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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현, <헤드윅> <프리실라> 찍고 <보이첵>으로
“배우의 본능을 들끓게 하는 배역들이 있어요!”
김다현 씨의 트위터를 보니 ‘내 인생의 딜레마’라는 글이 있습니다. ‘아이돌이고 싶은데 야다였고, 빅뱅머리하고 싶은데 새치 있고, 오빠·형이고 싶은데 삼촌·아저씨고, 고백 받고 싶은데 유부남이고, 영혼은 자유로운데 몸은 두 아들의 아빠다.’라고.
“배우의 본능을 들끓게 하는 배역들이 있어요!”
그는 올해 가장 만나보고 싶었던 배우 가운데 한 명입니다. <M.Butterfly>의 송을 연기할 때만 해도, <헤드윅> 10주년 무대에 설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프리실라>의 버나뎃까지 섭렵하자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아니 이게 가능한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헤드윅>과 <프리실라>가 한창 공연되고 있는 이 마당에 그는 보기 좋게 다음 작품까지 알려왔습니다. 다름 아닌 뮤지컬 <보이첵>.
<보이첵>은 독일 출신 게오르그 뷔히너가 실화를 바탕으로 쓴 미완성 희곡으로, 연극과 오페라 등으로 전 세계 무대에서 공연됐지만 뮤지컬로는 이번에 처음 제작됩니다. <명성황후>와 <영웅>을 만든 윤호진 연출이 그동안 뮤지컬 제작에는 관심도 없던 LG아트센터와 공동으로 작업했다는 것만으로도 주목 받고 있는 작품에 올해 절반 이상을 여장으로 살아온 그가 주인공으로 낙점된 겁니다. 여자보다 더 양파 같은 남자 김다현,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요?
“대한민국 뮤지컬 배우 중에 여장을 가장 많이 한 남자배우인데, 한편으로는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요. 글쎄요,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배우죠.”
그룹 ‘야다’ 출신 뮤지컬배우 김다현 씨를 오금동 연습실 근처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길을 헤맨 기자가 약속시간을 지나 나타났는데도 말갛게 웃고 있는 그는 조금 비현실적인 외모이긴 합니다. 실제로 <헤드윅>과 <프리실라>에서는 많은 남자배우들이 여장을 하고 무대에 서는데, 제작진도 관객들도, 심지어 배우들 사이에서도 가장 ‘예쁜 배우’로 꼽히는 김다현 씨죠. 독특한 작품의 특색 있는 캐릭터이긴 합니다만 반 년 이상을 연달아 여성으로 살고 있는 기분은 어떨까요?
“가장 크게 끌렸던 건 매력이에요. 세 작품 모두 여장남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매력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인물들이거든요. 우아함, 섹시함, 귀여움, 거기에 큰언니 같은 푸근함과 너그러움도 있고 또 여성스러움과 까다로움, 갑자기 남성성이 나올 때도 있고요. 무대에서 그런 다양한 감정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데 흥분이 됐어요.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다는 건 가장 큰 장점이면서 복이거든요.”
<M.Butterfly>는 재연이고 <헤드윅>도 10주년 공연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프리실라>까지 연달아 여장으로 무대에 설 때는 고민을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프리실라>라는 작품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제가 배우활동을 하는 동안 우리나라에서 공연될까 싶었어요. 그런데 올라간다는 거예요. 하지만 <M.Butterfly>에 이어 <헤드윅>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한테 기회가 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콜이 왔을 때는... ‘나밖에 없는 건가?’ 생각했죠(웃음).”
아, 이런 분이셨나요(웃음)? 하긴 많은 스태프와 배우들이 여장했을 때 예쁘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가끔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면 거의 얘기를 안 해서 내성적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작품에서는 굉장히 코믹하기도 하고. 실제 성격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제가 조금 변했어요. 캐릭터들이 저를 변하게 한 것 같아요. 배우의 장점이 다양한 캐릭터로 다른 삶을 살아본다는 거잖아요. 제가 상당히 고지식하고 말도 적은 편이고, 가만히 있으면 다가서기 힘든 스타일이었는데 바뀌더라고요. 사실 <라카지>나 <헤드윅>은 하이 코미디가 필요하거든요. 순발력도 있어야 하고. 배우생활 초반에는 귀공자나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이미지 때문에 연기나 이미지가 제한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다양한 역할을 해보는 것 같아요. 이런 배역들을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감사하고요.”
덕분에 그는 올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쉬어본 날이 없을 정도로 달리고 있습니다. 어제 <프리실라> 무대에 섰던 그는 오늘 <보이첵> 연습을 하고, 내일은 다시 <헤드윅> 무대에 올라야 합니다. 게다가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빠인 김다현 씨 본인이기도 하죠.
