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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육지로, 다시 바다로 돌아간 동물

돼지가 고래에게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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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는 복잡한 네트워크지요. 마치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그물처럼, 어느 구석에 끊어진 빈 틈이 생기면 틈을 메우지 않고는 그물이 온전히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자연히 틈을 메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지요.

 사실 지구의 생명은 바다에서 태어났습니다. 미생물의 형태로 태어난 최초의 생명도,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동물의 시초가 된 수많은 동물이 나타났던 약 6억~5억 년 전 선캄브리아기 후기 및 고생대 캄브리아기의 동물들도, 모두 바다에서 삶을 시작했고, 이어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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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약 5억 3000만 년 전, 일부 동물은 육상을 궁금해 했습니다. 그래서 지느러미를 이용해 고개를 물 밖으로 빼 든 채 뭍으로 기어갔지요. 부드러운 사암sandstone에 남은 이들의 발자국은 지금까지 발견된, 육상에 남아 있는 최초의 동물 흔적입니다. 이후 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폐를 갖춘 폐어, 물과 뭍 양쪽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한 양서류를 거쳐, 동물은 점차 건조한 육지에서 생명을 부지하는 법을 배워나갔습니다. 중생대에는 지금의 포유류의 먼 조상이 쥐 같이 생긴 모습으로 태어났고, 서슬 퍼런 공룡 등 거대 파충류의 눈을 피해 음지에 숨어 살았습니다. 그러다 중생대 말에 공룡이 멸종하자, 무서운 지배자가 사라진 육상에서 포유류가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룡이 사라진 세상에서 포유류가 보여 준 번성은 눈부셨습니다. 고래 씨, <인간 없는 세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같은 제목의 책도 있습니다. 감독은 ‘만약 지금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서 한 순간에 사람만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형태를 잃어가는 문명의 물리적 흔적들을 인상 깊게 예측했습니다. 수도와 전기 시스템이 멈추고 건물이 부스러지며 첨탑과 댐이 붕괴하고 도시가 사라집니다. 그 어떤 문명의 이기도 무無로 되돌아갈 이 운명에서 피해갈 수 없습니다. <노자> 77장에서는 ‘천도天道는 마치 활시위를 메기는 것 같다. 높은 데는 누르고 낮은 데는 돋운다. 남아도는 것은 줄이고 모자라는 것은 보충한다. 하늘의 방식은 남는 것은 줄이고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풍화로 평평하게 만드는 것, 높은 것은 깎고 낮은 것은 덮으며 결국 영원한 돌출도, 영원한 파임도 없이 공평하게 하는 과정이 자연이 지향하는 방식이며 지상의 이치라는 뜻이지요. 이에 반해 인간은 높은 랜드마크도 세우고 깊은 웅덩이도 파고, 강도 막고 바다도 메우곤 했습니다. 이런 활동이 사라지니, 지구는 오로지 ‘메우고 돋우는’ 자연의 논리에만 맞춰서 재편성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다큐멘터리에서 특히 가장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역시 마지막 장면이었어요. 마지막 순간까지 인류의 존재를 증명할 존재는 텔레비전 공중파 프로그램의 전파입니다. 지구에서 우주 곳곳을 향해 방사형으로 방출된 전파는 우주를 떠돌다가, 결국 점차 희미해져 그 의미를 분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죠. 먼 항성계에서 미지의 외계 지적 생명체가 신호를 포착했다 해도, 문명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게 돼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일이 있어요. 한국의 전문가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특히 생물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를 물었는데, 그게 참 재미있었습니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는 커다란 생태계 틈이 생겨나고, 그 틈바구니를 빠르게 메워가는 동물과 식물이 나타난다는 응답이 많았습니다. 생태계는 복잡한 네트워크지요. 마치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그물처럼, 어느 구석에 끊어진 빈 틈이 생기면 틈을 메우지 않고는 그물이 온전히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자연히 틈을 메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지요. 이 움직임의 주체 역시 물론 생물 자신입니다. 기존에 생태계를 차지하고 있던 동물(여기서는 인간)의 빈틈에, 그 동물 다음으로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동물이 번성하겠지요. 눈에 보이는 모습은 다르겠지만, 이들이 인간이 차지하던 생태 공간을 잠식합니다. 쉽게 말해 서울은 여우류의 중형 포유류와, 한강변에서부터 세를 넓혀오는 식물군에 의해 점차 녹색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구와 도시는 물리적으로 풍화돼 사라지기도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야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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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생대 초기, 지구 역시 비슷했습니다. 이 당시의 멸종은 공룡에만 한정된 게 아니었습니다. 지구 역사에도 손꼽히는 대멸종의 하나로, 공룡은 물론 바다의 파충류인 수장룡, 연체류인 암모나이트와 조개류, 하늘의 파충류 익룡, 그리고 유공충 등 전체 종의 3분의 1에서 3분의 2가 사라진 엄청난 사건이었지요. 지구의 생태계는 재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틈을 빠르게 메운 게 포유류였습니다. 포유류는 불과 1000만 년이라는 (지구와 생물 역사에서는) 짧은 시간에 극소수의 종에서 30여 분류군의 다양한 동물들로 빠르게 번성했습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다양한 종이 탄생하는 현상을 생물학에서는 ‘적응방산’이라고 합니다. 약 6550만 년 전부터 이뤄진 포유류의 적응방산은 대단히 강력했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는 ‘동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포유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래 당신도 저 돼지도 다 포유류의 한 식구고요.


 당신 역시 이런 과정에서 지구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결코 바다 동물로서는 아니었어요. 육상 동물이었습니다. 그것도 오늘날의 하마나 우제류(발굽 수가 짝수인 동물군)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네발의 발굽 동물이었어요. 우제류에 어떤 동물이 있냐고요. 바로 사슴과 저 돼지가 대표적이에요. 신기하지요? 우린 5500만 년 전, 같은 조상에게서 나온 친척 사이랍니다. 그게 바로 제가 당신에게 굳이 길고 긴 편지를 쓰는 이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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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윤신영 저 | MID 엠아이디
생물학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문학과 철학 이야기가 나오고, 생태학 주제를 다루는가 싶더니 주역으로 넘어간다. 과학 지식을 전한다고 인접한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런 시선은 반쪽짜리 시선에 불과할 것이다. 과학 역시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사회문화적 맥락 없이 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은 이 책은 쉽지 않으나 난해하지 않고, 에두르지 않으면서도 명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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