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쓰릴 미> 누가 누구를 조종했는가?
끝없는 욕망이 가져온 비극적 결말
사건이 전개될수록 이러한 ‘나’와 ‘그’의 욕망에 대한 태도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둘 사이의 권력 관계 역시 미묘한 변화가 생긴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두 명의 남자, ‘나’와 ‘그’
멈출 줄 모르는 뒤틀린 욕망은 결국 파국을 불러일으킨다. 뮤지컬 <쓰릴 미> 는 끝없이 이어지는 비뚤어진 욕망이 어떠한 비극을 가져오는 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무대에 등장한 ‘나’는 ‘그’와 함께 37년 전 저지른 유괴살인사건에 대한 심문을 받고 있다. 보이지 않는 판사의 목소리는 ‘나’를 다그치고 ‘나’는 ‘그’와 함께 저지른 끔찍한 유괴살인사건의 전말을 하나하나 증언하기 시작한다. ‘나’의 모습이 사라지고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면 무대의 배경은 37년 전, 갓 스무 살이 된 ‘나’와 ‘그’가 만나는 장면으로 돌아간다.
‘나’와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천재라 불리던 둘도 없는 친구사이이다. 아니, 사실 둘은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가진 채 다른 이들에겐 보이지 않는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둘의 관계가 동등한 것 같진 않다. 어딘가 위축되어 보이고 소심해 보이는 나와 그런 ‘나’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그’. 둘이 주고받는 짧은 대화만 보아도 누가 그 관계에서 더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끊임없이 ‘그’의 사랑을 갈구하며 ‘그’가 제안하는 일들을 돕기 시작한다. ‘나’가 ‘그’의 일을 도우며 요구하는 조건은 단 하나, 자신이 원할 때 ‘나’를 만족시켜주는 것, ‘나’를 사랑해 주는 것 그 뿐이다. 서로의 욕망의 합의점을 찾은 두 사람은 창고에 불을 지르는 일부터, 빈 집을 터는 일까지 크고 작은 범죄를 행하기 시작한다. ‘그’는 크고 작은 범죄를 행하면서 희열을 느끼고 점점 더 큰 범죄를 저지르고 싶어 한다. ‘나’는 둘의 비뚤어진 욕망이 파국을 향해 간다는 걸 깨닫고 괴로워 하지만, 니체의 초인론에 빠져 자신을 초인이라 생각하는 ‘그’는 끝을 모르고 폭주한다. 결국 두 사람은 어린 초등학생을 납치해 살인하기까지에 이르고 둘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뒤틀린 욕망의 끝
<쓰릴 미>에 나오는 두 주인공은 모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나’는 ‘그’를 갖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그’를 위해 모든 일은 행한다. 어떻게 보자면 ‘나’는 오직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그’에 의해 조종당하는 연약한 사람 같아 보인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 누구보다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줄 아는 치밀한 사람이다.
그에 비해 ‘그’는 자신의 욕망에 휘둘려 스스로를 잃어간다. ‘그’는 그저 자신이 순간적으로 행하고 싶어 하는 일시적인 욕구에 충실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다른 모든 이들에게 (특히 아버지)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사건이 전개될수록 이러한 ‘나’와 ‘그’의 욕망에 대한 태도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둘 사이의 권력 관계 역시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미묘한 변화가 생긴다.
뮤지컬 <쓰릴 미>는 실제 1924년 시카고에서 일어난 유괴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보다 사실적이고 탄탄한 심리묘사가 압도적이다. 인간 내면을 밀도 있게 표현했다. 단 두 명의 배우로 2시간여의 러닝타임을 이끌어 가지만,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극의 전개를 돕는 매끄러운 노래들로 그 시간을 부족하지 않게 채워나간다. 배우들의 연기력 역시 극의 몰입도를 더한다. 2007년 한국에 초연된 이후 왜 꾸준히 관객과 평단의 사랑을 받는 작품인지 알 수 있다. ‘나’와 ‘그’의 관계 속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지, 뒤틀린 욕망은 어떤 비극적 결말을 가져오는지, 직접 느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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