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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에서 알아두면 좋은 한자

겐테이(限定)와 호우다이(放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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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가로요, 저것은 세로다. 어라, 점 하나가 붙어있네. 네가 품은 깊은 뜻은 무엇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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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어야 한다

 

나에게는 시시한 재주가 하나 있다. 써먹기 위해 힘을 꽤 쏟아 붓기까지 한다.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은? 터질듯한 배부름과 동석한 사람들의 만족스러운 표정, 그리고 오늘도 해냈다는 안도감이다. 그 재능은 확실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평범하고 화목한 편인 우리 집에 냉기가 흐르는 때가 있다. ‘아버지가방에 들어가신다’가 아닌, ‘아버지 배가 고프시다’일 때다. 특히 허기진 때에 가려 했던 식당이 문을 닫았거나, 맛이나 서비스가 아버지 마음에 내키지 않을 때의 집안 분위기는 빙하보다 차가워진다. 갈비를 먹은 뒤 후식 냉면이 맛없으면 당장에 가게를 나와 냉면 전문점에 들러야 집에 돌아갈 수 있던 날도 있었다. 여기에 가면 이걸, 저기에 가면 저걸 먹어야 한다. 라든가, 골목의 분위기나 간판 등이 말해주는 ‘맛집’의 특성 등을 설명할 때의 아버지는 가장 진지하고 활기차다.

 

나는 그런 피와 정신을 이어받았다. 먹기 위해 살며, 제대로 먹어야 여행을 다녀왔다고 느낀다. 처음 가는 곳에서 현지인들만 알 법한 ‘맛집’을 찾아내는 확률이 꽤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평소엔 느리다 못해 게으르기까지 한 내 두뇌는, 밥때가 되면 최고의 집중력과 노동력을 자랑한다.

 

그래서 목표를 정했다

 

아는 건 히라가나와 카타카나뿐이었다. 취업이나 진학이 급한 상황도 아니었다. 소소한 여행을 하거나 글을 쓰고,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면서 차분히 미래를 준비하자, 그게 홋카이도에 오래 정착할 수 있는 초심(初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만 접할 수 있는 맛있고 진귀한 모든 걸 먹어보겠다는 의지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무엇을 하든 이 나라 말부터 배워야 했다. 이미 퇴행 길로 접어든 두뇌에게 강력한 목표의식을 심어줘야 했다.

 

그래서 나는 정했다. 혼자서 동네 이자카야(선술집)에 갈 수 있을 정도의 일본어를 구사하는 것. 사실 돈만 들고 가면 된다. 다만 메뉴판을 보는 일이 까막눈 이방인을 슬프게 한다. 정성스레 손으로 적었으나 사진은 없다. 오늘의 추천메뉴는 꼬불꼬불 예쁘게 그린 한자로 적혀있다. 그때부턴 스마트폰이 있는 세상에 산다는 걸 감사하게 된다. 사전 어플에 손으로 그려 넣어 뜻을 찾아 겨우 주문한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한없이 흘러가고 진땀만 배어 나온다. 집에서 캔맥주나 딸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목표는 생각보다 쉽게 달성됐다. 간절히 이루고 싶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재료나 음식 이름은 한 번만 봐도 그 뜻이 잊히지 않았다. 상형문자가 품은 맛과 식감이 위장까지 전달되는 진기한 일을 경험했다. 그 한자들이 일본어 능력시험에 나올 일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계절별로 달라지는 홋카이도의 제철음식을 떠듬떠듬 주문할 수 있게 된 뒤로 신세계가 열렸다.

 

일본어를 배우기 전, 나는 가끔 내 이름을 한자로 쓰는 법도 까먹곤 했다. 지금도 뒤돌아서면 기억하기 힘든 글자가 태반이다. 나와 비슷한 한자 수준을 지닌 분들을 위해, 일본 여행에서 알아두면 ‘참’ 좋은 한자 단어 두 개를 소개한다.

 

절대 존재, 겐테이(限定)

 

경계를 지을 수 있는 모든 것에 이것을 붙이면 어떤 절대 존재가 완성된다. 계절, 수량, 점포, 여성, 노인, 요일…… ‘겐테이(限定)’는 우리 말로 수량이나 범위 따위를 제한하여 정한다는 뜻의 ‘한정’이다. 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평범한 나약함을 지닌 자라면 위험하다. ‘한정 상품’ 앞에 서면 순간적인 직감에 지갑을 맡기게 될 것이다. 처음엔 호기심에 집어 들고, 대부분은 ‘웩, 이게 뭐야’하는 실망으로 끝난다. 매 시즌, 없던 이벤트라도 만들어서 한정품을 개발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떠올리면 안타까울 정도다. 쥐어짜서라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여느 월급쟁이의 애환을 품은 맛이랄까. 그래서 한 번쯤은 속아도 괜찮으니 상부상조의 마음으로 사버리고 말 때도 있다.


