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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상상하건 다른 것을 볼 것이다, <군도 : 민란의 시대>

충분히 즐기며 볼만한 오락영화로서의 역할은 충실히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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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 : 민란의 시대>에 민란의 주체인 ‘백성들의 난’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점은 아쉽다.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적!’이란 외침 속에 민란을 연상시킬만한 장면이 등장하지만, 군도와 백성, 그리고 조윤은 밀접하게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

올 여름 극장가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로 가득하다. 그 중 첫 번째로 열린 <군도 : 민란의 시대>를 시작으로 <명량>, <해적>, <해무>가 1주일 간격으로 줄줄이 개봉된다. <군도>의 시작은 기대했던 대로다. 개봉 첫날 55만 명의 관객을 모아 역대 오프닝 최고 성적을 냈고, 개봉 5일 만에 300만명이 관람을 하는 등 초반 흥행세는 따를 자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대항마들이 각자의 개성으로 무장한 체 덤비는 순간, <군도>는 굳건히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을 만큼 단단한가?

 



복수를 꿈꾸는 자의 거침없는 서부극 스타일의 복수 드라마와, 벚꽃 잎 흩날리는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춤을 추듯 칼날을 휘두르는 일본식 활극, 그리고 두 개의 이야기를 이끄는 다른 매력의 주인공, 다른 서사 속에 민중의 난이라는 중심 이야기를 섞었다. 분명한 것은 이야기꾼으로서의 감독의 재능과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배우들, 정두홍 무술감독에 의해 현란하게 이어져 지루할 틈 없는 액션 무협장면까지 더해져 <군도>는 충분히 즐기며 볼만한 오락영화로서의 역할은 충실히 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윤종빈 감독이라면, 이 배우들과 함께 였다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는 피해갈 수 없는 덫이 되어 <군도>의 발목을 잡는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기대했던 것과 계속 다른 것을 보여주는 색다른 이야기가 결이 다른 두 가지 스타일이라는 형식과 섞이면서 묘하게도 <군도>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깃털처럼 가볍지만 재치 있는 농담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친절한 종빈씨가 강동원에 빠진 날

 

양반과 탐관오리들의 착취가 극에 달했던 조선 철종 13년. 힘없는 백성의 편이 되어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적 떼인 군도(群盜)가 있다. 나주 대부호의 서자로 조선 최고의 무관 출신인 조윤은 백성들을 수탈, 최고의 대부호로 성장한다. 한편 백정 돌무치는 조윤에 의해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고 군도에 합류, 백성의 적 조윤과 한 판 승부를 벌이기 위해 준비한다.

 

 <군도>의 시작은 아주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대작답게 효율적이다. 땡추(이경영), 대호(이성민), 태기(조진웅), 천보(마동석), 마향(윤지혜), 금산(김재영) 등 군도의 무리를 형성하는 여러 캐릭터들이 각기 다른 특징과 역할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쇠백정 돌무치가 ‘도치(하정우)’라는 이름으로 거듭나 군도의 한 무리가 되어가는 과정도 다소 도식적이긴 하지만 흥미롭다. 군도와 도치로 이어지는 무리의 이야기는 웨스턴 스타일을 따르고, 역동적이다.

 

또 다른 주인공, 서자의 슬픔을 간직한 악역 조윤(강동원)을 설명하는 방식은 이들과 다르다. <친절한 금자씨>를 연상시키는 내레이션을 통해 조윤은 그 탄생부터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야기를 담아낸다. 윤종빈 감독은 지저분한 군도 무리와 달리, 강동원에게는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옷가지와 짙은 아이쉐도우, 그리고 꽃잎 휘날리는 아름다운 검술과 찰랑거리는 머리칼을 허락한다. 

 

군도

영화 <군도> 스틸컷

 

조금 아쉽게도 이야기가 조윤(강동원)에게 그 중심이 쏠리면서, <군도>는 어느 순간 균형 감각을 놓친다.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윤종빈 감독의 강동원에 대한 애정이 <군도>를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변화시킨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감독에게 강동원은 ‘절대 악’의 존재가 아니다.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그의 검술은 무용이고, 마치 샴푸 모델이라도 해야 할 것처럼 찰랑거리는 머리칼이 풀어헤쳐지는 순간 강동원은 성별의 구별이 되지 않는 ‘절대 미’의 피사체이다. 덕분에 조윤이라는 절대 권력과 그 악행이 처단된 후, 관객들은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가 없다. 오히려 그의 죽음은 처연하고 슬프게 그려진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다 어쩔 수 없이 악당이 되고만 비극적 인물이라는 당위와,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려고 수많은 민중들을 학살하면서 찾아낸 ‘아기’를 당장 처단하지 않고, 오히려 그 때문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아무리 되짚어도 설득되기 어렵다. 조윤에게 쏠린 관심을 조금만 덜어냈다면 악랄한 조윤에게 핍박 받고 갈취당한 백성의 슬픔은 큰 힘을 가지고 큰 울림을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에서 당당하게 밝혔음에도 <군도 : 민란의 시대>에 민란의 주체인 ‘백성들의 난’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점은 아쉽다.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적!’이란 외침 속에 민란을 연상시킬만한 장면이 등장하지만, 군도와 백성, 그리고 조윤은 밀접하게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

 

윤종빈 감독은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한국의 군대, <비스티 보이즈>의 호스트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를 예리하게 해부하면서도 섬세한 디테일을 살려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다. 윤종빈 감독에게 <군도>와 같은 대작을 만들 기회를 준 세 번째 작품은 갱스터 영화였던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였다. 갱스터 영화에서 기대되는 스타일리시한 액션 대신 찌질한 건달들의 욕망에 더 앞서 다가간 이 영화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자기만의 의지를 가지고 움직여주는 영화였다. 이미 윤종빈 감독의 작품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윤종빈 감독의 날선 균형감각과 한국사회를 향한 예리한 시선을 담아낸 <군도>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군도>는 어떤 지점에서 깊이 파고 들지 않고 대중친화적인 접점들을 조금 더 넓게 펼쳐낸다. <군도>가 윤종빈 감독이 직접 설립한 제작사 ‘월광’의 창립 작품이라는 사실에 그 해답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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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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