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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쌩쌩 날리지만 묘하게 끌리는 겨울왕국

4박 5일간의 러시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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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날 - 렛잇고(Let it go) 모스크바


“뭐! 러시아에 간다고? 이 추운 겨울에? 거기 위험하지 않아?”

 

모스크바 여행 계획을 밝히자 열에 아홉은 이렇게 말했다. 하고 많은 나라 중에 왜 하필 러시아인지, 그것도 이렇게 추운 날에 더 추운 곳으로 여행을 가느냐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런 계절에는 헐렁한 옷차림으로 어슬렁거릴 수 있는 동남아에서 늘어지게 여름을 만끽하는 것이 장땡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말이야, 여행이 꼭 휴가일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휴가가 꼭 여름이어야 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 나는 간다. 겨울 왕국 러시아로.


붉은 광장, 여행의 시작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내리자 회색이 만연한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눈이 소리도 없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흐린 날씨와 밤이 긴 모스크바. 겨울 왕국에서의 여행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모스크바 여행 첫 코스는 당연히 붉은 광장이다. 러시아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가장 러시아다운 모습을 한 곳이 바로 바로 붉은 광장이기 때문이다.

 

러시아1.jpg

 

붉은 광장(Красная площадь)이라고 이름 붙어 있지만 광장은 사실 붉지 않다. ‘붉은’의 유래는 러시아의 옛말 중 아름답다(красивый)에서 왔다고 하니 원래는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이름의 유래를 알고 나면 광장에 섰을 때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붉은 광장으로 들어서자 바실리 성당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양파 모양의 독특한 형태의 지붕이 겹겹이 올라간 사원을 보는 순간 그제야 안도감이 밀려온다.

 

‘아, 드디어 러시아에 왔구나!’

 

그만큼 붉은 광장의 바실리 사원은 파리의 에펠탑만큼이나 모스크바 여행자에게 여행이 시작됨을 알리는 프롤로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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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광장의 양 끝에는 바실리 사원과 러시아 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두 곳을 이어주듯 이어지는 붉은 담이 크레믈의 일부다. 그리고 광장 가운데 레닌 묘가 자리하고 있고 그 맞은편 길가로는 굼 백화점이 광장의 일부인양 늘어서 있다.

 

붉은 광장에 겨우 들렀을 뿐인데 모스크바의 모든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보다 더 멋진 곳이 설마 있을까 싶다. 처음부터 하이라이트를 본 거라면 그냥 이쯤에서 그만둘까 싶을 정도로 그 이상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참, 야경이 끝내준다는데 그건 이따 저녁에 확인하기로 하고.


크레믈 트라우마

 

바실리 성당 앞을 서성이다가 광장 끝까지 걸어가 알렉산드로프 정원과 마네쥐 광장을 지나 크레믈 입구로 향했다. 러시아의 상징이자 심장부인 크레믈은 궁전, 사원과 같은 유적과 대통령 집무실, 정부청사가 들어 있다. 우리로 치면 경복궁에 청와대가 들어 있는 식이니 과거와 현재의 역사가 공존하는 드라마틱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3.jpg

 

크레믈로 막 들어서자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의 중심에 온 것을 환영이라도 하는 것일까. 눈이 펑펑 내리는 크레믈 안 모습이 아름다워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댔다. 

 

“아따이지쩨 앗 뚜다, 닐쟈 파타그라피로바쨔!” (물러나세요, 사진 찍지 마세요!)

 

갑자기 어디선가 큰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경찰이었다. 지휘봉 같은 막대를 휘저으며 화를 내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나한테 그러는 것 같았다. 겁이 더럭 났다.

 

뭐, 뭐야, 왜 그러는 건데? 내가 뭘 잘못 한 건데? 무섭기로 소문난 러시아 경찰에게 걸리다니, 모스크바 도착하자마자 떠나야하는 건가,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구!

