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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2> 우리 괜찮은 거죠?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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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관객 33만 명’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 초대, 전석 매진’의 기록을 세우며 작은 무대의 저력을 입증해 보인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2>가 오픈 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쫓기듯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지금 이대로 괜찮을 걸까’ 묻는 이들에게 연극은 작은 위로를 건넨다.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2>는 평범한 세탁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하룻밤의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 문제적 손님 ‘그’가 찾아오기 전까지 오아시스 세탁소의 시간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흘러갔다. 라디오에서는 ‘별이 빛나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왔고, 오아시스 세탁소의 주인인 강태국은 밤늦게까지 손님들이 맡긴 옷을 다림질하고 있었다. 50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낡은 세탁소의 하루란 그렇게 변함없는 것이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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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강태국의 일상에는 작은 균열들이 생겨났다. 이웃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덩그러니 남아있는 세탁소를 찾는 발길은 잦아들었고, 어려워진 살림에 아내는 빌딩 청소 일을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던 외동딸은 안정적인 일자리가 제일이라며 공무원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공부방도 없는 집을 떠나 독서실에서 밤을 보냈다. 팍팍해진 삶은 가족들이 마주앉는 시간뿐 아니라 꿈마저도 앗아갔다. 그래도 강태국은 여유와 온기를 잃지 않는다. 같은 집에 세 들어 사는 아가씨가 택시 요금을 이유로 싸움이 붙자 두말없이 돈을 내어주고, 사업 실패 후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가는 친구에게는 슬며시 담뱃값을 쥐어준다.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는 인물들의 현실은 언제 헐릴지 모르는 세탁소의 운명과 궤를 같이 한다.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의 입맛이 쓴 까닭은 그 모습이 결코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담보 잡혀야 하고, 현실 앞에서 꿈을 떠나보내야 하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다. 이 미로에도 출구는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눈 먼 돈이 굴러 들어온다면 조금은 다른 삶을 살게 될까. 객석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올 때쯤, 오아시스 세탁소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눈 먼 돈과 함께!


강태국에게 옷을 맡긴 뒤 세탁소를 떠났던 그는 다시 돌아와 잃어버린 지갑을 찾는다. 옷 속에 넣어두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의심의 눈초리로 강태국을 바라본다. 그러나 주인공은 불쾌해 하기는커녕 제 일처럼 걱정하며 지갑을 발견하게 되면 반드시 연락을 주겠노라 약속하고 손님을 돌려보낸다. 물론 그것은 진심이었다. 한 통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세탁소에 홀로 남은 강태국은 아내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형님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딸의 보험을 해약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온 것. 그녀는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하지만 강태국은 자책감에 사로잡힌다. 무능한 가장이라는 절망감은 곧 그를 쥐고 흔들었다. 손님이 잃어버린 지갑이 세탁소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지갑만 찾으면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있을 거라는, 강한 유혹이 시작된 것이다.

 

강태국은 세탁소의 불을 끄고 문을 걸어 잠근다. 손전등 하나에 의지한 채 수색을 시작하며 그는 외친다. “나는 아버지야. 모든 게 결과론이야. 내 식구 하나 건사 못하면서 무슨 양심이야!” 강태국을 지켜보는 관객의 눈에 담긴 것은 안타까움일지언정 힐난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직하게 열심히 산다는 것이 공허한 외침처럼 느껴지는 현실에서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은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유혹이 아닌 행운이라 부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그는 지갑을 손에 넣었다. 헝클어진 옷가지들 사이에서 그의 머릿속도 복잡해져갔다. 이대로 가져도 괜찮은 걸까. 그러나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잃어버린 지갑을 찾았다며 손님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실낱같은 희망이 증발해버린 자리에 멈춰 선 강태국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뒤이어 강한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이 지갑의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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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속에는 그가 잊었던 시간들이 잠들어 있었고, 그 시간은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간다. 자칫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자세한 내용은 전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힌트를 제공한다면, 현실 앞에 무릎 꿇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아야 했던 순간들이 강태국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갑의 주인이 그러했듯 끝내 양심을 지켜낸 그는 객석을 향해 미소 지으며 묻는다. “나 괜찮죠?”라고. 그 순간, 한 바탕 소동이 벌어질 때는 잠시 잦아들었던 라디오의 음량이 다시 높아지고 ‘우리 이제 괜찮아’라는 노랫말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2>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배우들이 건네는 안부다. “괜찮아요”라고 다독이는 그 목소리는 질문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당신은 지금 괜찮느냐고, 지금 우리는 이대로 괜찮은 거냐고.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극장을 나설 때, 무거운 걸음 뒤로 끈질긴 질문이 따라붙었다. 그 밤 오아시스 세탁소를 습격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냉혹한 현실이었을까, 그와 타협하려는 욕망이었을까. 언제부터 우리의 밤은 ‘별이 빛나는 밤에’가 아닌 ‘별이 빛나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가 잠식해 버렸을까. 별이 빛나던 그 밤을, 강태국은 다시 되찾았을까. 그가 잃어버렸던 별을 우리는 잘 지켜내고 있나.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2>를 통해 저마다의 하늘을 올려다 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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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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