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 없는 자의 생존법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원작의 군더더기 없는 블랙 유머와 정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군더더기가 많은 감정 과잉처럼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바바라 오코너의 원작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가난으로 붕괴된 가족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인생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열한 살 아이가 감당하기에 가혹한 현실, 그 속에서 수치스럽고 슬프고, 화가 나는 상황들을 딱 그 나이 아이의 감성으로 그려낸다. 소설 속 조지아는 세상 다 산 것 같은 애어른도 아니고, 속 깊고 다정한 아이도 아니다. 열한 살 아이답게 이기적이고, 딱 그 나이만큼 순진하다.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조지아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그래도 가족이라는 끈을 잡고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모습까지 더해져, 가족의 붕괴 속에 오히려 가족애의 회복이라는 역설을 녹여낸다. 이를 통해 절망의 순간에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 가치를 깨닫는 색다른 형식의 성장소설이었다. 소재가 기발하고, 묘사가 참신해서 술술 넘어가는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화되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게 한국에서 만들어지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각자의 나라가 가지고 있는 정서라는 것은 ‘공감’을 형성하는 바탕이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 때 무척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일본판 <링>은 ‘한’이라는 동양적 정서의 유사성 때문에 한국판 리메이크작도 꽤 흥미로웠다. 하지만 미국판 <링>은 동양적 정서가 사라져 밋밋했다. <주온>이나 <장화홍련>을 리메이크한 미국판 영화들이 시시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다. 반면 퓨전 사극 속에 양반사회의 안온함을 비웃었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프랑스의 18세기 소설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하지만 한국적 정서를 매끄럽게 녹여내면서 이물감 없는 영화가 되었다. 문제는 역시 정서와 그로 인한 공감이다. 국내 영화 중 최초로 영미권 소설을 영화화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성공 여부도 거기에 달려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원작의 군더더기 없는 블랙 유머와 정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군더더기가 많은 감정 과잉처럼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원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지나친 신파의 과잉을 걷어내고 동화적이고 따뜻한 한국적 정서를 잘 담아낸 영화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따뜻하고 귀여운 영화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정서의 이물감을 메우기 위해 김성호 감독은 원작의 큰 뼈대인 ‘개를 훔친다’는 설정은 두고 소소한 에피소드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교감이라는 정서를 부각시킨다. 어느 순간 아빠와 함께 집이 사라진 지소(이레)는 동생 지석과 철부지 같은 엄마(강혜정)와 함께 피자집 미니 봉고에서 지낸다. 집을 곧 구하겠다는 엄마의 말은 믿을 수가 없다. 집을 구하기 위해, 지소는 친구와 함께 부잣집 개를 납치한 후 사례금을 받을 계획을 세운다. 개를 훔치는 계획을 세우는 순간, 아이들을 귀여운 악동이 되어 영화의 전개는 흡사 천진하고 재미있는 도둑질을 하는 ‘케이퍼 필름 caper film’이 된다. (‘케이퍼 필름’은 뭔가를 훔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범죄, 갱스터 영화에서 파생된 서브 장르라 할 수 있다.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과 스티븐 소더버그의 <오션스> 시리즈를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발랄한 편집과 CG를 통해 아이의 발랄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공들여 만든 작전 노트는 그 자체로 동화가 된다. 큰 악당은 없지만, 소소한 욕심쟁이들을 통해 일그러지는 이야기도 큰 소동 없이 쉽게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동화’를 표방하는 전체적인 구조에서 큰 무리는 없다. 김성호 감독은 성장 영화의 미덕을 여러 인물들에게 나눠주는 따뜻함도 잃지 않는다. 주인공 지소뿐만 아니라, 노부인(김혜자), 노숙자(최민수)는 모두 아이들을 통해 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철없는 엄마였던 정현(강혜정) 역시 책임감을 느끼며, 온전한 가장으로 성장한다.
동화적 따뜻함을 걷고 보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가족의 해체, 실업문제, 노숙자 문제 등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산재한 현실을 반영하는 무척 슬프고 애타는 이야기이다. 이레, 이지원, 홍은택 아역 3인방의 깜찍함에 김혜자, 강혜정, 최민수라는 든든한 배우들이 주변부에서 단단하게 울타리를 쳐준 덕분에 영화는 믿어봄직한 이야기가 되고, 아이들의 깜찍한 절도가 동화적 판타지가 되는 순간이 가능했다. 물론 이 모든 인물들이 딱 그만큼의 기능적인 역할 이외에 유기적으로 작용했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겠지만 말이다. 영화와 소설 속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가장의 부재, 바닥으로 내몰린 처지는 현실의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절망 그 자체이다. 하지만 그토록 절망적인 순간에 가장 필요한 것이 서로의 손을 잡고, 희망을 노래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화해의 열쇠는 ‘사랑’이란 순도 백퍼센트 동화적 결말은 거부할 도리가 없다. 사실 ‘작정’이 없는 자들이 생존하는 방법이, 이 팍팍한 세상을 견뎌내는 방법이 ‘희망’과 낙관적 관망 이외에 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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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최민수, 강혜정, 김혜자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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