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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실라> 뮤지컬배우 이주광 인터뷰

“작품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만의 놀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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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주광 씨가 다음에는 어떤 인물로 변신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이주광

 

요즘 국내 공연시장에서 가장 화려한 작품은 무엇일까요? 공연을 봤다면 누구나 뮤지컬 <프리실라>를 꼽을 겁니다. 2006년 호주 시드니에서 초연된 뮤지컬 <프리실라>는 동명의 영화에 전 세계 차트를 휩쓸었던 히트 팝을 버무렸습니다. 성적 소수자들의 소외된 삶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마돈나, 신디 로퍼, 도나 썸머 등 인기 팝스타들의 신나고 익숙한 노래로 절묘하게 포장해 친근하게 터트린 것이죠. 시각적으로 보자면 총 길이 10미터에 3만 개의 LED 조명이 장착된 현란한 버스 세트를 필두로 500여 벌의 의상, 60여 개 가발, 신발 150켤레, 모자와 머리장식 200개까지 가세했습니다. 한 회 공연에 261번의 의상 체인지가 있다고 하니 관객들이 눈을 뗄 수가 있겠습니까?

 

그뿐인가요. 어여쁘게 단장하고 곱게 차려입은 9명의 남자 배우들은 목소리, 걸음걸이, 심지어 몸매까지 여자보다 더 예쁘다 보니, 가슴 깊은 곳에서 매우 색다른 배신감을 느끼게 합니다. ‘당신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다니!’ 이들 가운데 한 명과 인터뷰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기자는 오랜 고민 끝에 이주광 씨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연초 <셜록홈즈2: 블러디 게임>을 보고 조만간 그를 인터뷰하리라 결심했거든요. 당시 에드거로 광기 어린 상남자의 매력을 흩뿌렸던 이주광 씨 역시 <프리실라>에서는 180도 변신했습니다.

 

“아무래도 (김)다현이 형이 가장 예쁘죠. 그 형은 자기도 예쁘다는 걸 알아요(웃음). 그리고 (고)영빈이 형은 고상하고 우아해서 귀부인 같고, (조)성하 형님은 외국에 정말 그런 여자가 있을 것 같다고들 얘기해요. (조)권이도 예쁘고요.”

 

배우들끼리는 <프리실라>에서 여장이 가장 어울리는 남자로 김다현 씨를 꼽는다고 합니다. (재밌게도 김다현 씨는 연극 <M.butterfly>에서 뮤지컬 <헤드윅>, <프리실라>까지 2014년의 절반을 여장으로 살고 있네요.) 김다현을 비롯해 조성하, 고영빈이 왕년의 스타로 우아한 매력을 지닌 트랜스젠더 버나뎃을, 아들을 만나기 위해 프리실라 팀을 꾸리는 틱 역에는 마이클리, 이지훈, 이주광, 그리고 요즘 잘 나가는 아담 역에는 조권, 김호영, 유승엽이 캐스팅돼 관객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매력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배우니까 여성적인 면은 관찰을 통해 표현하죠. 배우들끼리 일부러 이태원에 드랙퀸(Drag Queen, 여장 남자) 쇼나 퀴어 축제 등에 가기고 했고요. 예전에 <헤드윅>을 해서, 헤드윅과 겹치지 않는 틱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틱은 양성애자이고, 자기도 혼란스러워 하잖아요. 그래서 여장을 했을 때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다가가려고 했어요. 흥에 겨워 추는 것도 있지만, 좀 더 정확하고 멋지게 추는 식으로요.”

 

이주광

 

배우니까 다른 작품에서도 메이크업과 의상을 통해 다른 인물로 변신하지만 <프리실라>의 메이크업과 분장은 차원이 다른 것 같습니다. 관객들이 무대 위의 화려함을 만끽하는 만큼 무대 뒤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겠죠?


“모든 장면이 퀵체인지라서 무대 뒤에 수많은 스태프들이 있어요. 제 의상만 22벌이거든요. 그래서 배우마다 전담팀이 있죠. 옷 벗는 순서도 있어요. 정확한 위치로 시간 안에 들어가야 하고, 물 먹을 시간도 없이 다시 무대로 나가야 해요. 이 상황에서 더 말이 안 되는 건, 의상이 모두 갈아입기 힘들게 생겼다는 거죠(웃음). 수영복은 다리를 끼워야 하고, 스타킹도 신어야 하고, 머리에도 무언가를 얹어야 하고. 의상에 맞게 아예 분장이 된 마스크가 있는데 제 역할만 해도 9개나 돼요.”

 

그런데 워낙 다른 캐릭터이긴 하지만 <셜록홈즈>의 에드거와 <프리실라>의 틱을 같은 배우가 연기했다고 생각되지 않는 건 왜일까요? 공연을 마치고 카페에서 만난 이주광 씨 역시 제3의 인물 같습니다.


