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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책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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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런 식으로 구성한 것은, 이렇게 잃어버린 편지 형식을 복원해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색다른 구성으로 썼습니다. 여러 종의 동물이 릴레이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편지를 씁니다. 편지를 쓰는 동물은, 때로는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편지를 받는 쪽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편지라는 매체가 다른 어떤 글보다 ‘읽는 이’를 구체적으로 염두에 두고 쓰는 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편지를 받는 이가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바로 ‘그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편지는 그 구체적인 당신에게 말을 걸고 관심을 가지며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유일한 매체입니다. 상대를 향해 다정한 손길을 내밀 수 있습니다. 편지가 비록 보내는 나의 목소리와 필체를 담고 있다고 해도, 본질은 읽는 상대에게 가 닿고자 하는 마음, 그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 그리고 상대에 대한 관심을 내가 갖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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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문득 궁금해집니다. 우리가 글을 통해, 내가 아닌 ‘당신’의 안부를 물어본 지가 대체 얼마나 됐을까요. 메일이나 문자 메시지, ‘카톡’을 통해 약식화된 대화에서, 내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건네 본 지 오래 되지는 않았나요. 소략화한 대화에 익숙해져서인지 각자가 자신이 할 말을 하고 들을 말만 듣고 마는 경제적인 소통이, 문자로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이 된 느낌입니다. 내 육성으로 다정하게 상대의 이야기를 말해주고 청하여 다시 듣는 일은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 돼 버렸습니다. 물론 바쁜 시대에 거추장스러운 인사나 거죽뿐인 공허한 염려 따위 없어도 좋지 않느냐는 반문도 일리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물건이나 습성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요. 상대의 안부를 부러 물어주고 상대의 이야기를 굳이 하는 그 거추장스럽고 공허한 일을, 그러나 이 책에서는 애써 하려 합니다. 이 책의 어느 국면에서 여러 번 등장할 용어로 비유하자면 ‘멸종’된 행동과 양식을, 이 책은 거스르려고 합니다. 

 

또한 이 책은 생물학, 생태학 등 과학적인 내용을 뼈대로 하되, 그 안에 되도록 풍성하게 문학이나 철학 내용을 집어 넣으려 애썼습니다. 그래서 혹자가 보기에는 이 글이 과학 에세이가 아니라 문학과 과학, 철학, 문명비판이 뒤섞인 혼종 에세이로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 역시 제가 의도한 바입니다. 과학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느라(그 자체만으로도 힘겨운 일이긴 합니다) 인접한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는 데에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일부 과학 글쓰기에 대해 작은 의문을 제기하고,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과학을 읽고 사유할 수 있게 하는 책의 사례를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생태계의 먹고 먹힘에 대해 다루다가 ?주역?의 구절을 등장시키기도 하고, 호르몬 반응을 언급하다가 시를 인용하기도 하며 멸종을 이야기하다가 영화 장면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는 과학이 사회와 문화적 맥락 여기저기에 깊숙하게 스며 들어 있고, 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사회입니다. 이 책의 노력은 미완일 수 있지만, 색다른 과학 텍스트가 등장하는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에두르지 않고 오히려 일삼아 하는 이 문투와 내용이, 지식을 손쉽고 달콤하게 읽어내길 선호하는 독자의 마음과는 반反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과학에 대한 글을 생업을 위해 쓰는 사람으로서, 과학이 왜 꼭 쉽게, 고갱이만으로 전달돼야만 하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명쾌하고 쉽게 풀고, 비유를 통해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쓰라는 게 모든 과학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요구받는 주문입니다만, 왜 유독 과학만 그리 해야 하나요. 과학이 어렵기 때문에? 하지만 신문에 곧잘 나오는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현대 철학자에 대한 기사는 이해하기 쉬워서 그리 쓰여지나요. 용어가 직관적이어서 더 쉽게 풀어쓰지 않는 건가요. 영화잡지에 실린 평론의 복잡한 문장은 단박에 이해할 수 있기에 용인되던가요. 경제 평론의 난해한 한자 용어는 모두가 이해하고 있나요. 왜 유독 과학이 개입한 글에만 ‘쉽게, 단순하고 명쾌하게, 결론만 간결하게’라는 덕목이 요구되는 걸까요. 과학자들은 그런 글의 단순함과 그로 인한 메시지의 간략함에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과학 콘텐츠는 그런 요구에 길들여 쓰여집니다. 저는 당신은 그런 글만을 요청하는 분이 아닐 거라 믿습니다. 이 편지글 형식에 당신이 흥미를 가지고, 나아가 상대에 대한 관심을 글로 표현하는 정신에 대해 흥미를 느껴보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이런 식으로 구성한 것은, 이렇게 잃어버린 편지 형식을 복원해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만은 아닙니다. 책에 등장하는 13종의 생명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생태계의 구성원입니다. 따라서 모두가 서로에 대해 한 마디씩 대화를 건넬 수 있는 사이입니다. 이들은 사실 굳이 상대에게 편지를 쓰지 않아도 생태계의 복잡한 그물 안에서 서로 알게 모르게 만나고, 또 서로의 생태적 지위를 잘 이해할 것입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들 사이의 관계를 시야로 꺼내 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서로를 향해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서로에게 할 말이 많을 거예요. 물론 망설임도 있었습니다. 언어는 생각의 틀이라고 하죠. 따라서 사람처럼 말하고 쓰면, 동물로 하여금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람을 더 잘 이해하거나 양해하게 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위험은, 사람의 언어로 이 작업을 해야 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한계라고 치고 넘어갈 수밖에요. 


