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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석 정재일, 진실한 우리네 삶을 이야기하다

놀랍도록 아름답고도 현실적인 '우리'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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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구분 짓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음악입니다. 판소리, 현대 음악, 월드 뮤직, 퓨전도 아닙니다. 깊은 감성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만이 확실합니다. ‘진한’ 음악입니다.

한승석&정재일 < 바리abandoned >

 

바리

 

'영(靈)적인 접근'. 앨범 리뷰를 준비하며 떠올렸던, 낯설음이 반영된 첫 문장이었다. 바리공주라는 전통 설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테마가 그랬고 처음 앨범을 재생했을 때의 낯선 느낌이 그랬다. 분명 이것은 전통 판소리가 아니며, 현대 음악은 물론 아니고 월드 뮤직의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흔한 '퓨전'이라는 말도 적합하지 않다. 소리꾼 한승석과 뮤지션 정재일이 빚어낸 이 소리는 그만큼 낯설었다.

 

그러나 극작가 배삼식이 지었고 한승석과 정재일이 음악으로 그려낸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너무나도 닮았다. 부모에게 버려진 바리공주와 이를 상징하는 단어 'abandoned(포기)'를 더한 앨범은 모든 버림받은, 혹은 버림받았다 느끼는 이들에게 바치는 나지막하면서도 강렬한 헌사다. 정재일이 연주하는 피아노, 일렉 기타, 어쿠스틱 기타, 베이스가 현대적인 멜로디를 만들어내면 그 위에서 한승석의 목을 빌려 나오는, 다채로우면서도 깊은 우리의 소리가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불러내어 춤을 춘다. 때로는 우아하고, 때로는 절망적이며, 때로는 유쾌한 것이 우리네 삶과 똑 닮았다.



 

12분에 달하는 오프닝 트랙 「바리abandoned」에서 비장한 정재일의 피아노와 절절한 한승석의 창은 모든 바리어진 넋들에게 바치는, 장대한 이야기의 엄숙한 머리말이다. 「아마, 아마, 메로 아마」의 고통에 찬 외침은 타국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네팔 외국인 노동자의 절규이며 「바리아라리」는 한국인의 고달픈 '한의 정서'를 압축한 민요 아리랑을 '바리고 바리 아라리요'로 새로이 풀어냈다. 부모의 생명을 구하러 서천 꽃밭으로 향하는 바리공주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멜로디 위에서 물을 구하러 가는 아프리카 난민촌 아이의 이야기가 되고, 설산 기슭 티베트 아이의 고달픈 삶으로 다시 피어난다.

바리

 

비극과 고난, 애상의 정서는 세 트랙에 달하는 「빨래」에서 정화의 시간을 갖는다. 흥겨운 어쿠스틱 기타의 리듬에 맞춰 산더미같이 쌓인 빨랫감들이 깨끗이 씻겨 나간다. 세상 모든 이들의 각각 우환이 담겨 있는 빨래를 하며 한승석의 목소리를 통해 바리공주는 말한다.

 

'먼지 자욱한 뜬세상, 허물없는 목숨이 어디 있으랴.' 슬랩 베이스와 태평소, 꽹과리와 함께 메기고 받는 「모르긴 몰라도」가 말하듯 기가 차고 말문이 막히는 세상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을 수는 있을지언정 세상에 버림받은 삶은 없다. '내가 가면은 너도 가고, 내가 오면은 너도 오고, 내가 있으면 너도 있고, 내가 없어도 너는 있는' 법이니, 구원의 길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없는 노래」가 이야기하듯 이 앨범은 이 세상에 없는 이들에게 바치는. 없어질 것만 같이 느끼는 이들에게 바치는 '없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낯설었으나, 그렇기에 더욱 우리와 가까이 있다. 국악의 현대적 실험이라거나 대중적인 접근이라는 의의도 있겠지만 앨범의 진정한 가치는 음악적 평가를 뛰어넘었다.

 

국악이라서 우리의 것이라 하는 게 아니다. 바로 여기에, 놀랍도록 아름답고도 현실적인 '우리'의 음악이 있다. '바리어진 이들'이 부르는, 진실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가 있다.

 

2014/07 김도헌(zener12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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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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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석 & 정재일 '바리 Abandoned' 버림, 버려짐, 용서, 별리別離, 생멸生滅, 희망, 구원... 바리공주설화 속에서 건져 올린 이 시대 삶에 대한 성찰을 배삼식의 노랫말, 한승석의 소리, 정재일의 연주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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