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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죽을힘을 다해 싸울 수밖에 없을 때
인간 욕망에 관한 보고서
욕망하던 권력과 황금을 눈앞에 두고 이제 탄탄대로만을 남겨놓았을 때, 환희에 찬 주인공 앞에 죽음이라는 결말을 미리 제시하는 것으로 이 묵직한 이야기는 질주를 시작한다.
‘죽을힘을 다한다’는 이제 식상한 관용구다.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다고 말해도 정말 죽을 만큼 노력했구나,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꽤, 혹은 들키지 않을 만큼은 적당히 노력했다고 고개는 끄덕여주겠지만 그저 그뿐이다. 이미 흔하디흔한 말이기에 더 새로울 게 없는 탓이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정말 죽을 위기에 처했다면 어떨까. 모시던 분의 말이라면 짖는 시늉까지 하며 권력의 핵심에 들어가려 발버둥친 세월이 몇 년, 이제 그가 검찰총장 자리를 움켜쥐고 나 다음은 너라며 손을 잡아줬는데 자신이 뇌종양이란다. 여생 3개월, 도덕도 정의도 버리고 달렸던 청춘을 한탄할 새도 없이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아내는 딸 유치원 교통사고에 관련된 버스 회사의 비리를 밝히려고 고군분투하고 있고 그 사건은 하필 상관의 형제와 얽혀있다. 아내까지 협박해가며 상관의 형제를 구해냈는데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는 것을 안 상관이 이젠 아내에게 살인혐의를 씌워 구속시키려고 한다.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만 하는 상황 아닌가. 누구 이야기냐고? SBS <펀치>의 주인공, 박정환(김래원)의 이야기다.
출처_ SBS
욕망하던 권력과 황금을 눈앞에 두고 이제 탄탄대로만을 남겨놓았을 때, 환희에 찬 주인공 앞에 죽음이라는 결말을 미리 제시하는 것으로 이 묵직한 이야기는 질주를 시작한다. 모시던 상관은 드디어 원하던 자리에 올랐는데 자신은 죽음을 앞두다니, 토사구팽(兎死狗烹), 충직한 사냥개의 끝은 죽음이라는 말이 생각날 법도 하다. 허나 <펀치>는 단순히 주인의 배신에 반발하는 사냥개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태준(조재현)과 박정환의 밀월관계는 주군과 심복 이상의 것이고, 정환은 단순한 사냥개가 아니며, 태준은 쓸모없어진 사냥개를 삶아먹으려 호시탐탐 노리는 어리석은 사냥꾼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7년, 태준을 모셨던 정환의 충성심은 무섭다. 맹목적인 한편 능동적이다. 드라마는 사랑하던 아내와 딸을 포기한 배경에도 정환의 그 맹목적인 충성심이 한 몫을 했음을 슬쩍 내비친다. 뿐만 아니다. 구치소에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 10분만 버티라는 태준의 말에 취조 도중 창문을 깨고 건물 외벽에 맨몸으로 매달릴 정도로 정환은 무모하고 거침없다. 태준의 검찰총장 자리를 위해선 아내의 검사지위도 박탈시키고, 심지어 끔찍이 여기는 딸의 양육권을 빌미로 하경(김아중)을 겁주기도 한다. 태준을 위해서라면 대가도 보상도 바라지 않고 시키는 대로 뭐든지 다 한다. 태준 본인도 정환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말한다, 심장이 반쯤 떨어져 나간 기분이라고. 정환의 병을 알고 펑펑 우는 태준의 모습은 둘 사이에 있었던 감정적 교류를 짐작케 한다. 둘의 관계는 단순히 권력을 위한 동지 이상이었으며, 정환이 단순히 사냥꾼의 먹잇감을 물어오는 사냥개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수술이 실패한 시점에서 정환과 태준의 대립은 예정돼있던 것이나 다름없다. 날선 권모술수가 오가는 검찰청 안, 둘의 싸움은 권력이나 부, 정치적 이념과는 관계없는 부분에서 시작한다. 정환이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 하는 이유는 본원적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죽기 전에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채워주고 떠나려는 정환의 발버둥은 안타깝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고, 삶의 불이 꺼지기 직전이 돼서야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죽은 뒤의 부와 권력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것, 사랑하는 딸에게 부족하나마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주는 것. 그러기 위해선 억울하게 연구원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하경을 구출해야 하고, 이는 필히 누명을 꾸민 태준과의 대립으로 이어진다.
그는 단 한 번도 태준에게 무언가를 요구한 적 없다. 대가를 요구하고 바랄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겠지만, 정환이 태준에게 최초로 하는 부탁이 관계의 파국을 부른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이 품고 있던 욕구는 사실은 정환의 것이 아니라 태준의 것이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기에. 정환의 죽음을 앞두고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상황에 놓인 이후에야 둘은 진정한 서로를 마주보게 된다. 목표와 수단을 혼동하던 정환의 눈이 맑아지던 순간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태준과 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셈이다.
출처_ SBS
“총장님, 증거 몇 개만 지우고 하경이 며칠 안에 집으로 보내 주세요. (…) 지난 7년간 총장님 모셨습니다. 근데 부탁도 자주 해 봐야지, 처음 하니까 어색하네요.” 세련되고 점잖은 말이지만 그 무게는 만만찮다. 그의 헌신으로 태준이 지금의 자리에 섰대도 과언이 아닐뿐더러, 이런 일만 없었다면 당연히 자신의 후계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찰총장 자리를 사수하고 형과 자신의 명예를 온전히 보존해야 하는 태준에게 정환의 손을 놓는 것은 후회와 비탄 따위의 감정적 문제 이상이다. 수 년 간 자신의 팔 이상으로 믿고 모든 일을 맡겨 왔던 사람이기에 자기 자신을 적으로 돌리는 것 이상의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 애초에 충견도 아니었거니와, 죽음을 앞두고 달리는 정환은 태준에게도 위협적이다. 그래서 더더욱 태준은 그 어느 때보다 예리하고 무거운 칼을 빼들 것이다. 이 싸움은 태준에게도, 정환에게도 건곤일척의 혈투다.
박경수 작가의 전작 <황금의 제국>은 인간 욕망에 대한 보고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진그룹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암투는 권력과 황금에 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사했고, 시청자들은 인간이 어떻게 탐욕에 먹히는지, 그 끝에서 인물들이 어떤 결말을 맞는지 목도했다. <펀치>는 이런 가정을 약간 비튼다. 미리 주인공이 맞을 결말을 명료하게 설정해놓고,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정환의 삶을 그리는 것이다. 권력과 싸우는 개인의 분투를 탁월하게 그렸던 전작들의 특징을 생각할 때, 분명 정환 역시 부조리한 현실에 돌을 던지는 한 명이 될 터다. 비록 약한 두드림일지라도, 정환의 저항은 의미가 있다. 더 이상 권력과 부에 침식되지 않는 그의 여생은 짧지만 화려하게 연소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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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길어 주절거리는 것이 병이 된 사람. 즐거운 책과 신나는 음악, 따뜻한 드라마와 깊은 영화, 그리고 차 한 잔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