“저도 신기할 때가 있어요. 많은 분들이 너무 많은 스케줄에 건강을 염려하시는데, 나중에 크게 아플지 몰라도 지금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서인지 정신 상태와 컨디션은 더 좋아요. 나태해질 겨를이 없죠. 저는 지금도 항상 공연을 녹음해서 확인해요. 매일 공연을 보러 오는 팬들이 계시니까 하루도 대충할 수 없는 거예요.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좋은 무대를 보여드리려 노력하고, 항상 첫 공연처럼 임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공연의 질도 좋아지고요.”
이렇게 빡빡한 스케줄이면 건강관리를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아니, 몸매관리인가요(웃음)?
“엄청 하죠! 요즘은 <보이첵>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고 있어요. 보이첵은 돈을 벌기 위해서 생체실험에 참가해요. 3개월 동안 완두콩과 물만 먹고 지내면서 인간의 스트레스 지수가 어떻게 나오고, 어떤 변화가 있는지 실험하는 건데, 최대한 그 인물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 59kg으로 10kg 감량하는 게 목표예요. 지금 5~6kg 뺐어요. 하루에 한 끼만 먹거든요.”
원래도 날씬한데, 5~6kg를 뺐으면 <헤드윅>이나 <프리실라> 의상이 안 맞겠는데요?
“옷이 좀 커져서 줄였죠. <보이첵>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배우의 본능이 들끓는 거예요. 배우는 엄청난 배역을 만나면 희열을 느끼거든요. 그동안 왕자 이미지나 여장 모습에서 보여줬던 것들을 뒤집을 수 있는 캐릭터다 싶었죠. 무대에서 어떻게 할지가 그려지고, 그래서 메소드 연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더블 캐스팅된 김수용 씨는 보이첵에 딱 맞지 싶은데, 솔직히 김다현 씨는 의외라는 생각도 듭니다.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가고 있나요?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웃음).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미쳐갈지. 간추리면 두 가지예요. 하나는 내가 작품 속에서 연기를 하는 것, 또 하나는 정말 내가 보이첵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거. 가끔 <헤드윅> 무대에서 정말 헤드윅이 된 적이 있거든요. 그럴 때는 어떤 틀이, 계산한 것들이 다 깨져요. <헤드윅>은 가능해요, 저 혼자 이끌어가니까. 하지만 <보이첵>은 상대 배우들이 있으니까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정신분열을 어떻게 계산해서 연기할 것이냐. 배우로서 캐릭터를 연기할지, 아니면 내가 보이첵이 돼 볼지...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죠.”
연출가 윤호진 씨가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 선택한 소재이고 영국의 인디밴드가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LG아트센터까지 제작에 참여하면서 다각도에서 주목받고 있는데, 배우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로 부담스러운 면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럼요. 상당히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고요. 그런데 <보이첵>이라는 작품이 정말 쉽지 않아요. 소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도 뷔히너의 절제되면서도 이상적인 글귀들을 어떻게 드라마틱하게 표현할 것인가... 연극으로 간다면 조명과 세트, 소도구들로 인물의 상태를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걸 음악과 대사로 표현하는 건 더 어려운 거예요. 배우로서 자신감과 자부심은 있는데, 다른 모든 게 잘 맞물렸으면 좋겠어요. 창작 초연이 어려우면서도 흥미로운 점이죠. 장면마다 1에서 10까지 어떤 게 더 맞아떨어질지 아직은 몰라요. 저는 배우로서 1에서 10까지 모두 준비하겠어요.”
서른여섯 살, 요즘처럼 쉴 틈도 없이 달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면요?
“저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거요. 많은 작품의 섭외를 받고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저도 사람이라 정신적으로 아무리 버티려 해도 웃기조차 힘들 때가 있어요. 오늘 아침에도 몸이 침대에서 안 떨어지더라고요. 하지만 나의 능력을 펼칠 수 있고, 이 멋진 캐릭터들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것, 또 누군가 저를 보며 꿈을 키워간다는 말을 들으면 감사하죠. 이런 생각을 하면 일어나 신발을 신고 다시 공연장으로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지난 주 연강홀에서 공연을 보다 2006년 같은 무대에서 <폴 인 러브>를 공연했던 김다현 씨가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꽃미남으로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배우의 느낌이 물씬 풍기네요. 김다현 씨의 트위터를 보니 ‘내 인생의 딜레마’라는 글이 있습니다. ‘아이돌이고 싶은데 야다였고, 빅뱅머리하고 싶은데 새치 있고, 오빠?형이고 싶은데 삼촌?아저씨고, 고백 받고 싶은데 유부남이고, 영혼은 자유로운데 몸은 두 아들의 아빠다.’라고. 인생에서 생겨난 그 모순의 거리만큼 그는 배우로서 다채로운 색깔과 짙은 향을 갖게 된 게 아닐까요?
꼭 인터뷰하고 싶은 배우였는데, 한정된 시간에 너무 많은 그와 마주하다 보니 기자에게는 조금 아쉬운 만남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 멋진 남자 김다현 씨를 무대에서 마음껏 골라볼 수 있습니다. 9월까지는 <헤드윅>과 <프리실라>로, 그리고 10월 9월부터 11월 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는 <보이첵>으로요!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