 

오만 생각을 다하는 그 짧은 순간 다시 보니 경찰은 카메라를 자꾸 가리키며 뭐라고 쉴 새 없이 말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살짝 들어 보였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경찰. 사진 찍지 말라는 소리 같았다. 혹시나 카메라를 빼앗길까 나도 모르게 얼른 가방에 넣고는 돌아섰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크레믈 안에서는 대통령 집무실 쪽으로 카메라를 들이밀거나 보도가 아닌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안 된다고 한다. 그 날 내가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대던 곳에 대통령이 궁이 있었고, 보도블록 아래 내려와 마음대로 걸었던 것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대통령 궁만 찍지 않으면 사진은 마음대로 찍어도 괜찮은데 시작부터 놀란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광장의 아름다운 사원들을 찍을 때도 괜히 눈치가 보여서 몰래 사진을 찍었다.

 

러시아4.jpg

 

모스크바 겨울의 짧은 해가 슬슬 지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뜻하지 않은 불호령을 맞아 제대로 보지 못한 크레믈은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은데. 하지만 이 추위에 계속 밖에만 있었더니 손발이 꽁꽁 얼어버릴 것만 같다. 오늘은 이쯤에서 돌아가기로 한다. 여행은 계속 될 것이므로.


올드 아르바트, 지상 최대 고민 해결

 

돌아가는 길엔 저녁도 해결할 겸 올드 아르바트로 향했다. 올드 아르바트 거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로나 인사동이랑 비슷한 곳이다.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는 보행자 전용 도로로 화창한 날이면 화가들이 길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를 한다. 양쪽 거리에 마트로슈카를 파는 선물 가게와 레스토랑, 카페, 술집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맥도널드와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체인점도 있어서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물론 지금은 겨울이라 여름만큼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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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트 거리 초입에 들어서자 무심하게 거리를 걷는 것 같이 보이는 동상이 나타난다. 문학가 아나톨리 리바코프다. 아르바트를 너무나 사랑해 작품 배경으로 많이 썼다는 작가는 여전히 아르바트를 거니는 듯 거리 입구를 지키고 있다. 동상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치는 한 쌍의 연인 동상은 푸슈킨과 그의 아내 나탈리아. 부부가 신혼 시절 살았던 저택은 푸시킨 기념박물관이 되어 둘러볼 수 있다. 빅토르 최를 추모하는 벽에는 눈이 쌓인 꽃다발이 여전히 놓여있다.

 

이 겨울, 조금은 썰렁한 아르바트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걷다보니 어느새 길의 끝에 다다라 있다. 이쯤에서 아직 해결하지 못한 오늘의 최대 고민을 떠올려본다.

 

오늘 저녁, 뭐 먹지?

 

매일의 숙제이자 지상 최대의 인류 고민인 먹고 살기는 모스크바 올드 아르바트 거리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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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내 안의 그대 러시안 블루』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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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그대, 러시안 블루 서현경 저 | 시그마북스
어떤 일은 생각지도 않게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계획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는가 하면 생각조차 못하고 있던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여행이란 그렇게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행동으로 옮겨지는 경우 종종 있다. 물론 그런 게 여행의 묘미겠지만 말이다. 우리에겐 아직도 낯선 나라 러시아에 살고 있는 친구의 “놀러와!” 한마디에 계획에 없던 여행을 느닷없이 실행하게 된 저자. 그래서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백지 위에 러시아의 참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렇게 두 번의 러시아 여행의 여운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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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서현경

본업은 글을 써서 먹고 사는 방송작가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여행 후 내내 자꾸 떠나고 싶은 불치병을 앓고 있으며, 떠날 궁리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여행자다. 여행을 하고 난 후에는 글을 쓰며 여행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 시간이 좋은 작가. 아직은 갈 곳이 너무 많아 다행이고 떠날 수 있는 배짱이 있어 든든하다. 다음에는 또 어디로 갈까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날마다 고민하는 여자. 딸을 제대로 된 여행 파트너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열혈 엄마이기도 하다. blog.naver.com/hkseo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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