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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디지털 신언서판은 안녕하십니까?”

셀카 본능에서 잊혀질 권리까지, 삶의 격을 높이는 디지털 문법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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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사회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던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새로운 의미에서 더욱 중요해졌다.

새로운 문법을 익혀야 할 때

 

너무나 매혹적인, 그렇기에 위험한 매력


2014년 9월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들의 스마트폰에 저장돼 있던 누드 사진들이 해킹으로 무더기 유출되는 일이 일어났다. 누드 영상을 찍어서 스마트폰에 간직하는 것이 유명 연예인들만의 별난 취미는 아니다. 2014년 미국 퓨 리서치 센터는 미국 10대의 44퍼센트가 음란 문자를 교환하고 있으며, 성인 20퍼센트는 누드 사진을 받아봤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들만 빠지는 함정이 아니다. 2011년 차기 뉴욕 시장을 넘보던 미국 민주당의 촉망받던 정치인 앤서니 와이너(Anthony Weiner) 하원의원은 트위터(Twitter)로 여성들에게 음란한 사진을 발송했다가 문제가 되자 결국 의원직에서 물러났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일상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둘러싼 기술적 환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일들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무신경하거나 무지한 상태로 기존 생활 방식을 유지하다가 뜻밖의 곤경에 처하는 것이 비단 유명인에게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스마트폰을 쓰게 된 이후 연인과의 관계, 가족 간의 대화, 직장에서의 소통 문화 등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경험하게 됐다.

 

더욱이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상징되는 21세기의 디지털 문명은 기존의 어떤 사회적 변화보다 그 속도가 빠르고 영향이 광범하고 근본적이다.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과 이를 바탕으로 한 문화적 환경에 사용자인 인간이 보조를 맞추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던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디지털 기기를 만난 아날로그 세대는 더욱 숨이 가쁘다. 이전에 하던 대로 스스로를 위한 메모를 하고 누군가의 뒷얘기를 하고 때론 연인하고만 보기 위해 비밀스러운 사진을 찍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디지털 기기를 통해서 이뤄지는 세상이다. 디지털 기술에는 사용자가 미처 알지 못한 다양한 기능이 들어 있고,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손쉽게 공유된다.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 사용자는 디지털 기술이 제공하는 놀라운 능력과 다양한 정보에 매혹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과거 어떠한 제국의 통치자도 감히 누리지 못한 권능이고 박식한 학자도 도달할 수 없던 정보다. 그 매혹은 너무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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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가르는 능력, 리터러시


20여 년 전 종합병원 내과 병동에 입원한 경험이 있다. 왼쪽에는 30대 당뇨 환자가, 오른쪽엔 40대 간경변 환자가 있었다. 간경변 환자가 식사와 배설의 양과 횟수를 꼼꼼히 기록하며 투병하는 것에 비해 당뇨 환자는 자신에게 이런 병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긍정적 자신감에 가득 차서 기록 따위는 무시하고 지냈다. 특히 그는 무가당 오렌지주스를 즐겨 마셨다. 의료진이 “무가당 주스도 당분이 들어 있으니 혈당 조절을 위해 먹으면 안 됩니다”라고 주의를 줬지만 그는 “무가당 주스니까 괜찮아”라며 의료진의 눈을 피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주스를 마셨다. 나도 걱정이 되어 “무가당은 설탕을 더 넣지 않았다는 뜻일 뿐이고 오렌지에는 원래 당분이 많으니 그만 드세요”라고 했지만 그는 ‘무가당 100퍼센트 오렌지주스’는 천연이니 몸에 나쁠 게 없다며, 소신을 바꾸지 않았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는 호열자(콜레라)가 세균을 통해 전염된다는 것을 알고 음식물을 끓여 먹으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악한 조준구와 괴질의 정체를 모른 채 호열자에 걸려 죽어가는 최참판 일가의 엇갈리는 운명을 소재로 대서사를 시작한다.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이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첫걸음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문자를 읽을 줄 안다고 해서 까막눈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리터러시(literacy: 문해력)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유치원생이 한글을 깨쳤다고 해서 신문 기사나 보험 계약서를 이해하고 사회생활을 해나갈 수는 없는 것처럼 우리가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를 사용하고 있다고 해서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디지털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으며, 모든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손바닥 안에서 주고받는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두뇌 활동을 돕는 기억과 연산의 보조 장치가 아니라 모든 정보가 드나드는 출입문이다. 나아가 사고와 판단의 기능을 상당 부분 대신하면서 또 하나의 두뇌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워낙 스마트폰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스마트폰을 어떤 용도로 활용하는지, 또 어떤 태도로 사용하는지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하나의 잣대로 기능하기도 한다. 전통 사회에서 ‘신언서판(身言書判)’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면 스마트폰 환경에서는 새로운 ‘모바일 신언서판’ 개념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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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우릴 멍청하게 만드는가?


