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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엽기적인 그녀> 견우와 그녀의 진짜 마음을 말하다

연극 <엽기적인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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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지난 해 9월부터 대학로 아츠플레이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엽기적인 그녀>는 영화 속 감춰졌던 이야기들을 들춰내며, 원작과는 또 다른 감동과 재미를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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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와 그녀, 진짜 마음을 말하다


프랑스의 거장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 말했다. 같은 영화를 두 번 보고,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거치게 마련인 이 과정에는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영화가 말해주지 않은 시간과 사건을 더듬는 일이다. 오리지널 영화를 기준으로 선행하거나 뒤이어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시퀄’ ‘프리퀄’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도 이와 같은 현상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시퀄-오리지널-프리퀄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관객은 사건의 인과관계뿐만 아니라 인물의 감정이 변화해 온 까닭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연극 <엽기적인 그녀>는 2001년 개봉된 동명의 영화를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이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의 시퀄 혹은 프리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들까지 담아냈다는 것이다. ‘견우’보다 먼저 ‘그녀’를 찾아왔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프리퀄의 것이라면, 우연히 재회한 이후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보여주는 부분은 시퀄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 봐”라는 알 듯 모를 듯 한 말만을 남긴 채 견우의 곁을 떠난다. 견우의 사랑에 응원을 보냈던 관객들에게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짙은 아쉬움을 남기는 선택이었다. 아무리 엽기적이고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묵묵히 들어주는 견우 같은 남자가 세상 어디에 또 있다고 저렇게 훌쩍 떠나간단 말인가. 그러나 그녀의 지나간 사랑에 대해 알고 나면 작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끝나버린 사랑임에도 그 끈을 놓지 못하고 아직까지 앓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다시 찾아온 사랑 앞에서 주저하는 그녀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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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연극 <엽기적인 그녀>는, 원작과 달리, 견우의 시점에만 매여 있지 않다. 견우는 물론 관객들도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녀의 속마음을 말해준다. 영화라면 내레이션으로 처리했을 법한 이야기지만 연극 <엽기적인 그녀>는 연극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 바로 또 다른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 각각 ‘견우의 분신’ ‘그녀의 분신’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등장하는 두 명의 배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견우와 그녀의 속마음을 들려준다. 동시에 이들은 ‘그녀’와 ‘그녀의 옛 연인’을 연기하며 그녀에게 남아있는 사랑의 흔적을 드러내 보여준다.

 

마침내 견우가 물었다 “우린 도대체 무슨 사이야?”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보며 관객들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견우와 그녀는 도대체 어떤 사이였을까, 사랑과 우정 사이 그 어디쯤에 있었을까’. 연극 <엽기적인 그녀>에서 이 질문은 ‘견우의 분신’을 통해 던져진다. “우린 도대체 무슨 사이야?” 차마 묻지 못했던 질문은 독백처럼 터져 나오고 ‘그녀의 분신’은 들리지 않을 이야기로써 답한다. 그리고 또 하나, 끝내 묻고 싶었던 말이 남아있다. 타임캡슐을 묻어 둔 나무 아래에서 다시 만나자 약속했건만 그녀는 왜 오지 않았던 걸까. 견우의 분신은 묻는다. “그 날 왜 안 왔어?” 관객들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이유까지도 연극 <엽기적인 그녀>는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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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분신이 나누는 대화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원작 영화가 개봉된 지도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연애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200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던 영화 속 인물들과 달리 연극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는 89년생, 그녀는 91년생으로 더 젊어졌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연애의 패턴은 변함이 없다. 속마음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데 익숙하고, 때로는 반대되는 말로 스스로까지 속이곤 한다.

 

그 결과 두 사람은 상대의 진심을 알지 못한 채 헤어지기도 하지만, 종종 그 모습은 바라보는 관객에게 웃음을 안겨주기도 한다. ‘왜 우리는 연애할 때 솔직하지 못한 걸까. 좋아도 좋다고 말하지 못하고, 싫어도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싶은 생각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이다. 그들의 연애와 우리의 연애가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영화의 마지막과 같이 연극 <엽기적인 그녀>에서도 두 주인공은 ‘운명처럼 우연히’ 재회한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말해주지 않았던 그들의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나 갈게”라는 말로 돌아서는 견우에게 그녀는 “그래”라고 대답하지만 그녀의 분신은 “가지마”라고 읊조린다. 모순투성이인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그것이 낯설지 않은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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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매력이 크고 작은 웃음 뒤에 찾아오는 진한 감동이라면, 연극 <엽기적인 그녀>는 그 유산을 훌륭히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배우들의 코믹한 연기와 무대라는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기 위한 기발한 설정들은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들이다. 그리고 원작 못지않은 감동적인 장면들이 뒤를 잇는다. 영화 속에서 장미꽃을 들고 그녀의 연주회를 찾아 간 견우의 모습이 있다면, 연극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견우가 있다. 특히 연극만이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원작과 차별화되는데, 그녀에게 남은 사랑의 상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노 마임은 놓칠 수 없는 명장면이다. 원작도 말해주지 않은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연극 <엽기적인 그녀>와 마주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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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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