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90년대를 추억하는 얘기들이 핫하다. 지금의 3, 40대는 그 시절을 “대중문화의 황금기”로 추억하곤 하는데, 확실히 90년대에 10대를 보낸 세대라 그런지 나는 확실히 동의할 수 있다. 특히 대중음악에서는 언젠가 전설적인 시기로 불릴지도 모르겠다. 90년대 내내 무수한 밀리언셀러를 터뜨렸던 음악은 90년대 말에서야 천만관객 시대를 열었던 영화보다, 확실히 한 발 앞서 있었다. 서태지와 듀스, 넥스트와 공일오비, 전람회와 토이 등 색깔이 분명했던 팀들과 신승훈, 이승환, 김건모 같은 보컬리스트들이 두루 공존했으며, 기획된 아이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TV를 틀면 맨날 똑같은 음악이 나오는 시절이 아니었다.
그 시절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음악 좀 듣는 놈’으로 통했었는데, 그 이유는 별다른 음악적 지식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주변에서 가장 테이프(앨범)을 많이 보유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책으로 옮겨 왔지만, 그땐 테이프에 대한 남다른 수집벽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룹은 전집을 다 모아야 하고, 앨범 쟈켓이 조금만 구겨지면 중고로 친구에게 팔고, 새 걸 사야만 했다. 덕분에 내 용돈은 늘 학교 앞 ‘소리방’ 아저씨 지갑 속으로 들어갔다.(친구 한 놈은 바로 옆 ‘현가락’ 누나의 데이트 비용을 대주고 있었다. 내가 왜 누나가 아니라, 아저씨에게 충성도를 보였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아무튼 그래서, 딱 90년 이후 데뷔한 알 만한 가수나 밴드의 앨범은 없는 게 없을 정도였는데, 그래도 음악 얘기를 하다보면 주눅드는 자리가 있었다. 바로 팝이다. 그때 내게 팝이란 머라이어 캐리, 마이클 잭슨, 보이즈 투 멘, 리차드 막스, 마이클 런스 투 락 정도였던 터인데, 메탈리카와 라디오 헤드, 너바나를 하루에 100번 정도 얘기하고, 그 외 나로선 알 수 없었던 밴드들을 하루에 10팀 정도씩 소개하는 녀석이었다. 내가 보유한 테이프의 10%도 가지지 못했던 그 녀석의 무기는, 알보고니 라디오였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그때,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저 녀석을 반드시 이겨버리겠어.. 식의 마음을 먹는 스타일은 아니라 그 이후에도 팝을 그리 듣지 않고 살아왔다. 그래도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듣게 될 기회가 많았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들을 때 마다 행복했다. 배철수 아저씨의 목소리도 그렇지만, 음악, 음악, 음악들…
『청춘을 달리다』라는 평범한 제목의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라는 저자의 이력 때문이었다. 일단 신뢰가 갔다. 거기다 90년대 음악 이야기라니! 지금은 테이프 대신 책을 모으고 있고, 90년대의 찌질했던 모습은 씻어버린 지 오래지만(과연?), 세상이 변하고 모두가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90년대 음악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 들어도 실패가 없다는 것. 90년대로 들어가는 여행은 언제든 좋다는 것. 그 시절을 함께 누린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청춘을 달리다배순탁 저 | 북라이프
감성이 가장 충만했던 그 시절,‘운 좋게’도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에게 ‘청춘’이라는 단어는 조금 특별했다. “나에게 있어 청춘이란, 낭만적인 동시에 비참함을 어떻게든 견뎌야 했던, 흑역사의 한 페이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낭만보다는 비참과 좌절을 겪어내면서, 나는 어른이 되는 법을 조금은 배울 수 있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 바로 음악이다. 음악이 없었다면 글쎄, 나는 아마도 정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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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수의 음악캠프》음악작가 배순탁의 첫 번째 음악 에세이 [청춘을 달리다]. 책에는 소란했던 시절, 오로지 음악 하나로 버텨온 배순탁 작가의 청춘의 기록이자 그 시절을 함께해온 음악에 관한 이야기르르 담았다. 대중문화의 황금기였던 1990년대를 이끈 15명 뮤지션의 음악을 맛볼 수 있는 한 장의 ‘컴필레이션 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