IT 기자로서 국내외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취재하며 깨달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디지털 기술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지닌 이들일수록 기술이 지닌 편의와 위험성을 동시에 알고, 조심스레 제한적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해당 기술과 서비스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전문가들은 빛과 그늘을 함께 알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만 디지털 세상에 대한 이해가 적고 지식이 얕은 일반 사용자들은 그 위험한 매력을 더 추구하고 몰입한다.

 

스마트폰, SNS는 말 그대로 도구일 따름이다. 하지만 날카로움과 강력함에서 인류가 일찍이 가져본 적이 없는, 기존의 도구와는 차원이 다른 ‘슈퍼 울트라’ 도구다. 실제로 텔레비전, 전화, 카메라, 인터넷, 컴퓨터, 위성항법장치(GPS), 신용카드 등 수많은 기능이 스마트폰 하나에 모두 들어 있다. 앞으로 스마트폰에는 더 다양한 기능과 첨단 기술이 탑재될 것이고 자연히 우리의 의존도는 더 깊어질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늘 손에 쥐고 쓰면서 생활을 의존하고 있지만 기계에 숨어 있는 작동 원리와 사용에 따른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세대를 두고 ‘가장 멍청한 세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하버드대 버크만센터의 데이비드 와인버거 박사는 “‘인터넷이 우리를 멍청하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은 ‘밖에 비가 오고 있는가’보다는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다음 선거에서 패배할까’와 같은 질문과 더 유사하다”라고 지적한다. 단순 예측이 아니라 사용자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다.

 

스마트폰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디지털 세상은 지나치게 강력한 효능을 지닌 신약과도 같다. 효과의 강력함과 의존도라는 면에서 보면 마약과 비슷할 정도다. 누군가는 약 없이 자연 치유력만으로 건강을 지키는 것이 최고라고 하지만 이미 우리는 약의 효능을 알았으며 거기 크게 의지하고 있다. 디지털도 마찬가지다. 부작용만 보고 사용을 외면할 수 없다. 칼날이 날카로울수록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법이다. 뛰어난 효능의 약이라고 해서 자가진단과 처방을 통해 늘 복용하고 만병통치용으로 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효과가 강력한 약일수록 부작용과 의존성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우리가 분신처럼 쓰는 디지털 기술을 떠나 살기는 앞으로 점점 더 어려워진다.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역할을 의존하게 되는 만큼 현명한 사용을 위해서 기술이 지닌 여러 모습을 살피고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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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구본권 저 | 어크로스
디지털 세계의 속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동안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며 프라이버시를 포기해온 사람들에게 프라이버시 권리에 관한 시민 의식을 일깨우고 ‘잊혀질 권리’에 대한 사회적 약속을 만들 것을 촉구한다. 또한 만인의 정보를 축적하기 위해 IT 기업의 입맛대로 ‘디폴트 세팅’(초기/기본 설정)되어 제공되는 기기와 서비스를 파헤치며 사용자들이 자신의 쓰임이 맞게 ‘나만의 설정'으로 바꾸는 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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