반면 ‘한정’이란 단어가 무척이나 어울리는 문제작들은 분명 있다. 개인적으로 아끼는 홋카이도 한정품은 파이와 맥주다.


홋카이도 스위츠 상표인 ‘롯카테이(六花亭)’에는 본점인 오비히로 지역에서만 판매하는 두 종류의 파이가 있다. 갓 구워낸 바삭한 식감만 전하겠다는 자부심으로 유통기한은 두 시간 반, 가격은 140엔(약 1,300원)이다. 일단 파이를 한 입 베어 물면 바삭, 하고 귓가를 간질이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버터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곧이어 나오는 라즈베리 크림치즈가 들은 화이트 초콜릿의 맛은 설명이 어렵다. ‘오이시이~~~’


‘삿포로 맥주’의 ‘삿포로 클래식’ 브랜드는 홋카이도에서만 접할 수 있다. 11월에 접어들면, 후라노의 가을 들녘에서 난 홉(hop)으로 만든 맥주를 수량을 정해놓고 판매 한다(후라노 빈티지, 富良野 VINTAGE). 지역에 수량까지 더한 한정이라니, 과연 절대적이다. 주머니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쟁여놓고 싶어진다. 녹색 라벨이 잘 어울리는 상큼함과 갓 수확한 홉의 풍미는 가을밤에 제격으로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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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무제한의 유혹, 호우다이(放題)


저 두 글자 속에 담긴 규칙을 깨우친 뒤로 나는 방만한 소비와 식탐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 ‘호우다이(放題)’는 무제한을 뜻한다. ‘먹는다’는 뜻을 가진 동사 ‘타베루(食べる)’에 붙이면 마음껏 먹기가 되고(타베호우다이), ‘마신다’는 뜻의 ‘노무(?む)’에 붙이면 마음껏 마실 수 있다(노미호우다이).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만찬을 즐길 기회가 되기도 한다.


호우다이(放題)라는 글자만 보면, 과연 누가 이기는 싸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지불하는 돈과 얻는 효용 중 무엇이 더 클지 계산기를 두드린다. 마감 세일이 한창인 슈퍼마켓에서는 일정한 크기의 봉투에 담는 만큼 가져갈 수 있는 ‘귤 호다이’에서 ‘득템’을 하기도 했고, 무리해서 음식을 주문했다가 속을 다 게워낸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속눈썹을 인형처럼 잔뜩 부풀려온 친구를 통해 ‘인조 속눈썹 호우다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1시간 동안 원하는 만큼 인조 속눈썹을 붙여줬다고 했다. 심지어 ‘제모 호우다이’ 전단까지 받아봤는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의 털을 1년 동안 일정 금액에 제모해 준다는 거였다. 호우다이 앞에 서면 도전의식과 위장의 한계치는 끝없이 올라간다. “’그러니까’와 ‘그렇지만’ 사이의 깊은 협곡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김애란, 『침이 고인다』에서 발췌) 것이다. 그러니까 한 잔 더, 그렇지만 내일은……


이곳은 11월부터 1월까지 망년회와 신년회로 들썩인다. 각종 한정과 무제한이 범람한다. 그 모험이 위험천만한 걸 알면서도 이번에도 속는 척 빨려 들어갈 것이다. 오래오래 하나의 뜻을 품고 온 상형문자들이 있다. 그것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면, 번화한 길가로 나가 자잘한 물건을 사거나, 무리 속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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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홋카이도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인터넷 다언어 관광안내 서비스
 - 대응언어 : 한국어, 영어, 중국어
 - 운영시간: 09:30~17:30 (공휴일, 연말연시 휴무)
 - 연락처: TEL 050-2032-9012 / Email info-KR@hokkaido-hint.jp / Skype: hokkaidoh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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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송인희

홋카이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삿포로에서 살고 있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 일상을 여행한다.
먹고 마시는 것과 사소한 순간을 좋아하며, 종종 글자를 읽고 쓴다.
song_soo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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