사람이 곧잘 쓰는 말에 ‘한두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라는 말이 있지요. 요즘은 복잡계 물리학이나 네트워크 과학에서 ‘링크’라는 말로 이론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많아도 대여섯 단계만 거치면 세상 70억 인구 누구와도 연결되는 게 가능하다고 합니다. 교통과 통신을 통해 70억 인구 모두가 잠재적으로 ‘아는 사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인류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1만 km가 넘는 지역을 이동하는 철새나, 남북위를 가로지르며 대양을 자재로이 헤엄치는 고래 같은 동물, 그리고 무엇보다 지상 어디든 발을 딛고 보는 인간이 이들 동물을 연결시켜 주는 전령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동물의 생태계 역시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인류가 6명 내로 ‘링크’가 가능한 것은 인구가 70억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적은 것 같으세요, 많은 것 같으세요? 놀라지 마세요. 인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형 포유류 중 가장 개체수가 많답니다. 포유류뿐만 아니라 양서류, 파충류 등으로 확장을 해도, 하나의 종으로서 개체수가 사람보다 많은 동물은 가축인 닭밖에 없습니다(2009년 FAO 기준 186억 마리). 그 뒤를 이어 소, 양, 돼지가 각각 따르지만 그 수는 약 10억 마리 내외로 인류에 비하면 턱없이 적습니다. 야생 상태의 포유류는 비할 바 없이 적고요. 버펄로가 그나마 가장 많은데, 2억 마리가 채 안 되니까요. 물론 여기에서 곤충 등 무척추 동물을 포함시키면 이야기는 또 완전히 달라집니다만, 일단 제외시키기로 했어요. 


대부분의 대형 동물 한 종 한 종은 분명 사람보다 개체수가 적습니다. 하지만 온갖 종이 이루는 복잡한 생태계 안에서, ‘동물’이라는 묶음으로 한 데 일컬을 수 있는 생물의 전체 수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분명 거쳐야 할 링크의 수는 조금 늘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 봐야 하나나 둘 수준입니다. 무엇보다, 제 아무리 긴 링크를 거친다 해도, 결국 연결될 운명인 것이 지구라는 폐쇄된 행성에 살고 있는 생물 모두의 당연한 삶이 아닐까요. 그러니 이들 생명의 가치에 높고 낮음의 차이는 많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적어도 한쪽이 다른 나머지의 삶을 좌지우지해도 좋을 정도로는 말이죠. 그 한쪽이 누구인지는 아시겠죠. 


이러니 태평양 한가운데의 대왕고래와, 한반도 내륙의 동굴에서 겨울잠을 자는 박쥐,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아카시아 잎을 혀로 쓸어 먹고 있는 기린은 서로가 서로에게 할 말이 많은 존재일 것입니다. 벌통의 꿀벌과 우리 속의 돼지, 화석에 묻힌 인류의 조상 역시 서로에게 그리움이 많습니다.직접은 말을 하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인간인 제가 대신 그 말을 기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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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윤신영 저 | MID 엠아이디
생물학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문학과 철학 이야기가 나오고, 생태학 주제를 다루는가 싶더니 주역으로 넘어간다. 과학 지식을 전한다고 인접한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런 시선은 반쪽짜리 시선에 불과할 것이다. 과학 역시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사회문화적 맥락 없이 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은 이 책은 쉽지 않으나 난해하지 않고, 에두르지 않으면서도 명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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