?
“그냥 동네 아저씨 같았어요. 무척 포근하고 따뜻하고. 디렉팅하는 내내 자상하게 대해 주셨고, 지금도 트위터로 연락하면서 안부도 묻고 있어요.”
그러고 보면 문명진 씨에게는 2000년대와 2010년대가 굉장히 다르죠?
“그렇죠. 어쨌든 제가 서 있는 자리가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풍경도 다르잖아요. 그때와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죠. 그런데 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힘든 시간을 잘 버텨왔다고 하는데, 저는 고생인지 모르고 그냥 했거든요. 방송에 나오는 것 외에 제 생활이나 만나는 사람들이나 패턴은 변한 게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그때는 제가 생활비를 걱정하면서 음악을 했다면 이제는 그런 걱정을 안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일 수도 있죠. 그런데 그때도 크게 불편하지 않게 음악을 했어요. 서러울 때도 분명히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부족해도 누구 앞에서나 당당할 수 있잖아요. 가진 거라곤 자존심 하나 밖에 없었거든요.”
달라진 것 중에 가장 큰 게 이름을 걸고 콘서트를 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콘서트하잖아요. 밸런타인데이를 겨냥한 건가요?
“아, 그렇죠. 제 노래들이 신나는 댄스가 아니라 느린 템포의 R&B 발라드 팝이라서 연인과 함께 와서 잔잔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공연으로 만들고 있어요. 준비 많이 하고 있고요. 화려한 퍼포먼스나 무대 장치는 없겠지만, 음악을 좋아하시고 노래를 듣고 싶다면 이번 공연에서 실망하지는 않으실 거예요.”
콘서트 주제가 ‘나의 노래’입니다. 물론 문명진 씨의 재해석 과정이 있었지만 TV에서 주로 다른 사람의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이번에는 문명진 씨 노래들로 꾸며지는 걸까요?
“<불후의 명곡>에서 했던 노래들도 분명히 제 느낌으로 표현하고 재해석했기 때문에 제 노래처럼 애착을 갖고 있어요. 노래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 어떻게 보면 편곡하는 게 원곡이 갖고 있는 느낌을 잃지 않으면서 새로 만들어야 해서 더 어려울 수 있거든요. 또 <불후의 명곡>을 통해 저를 알게 된 분들이 많은데 거기에 나온 노래들을 안 하면 안 되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 어떤 곡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떤 그릇이든 그 안에 문명진이라는 내용을 담아서 표현하고 싶어요.”
콘서트는 노래도 하고 직접 진행도 해야 하잖아요.
“처음 단독 콘서트할 때 3시간 가까이 했는데 말주변이 없어서 노래만 했어요. 이번에는 말을 많이 해보려고요. 음악뿐만 아니라 또 다른 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잖아요. 또 올해 목표 중의 하나가 150~200석 정도 소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싶어요. 1시간 30분 정도, 2인 밴드로 10곡을 넘지 않는 선에서요. 노래보다도 관객들과 섞이고 싶거든요.”
좀 억울하거나 속상하지는 않나요? 물론 흘러간 시간만큼 발전했겠지만, 과거에는 사람들이 몰라봐주더니 이제와 이렇게 열광하는 것에 대해서요.
“<불후의 명곡>을 하면서 항상 긴장하고 준비를 하니까 제 실력도 많이 늘었어요. 과거에는 목적이 있어서 음악을 한 게 아니라 좋아서 했고, 생활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올인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버리지도, 아예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한 어중간한 위치에서 음악을 하다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걸 모두 하고, 또 지원해주는 환경이 생기니까 그때보다 훨씬 더 음악에 집중하고 융통성 있는 음악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음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면 지금은 음악에 집중하되 대중이 원하는 것도 고려해야 할 텐데요.
“저는 대중가수지 앞에 어떤 수식어도 어울리지 않아요. 사람들이 과분한 수식어를 붙여주시는데, 그런 거 정말 민망하고. 저는 그냥 대중가수고, 대중들이 좋아할 음악을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중이 좋아할 곡, 저도 그 곡을 표현할 자신이 있다면 어떤 장르의 노래든 상관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오랜 기다림 끝에 빛을 본,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삶을 보여주고 계시잖아요.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단지 한 우물만 팠다고 잘 될 수는 없어요. 재능만 갖고 막연한 기대감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그 어떤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할 거예요. 물론 저도 매일 최선을 다해 음악을 했다고는 말 못해요. 몇 년 동안 게임에 빠져 시간을 허비한 적도 있지만,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있을 자리를 빨리 찾아내고 계속 단련해야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어요. 음악이 액세서리는 아닌 것 같아요. 음악이라는 예쁜 장식만 보고 뛰어들어서 시간을 허비하고, 그렇게 젊음을 낭비하는 건 좋지 않죠. 부단히 노력하고 연마해야 좋은 보석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문명진 씨의 지금 꿈은 뭔가요?
“음정이나 리듬에서 해방되는 게 꿈이에요. 있는 그대로, 마음을 그대로 전하고 싶은데, 머릿속에는 항상 ‘틀리지 말아야 해, 실수하지 말아야 해.’ 이런 생각들이 저를 긴장하게 하고 집중하지 못하게 하거든요. 느낌 그대로를 표현하고 전달하고 싶은데, 아직은 내공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말주변이 없다는 문명진 씨는 사람들이 꽤나 들어찬 카페에서 아주 열심히 기자의 질문에 답해줬습니다. 하긴, 할 말이 많을 법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노래에는 꽉 들어찬 느낌이 있는 것일 테고요. 가수에게 가장 큰 행복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자신의 노래가 담긴 음반을 발매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라이브 공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겠죠? 오랫동안 가수인 듯 가수가 아니게 살아왔던 그는 이제야 원 없이 그 행복을 맛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콘서트에서 그 행복한 기운을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 참, 문명진 씨에게 왜 항상 모자를 쓰느냐고 물었더니, 예전에 레게 머리를 많이 했는데 그것 때문에 탈모가 생겼다고 하네요. 힙합 스타일을 좋아한다며, 야구모자와 달리 챙이 일자인 스냅백은 국내에서는 선두 주자에 속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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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