“원래 공연마다 캐릭터 차이가 있는 역할을 선호해요. 살을 찌우고 빼는 것에 따라, 분장이나 머리스타일에 따라 이미지가 많이 달라지는 편이고요. 저도 그걸 즐기죠. 제 안에 두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배우니까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면 기분이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못 알아보면 좋겠어요. 예전에 공연 끝나고 지나가는데 저더러 ‘이주광 씨 아직 안 나오느냐’고 묻더라고요. 재밌잖아요. 합법적인 거짓말? 무대 위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족도 속이고 싶은, 저만의 놀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에드거 때 살을 뺀 이주광 씨는 틱을 위해 다시 살을 찌웠습니다. 화려한 쇼 뮤지컬 <프리실라>에서 오히려 튀지 않고 중심을 잡아야 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고를 때 ‘내가 왜 이 작품을 하는지, 이 작품에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생각하는데, 처음에는 <프리실라>가 그냥 재밌고 즐거운 뮤지컬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깊숙이 들어가 보니 이들이 처한 상황과 대사 하나하나에 모두 메시지가 있더라고요. 캐릭터마다 드라마가 있고, 각자 자부심과 함께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부딪힘을 겪고. 또 틱은 아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잖아요. 버나뎃과 아담은 캐릭터가 세고 틱은 중재하는 역할이라서 그들 사이에서 선을 지키는 것이 어려웠어요. 잘못하면 어중간해 보일 수 있거든요. 그리고 여러 페어가 있다 보니, 조율하는 역할에서는 사람마다 받아줘야 하는 게 있어서 힘든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몫이니까 재밌게 가야죠.”

 

<프리실라>에서는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분장을 지운 이주광 씨는 도시적이고 편하게 다가가기 힘든 이미지입니다. 실제 성격은 어떤가요?


“긍정적이지만 아주 활발하지는 않아요. 가만히 있는 편이죠. 농담도 힘없이 하는 걸 좋아해요. 집에 가서 문득 생각해보면 무척 웃긴, 이 개그에 빠지면 잠도 못자요(웃음). 사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일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누군가 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면이 생긴 것 같긴 해요. 그래서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이미지가 차가운가 봐요.” 
 

이주광


<프리실라>의 주인공들은 무척 화려한 쇼를 선보이지만 안으로는 모두 상처와 아픔을 품고 있는데, 배우 이주광에게도 남모를 고단함이 있는 걸까요?


“아무래도 물질만능사회에서 물질적인 부분이겠죠. 그런 것들이 저의 어떤 순수한 생활을 방해하는 느낌, 가로막는 느낌이 들 때요. 제가 집에서 가장역할을 해온 지 오래 됐거든요. 그런 책임도 중요하지만, 제가 하기 싫은 작품을 돈 때문에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차라리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자. 그래서 <헤드윅>을 하면서 다른 일을 한 적도 있어요. 그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최연소 헤드윅으로 주목받을 때 ‘그때 팍 치고 올라가야 했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으니까. 배우를 평생 하겠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하지만 이만큼 애정을 들이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작품을 할 때 정말로 다 쏟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배우로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걸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나이 서른 셋. 이주광 씨가 지키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작품이 저를 키웠다고 하기까지는 그렇지만 도움이 많이 됐어요. <틱틱붐>을 하면서 꿈을 버리지 말아야겠다, <빨래>를 할 때는 순수함을 잃지 말고 내가 힘들어도 누군가를 순수하게 지켜줘야지, <브루클린>을 하면서는 세상에 많은 사연이 있지만 그 안에서 내가 흘린 눈물로 장미에 물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동안 만났던 작품을 통해 저는 더 좋은 사람이 됐고, 더 남자다워졌고, 여자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됐고,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게 됐고, 여러 모로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한 계단씩 밟아가고 있고, 멋있는 배우보다 사람냄새가 났으면 좋겠어요.”

 

공연이 끝난 뒤 허탈함이야 모든 작품이 마찬가지겠지만 <프리실라>처럼 빠르고 화려한 작품은 더하겠죠? 한 시간이 넘도록 긴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주광 씨는 공연을 마친 뒤라서 그런지 인터뷰 내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습니다. 그 틈을 노려 더 많은 얘기를 더 깊게 뽑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어쩐지 지금의 이주광 씨에게서는 여기까지만 듣는 게 좋을 것 같아 녹음기를 껐습니다. 스스로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주광 씨가 다음에는 어떤 인물로 변신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뮤지컬 <프리실라>는 9월 2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화려한 무대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현란한 의상과 무대세트, 신나는 음악보다 수년 동안 객석에서 지켜봐왔던 배우들에게서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가장 컸습니다. 도대체 사람에게는 얼마나 다양한 모습,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있는 걸까요? 자, 수많은 사연을 안고 떠나는 프라실라의 여정, 여러분도 동참해 보시죠! 

 

 

 

프리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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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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