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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 상트페테르부르크

네 번째 날 4박 5일간의 러시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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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진짜 러시아다!’

‘이게 바로 진짜 러시아다!’

 

눈앞에 나타났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습에 마치 뒤통수를 맞은 듯 그 모습에 얼얼했던 기억이 난다. 회색의 그저 크기만 한 도시가 아닌 역사와 예술을 그대로 품은 채 여행자를 홀려서 역에서 나오자마자 감탄사를 연발하기만 했던 그때. 그 긴 넵스키 대로를 끝없이 걸었던 여름날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잊을 수 없는 여행의 한 자락이었다. 겨울, 드디어 나는 그 순간을 재현하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 행 새벽 열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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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너는 어디로
  
새벽 6시 45분에 출발하는 기차. 아침이라고 할 수도 있는 시간이었지만 새벽 별이 아직도 빛나는 시간. 러시아의 고속열차 ‘삽산’에 오르니 첫 차인데도 만석이다. 중간에 쉬지 않고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가는 기차였으니 열차에 탄 모든 승객의 행선지는 같을 터.

 

오전 11시 도착. 역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추웠다. 여름에도 오소소 팔에 소름이 돋더니 겨울이야 오죽할까. 한겨울 북반구의 날씨를 온몸으로 느낀다. 너무 멀리 혼자 떠나왔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부여 멘 가방이 더 무거웠다. 그래도 여긴 상트페테르부르크 아니던가. 다시 올 줄 몰랐던 그곳, 러시아 여행의 하이라이트.

 

아……. 그런데, 여기는 어디일까.

 

겨울이라는 계절을 감안해도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을 뿌릴 듯 흐리고 안개마저 자욱하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온도는 영상 1도. 얼었던 눈이 녹아 길은 질척대고 도로의 차들은 구정물을 튀기며 달리고 있다. 그 찬란하던 넵스키의 건물도 흐린 하늘 아래서는 빛바랜 옛 건물일 뿐 모든 것이 우울해 보인다.

 

러시아 여행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도시를 기다렸건만, 도착과 함께 그 판타지가 산산이 깨져 버렸다. 어젯밤 파티에서 만난 화려했던 그녀가 아침에 민낯으로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조금은, 여전했다. 다리를 건너 고개를 돌리면 피의 사원이 있고 길 건너 카잔 성당이 있었다. 황금 지붕의 이삭 성당도 안개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때 찬란한 햇빛 아래 빛나던 그 모습과는 달랐지만 이것도 이 도시의 모습이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하고 바라보니 나름 분위기 있는 것 같다. 머리가 벗겨지고 배나온 첫사랑일지라도 여전한 그 눈빛에서 애잔함을 느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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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아름다운지

 

넵스키대로 양 옆으로 늘어섰던 화려한 유럽식 거리, 에르미타주의 어마어마한 갤러리, 백야의 네바 강. 모두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상징하는 어떤 장면이지만 진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음을 실감하는 순간은 바로 ‘피의 사원’을 맞닥뜨렸을 때다.

 

쭉 뻗은 넵스키대로를 걷다가 가장 먼저 감탄하게 되는 것은 왼편에 있는 카잔 대성당이다. 기둥을 늘어뜨린 성당은 어쩐지 이제껏 보아 온 러시아 성당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오, 뭔가 다른데?

 

역시 모스크바와는 뭔가 달라, 하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면 그 순간 오른쪽에 딱 서 있는 ‘피의 사원’을 발견하게 된다. 

 

운하를 끼고 들어간 골목에 있는 탓에 넵스키대로 중간쯤에서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 ‘피의 사원’.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느닷없이 만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피의 사원’을 맞닥뜨리는 순간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자 드디어 이 도시에 왔음을 확인시켜 주는 도장과도 같은 것이다.

 

수없이 되뇌던 여행의 하이라이트.
드디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음을 실감하게 되는 이 순간.
피의 사원이 저 만치 그대로 서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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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도착해 넵스키 대로를 끝없이 걸었다. 카잔 대성당도, 피의 사원도, 이삭 대성당도 보고 네바 강가에 다다라 에르미타주 박물관까지 둘러보고 나오자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해가 뜨지 않은 것처럼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종일 어두컴컴하더니 그냥 그렇게 밤이 되고 만 것이다.

 

단 한나절로만은 절대 부족한 이 도시를 조금이라도 더 보겠다며 이리저리 뛰었지만 저녁이 되고 나니 마땅히 갈 데가 없었다. 박물관도 성당도 문을 닫고 나는 식당에서 우두커니 홀로 앉아 쓸쓸한 식사를 하는 것으로 이 도시와의 재회를 끝내야 했다. 모스크바로 돌아갈 기차 시간은 아직 남아 있는데 너무 서둘러 작별을 고했나. 기차역 반대편으로 다시금 슬슬 걸어본다. 

 

넵스키 대로 차선 위에 장식되어 있던 크리스마스 네온 장식에 불이 번쩍 들어왔다. 주황색 가로등 길이 갑자기 파란 네온 빛으로 환해진다.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모두가 넵스키의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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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리 급해 서둘러 돌아가려 하니?

 

반짝이는 조명이 마치 내게 눈을 흘기는 것만 같다. 단 하루, 채 24시간이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이 도시를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지. 나도 알아, 안다구.

 

뜨거운 안녕

 

이 여행을 또다시 오겠다고 기약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 아쉬운 상트페테르부크, 이제 진짜 작별을 해야 할 때. 나는 이 시간을 그리워하게 될까.

 

덜컹, 하고 기차가 움직인다. 기차는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아침이면 나를 모스크바에 내려줄 것이다. 

 

건배!

 

무사히 끝나가는 이 여행에, 혼자서도 잘 해낸 나에게, 그리고 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작은 건배를 건넨다. 혼자 마시는 이 달콤 씁쓸한 맥주 한 잔이 위로가 되어준다.


안녕 상트페테르부르크
안녕 나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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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내 안의 그대 러시안 블루』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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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그대, 러시안 블루서현경 저 | 시그마북스
어떤 일은 생각지도 않게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계획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는가 하면 생각조차 못하고 있던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여행이란 그렇게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행동으로 옮겨지는 경우 종종 있다. 물론 그런 게 여행의 묘미겠지만 말이다. 우리에겐 아직도 낯선 나라 러시아에 살고 있는 친구의 “놀러와!” 한마디에 계획에 없던 여행을 느닷없이 실행하게 된 저자. 그래서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백지 위에 러시아의 참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렇게 두 번의 러시아 여행의 여운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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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서현경

본업은 글을 써서 먹고 사는 방송작가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여행 후 내내 자꾸 떠나고 싶은 불치병을 앓고 있으며, 떠날 궁리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여행자다. 여행을 하고 난 후에는 글을 쓰며 여행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 시간이 좋은 작가. 아직은 갈 곳이 너무 많아 다행이고 떠날 수 있는 배짱이 있어 든든하다. 다음에는 또 어디로 갈까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날마다 고민하는 여자. 딸을 제대로 된 여행 파트너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열혈 엄마이기도 하다. blog.naver.com/hkseo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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