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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완생이 되기 위한 우리의 사투

웹툰 원작 <미생>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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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한국 드라마가 회사 사무실에서 일을 빙자한 연애를 하는 이야기인 반면 <미생>은 낭만적 환상을 걷어내고 현실의 회사를 그린다.

정사원 채용을 위한 경쟁PT 자리, “제가 하겠습니다.” 장그래(임시완)는 번쩍 손을 들고 앞으로 나선다. 발표를 앞두고 뻘뻘 땀 흘리는 파트너 한석률(변요한)을 보다 못해 내린 결정이었다. 단호한 목소리와 뭔가 결심한 듯한 눈빛, ‘내가 한석률을 택한 이유를 버린다.’ 나지막한 내레이션은 흔히 보던 전개를 예상케 했다. 어리석고 모자란 파트너를 뒤로 하고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주인공. 자신도 미처 몰랐던 못했던 재능이 빛을 발하고, 위기를 타개하는 주인공의 활약은 눈부시게 화려하다.


하지만 드라마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당당히 앞으로 나섰던 장그래는 어물어물 말을 잇지 못하고, 날카로운 회사 중역들의 지적에 더듬댈 뿐이다. 머리를 탁 친 것만 같은 전개다. 사실 고교 졸업 후 마땅한 사회 경험 없이 상사에 뛰어든 사회초년생이 수많은 상관 앞에서 경쟁PT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 현실엔 있을 수 없는 판타지다. 드라마는 그 판타지를 깨부순다. 최근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작품, tvN <미생>의 열풍은 여기서 시작된다.
 

미생2.jpg 

출처_ tvN


<미생>, 요즘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를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꼭 들어갈 만한 작품이 아닐까. 임시완, 이성민, 강소라, 강하늘 등 배우들은 맞춤옷을 입은 듯 연기하고, 특히 원 인터내셔널이라는 가상의 대기업 상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회사 생활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미생>의 인기 요인을 꼽으라면 첫 번째는 바로 이것일 터다. 판타지와 허구를 걷어내고 현실적인 사회생활을 그린다는 점.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가 회사 사무실에서 일을 빙자한 연애를 하는 이야기인 반면 <미생>은 낭만적 환상을 걷어내고 현실의 회사를 그린다. 학력과 자격증, 어학점수 등 소위 말해 ‘스펙’만을 중요시되는 요즘 사회의 단면을 묘사하기도 하고, 치열한 취업 현장을 그리기도 하며, 회사에 들어간 후에도 끝나지 않는 고비를 말하기도 한다. 하나하나의 위기는 등장인물들을 짓누르고, 그들이 겪는 사회생활의 여러 어려움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미생>은 다양한 인물로 사실적인 에피소드를 구성한다. 오상식(이성민), 안영이(강소라), 장백기(강하늘), 한석률(변요한), 김동식(김대명), 선차장(신은정) 등 원 인터내셔널을 이루는 구성원들 모두가 주인공인 셈이다. 인턴 기간 최고의 루키로 대접받던 안영이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어지는 자원팀 사람들의 냉대에 속앓이를 하고, 선차장은 가정과 회사 사이 부담을 이고 갈팡질팡한다. 두 여성 직원의 에피소드는 아직도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유리천장 문제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장백기와 강대리(오민석)의 대립은 사회초년생의 이상과 현실적 성취의 괴리를 짚는 장면이며, 한석률은 사무직과 현장직의 현실과 인식 차이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오상식 과장에 이르러서 드라마는 개인적 신념과 회사의 선택 사이에서 갈등하는 구성원을 그리고 어떤 것이 현명한 선택인지 고민하도록 만든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을 덤덤하게 짚어내는 드라마는 부조리한 현실을 냉소하는 한편 시청자들에게 숙고할 기회를 준다.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선택은 공감을 부르기도 하고, 안타까움과 탄식을 자아내기도 한다. 드라마가 세심한 연출과 각본으로 그들 모두에게 애정을 갖게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생1.jpg

출처_ tvN


특히 작품의 화자인 장그래가 그렇다. 바둑 영재라 불리던 때도 있었지만 프로 입단에 실패하고 잔혹한 현실에 덩그러니 남겨진 청춘, 장그래. 드라마는 장면마다 그가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것처럼 시청자들을 현혹시키지만 결국 결론은 같다. 장그래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사회에 뛰어든 장그래가 숨겨진 재주를 자랑하며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리라는 공상은 곧 깨진다. 원 인터는 냉혹한 사회이며, 여태 그가 속해온 곳과는 너무 다른 세계다. 그는 매번 스스로 몰랐던 잠재력 따윈 없으며 나는 내가 알던 만큼, 꼭 그만큼의 깜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받는다. 홀로 착수하고 복기하면 되는 바둑과 달리 회사는 타인과의 협동이 필요하단 당연한 사실도 배워야 하는 판국이다.

 

허나 그것이 대중의 마음을 끄는 요인이 된다. 새로운 사회에서 겪는 혼란과 고독은 누구나 겪어본 적 있는 경험인데다, 회사에서 겪는 실수는 실감나게 묘사된다. 시청자들은 그를 보며 초년생 때 자신을 기억해내고 공감한다. 시청자들이 장그래가 저지르는 시행착오에 울고, 소소한 성과에 내 일처럼 기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게다가 어설프고 서툴지언정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만은 모두에게 귀감이 된다. ‘내가 열심히 했다고? 아니,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덤덤하게 이어지는 내레이션은 실제로 그가 노력하는 인간이기에 더욱 마음을 울린다. 나는 현실에서 최선을 다했는가?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는 않았는가? 내가 처한 상황을 한탄하기 전에 힘껏 노력했는가?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를 주는 것은 물론이다.
 
미생(未生)은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은 상태나 그 돌을 말하는 바둑 용어다. 아직 완전하게 살아있지는 않지만, 완생(完生)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 돌. 네모난 바둑판에서 미생 하나하나를 완생으로 만들고, 마주 앉은 상대를 흑백의 돌로 이기려 애썼던 장그래는 이제 냉혹한 현실에서 자신이 미생임을 인정하고 싸워야 한다.


드라마는 장그래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릴 것이다. 초반 엉성하고 어설펐던 만큼 변해갈 그의 모습이 기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회사에 적응해갈수록 오랜 기간 쌓았던 바둑 경험은 그에게 큰 자산이 될 터이고, 실수를 거듭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장그래는 결국 원 인터내셔널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둘 것이다. 힘들게 따낸 성과일지언정 2년 계약직이 ‘완생’이라 말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미생>은 정규직이라고 해서 완생이냐고, 아니 사실 인간이 완생이 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완벽하고 모자란 것 없어 보이는 누군가도 사실은 흠투성이며 자신을 메우기 위해 살아갈 뿐이라, 완생이 되지 못한 미생이라도 가치 없는 것은 아니라 말한다. 수십 수백 개의 미생 덕분에 하나의 미생이 완생이 될 수도 있고, 하나하나의 미생은 사석(死石)과는 달리 완생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으니까. <미생>은 그 수십 수백 개의 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드라마다.


드라마를 보며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는 스스로의 미생을 완생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실수를 거듭할지언정 언제나 임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과연 나는, 내 네모난 바둑판을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돌로 채워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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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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