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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오해도 뛰어넘는 진짜 쇼 - 뮤지컬 <프리실라>
태평양 건너온 게이쇼? 진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세 사람의 화려한 로드무비
호주에서 초연해서 대 히트를 기록했고,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 진출에 이어 한국에서는 이번이 초연이다. 여장 남자에 쇼걸까지 연기해야 하는 역할이라, 매번 무대가 오를 때마다 끼와 재능을 겸비한 스타성 있는 배우들이 출연했다.
사진만 보면 단순한 게이쇼라고 생각하겠지만
뮤지컬 <프리실라>는 칸 영화제 관객상을 받은 영화 <프리실라>를 무대에 옮긴 작품이다. 세 명의 드랙퀸이 프리실라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서 겪게 되는 인생과 사랑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드랙퀸은 쇼걸처럼 화려하고 섹시하게 춤을 추는 여장 남자를 뜻한다. 극 중에서는 트랜스젠더 버나뎃과 게이 틱과 아담 세 사람이 공연 내내 화려한 드렉퀸 무대를 선보인다.
호주에서 초연해서 대 히트를 기록했고,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 진출에 이어 한국에서는 이번이 초연이다. 여장 남자에 쇼걸까지 연기해야 하는 역할이라, 매번 무대가 오를 때마다 끼와 재능을 겸비한 스타성 있는 배우들이 출연했다. LG 아트센터에서 초연하는 국내판 <프리실라> 역시 출연진이 화려하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게이 틱 역할로는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이후 꾸준히 관객들에게 좋은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마이클리, 이지훈, 이주광이 열연하고, 제일 맏언니인 트렌스젠더 버나뎃 역에는 조성하, 고영빈, 김다현이, 시드니에서 가장 인기 많은 게이 아담 역에는 조권, 김호영이 이제껏 보지 못했던 가장 아름답고 섹시한 모습을 한껏 뽐낸다.
“다들 약 빨고 온 거야? 왜들 이렇게 신났어?”
조권에 관한 기사로 이 뮤지컬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도 있을 테다. 뮤지컬 <프리실라>의 프레스콜이 있었던 날, 화려한 드렉퀸 분장을 한 조권의 요염한 몸짓이 기사로 나갔고, 거기에 악성 댓글이 달리는 소동이 있었다. 그러니까 뮤지컬 <프리실라>와 조권의 연기를 그저 ‘게이쇼’라고 폄하하는 글이었다. 거기에 조권은 이렇게 답했다.
“포스터나 사진만 보면 ‘게이쇼’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프리실라’는 단순히 동성애자, 트렌스젠더의 시선만 그린 뮤지컬이 아니라 가족과 우정, 사랑, 감동을 그린 진정성 있는 뮤지컬이다”
거기에 이런 당당한 포부까지 밝혔다.
“보이는 대로 반응하는 직업을 가져 조금은 힘들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라 책임감 있게 이겨내려고 한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악플이나 안 좋은 소릴 들으면 노력해도 정신적으로 잘 안 되더라. 직접 공연을 보러 오라. 아무 생각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장에 와서 ‘프리실라’가 어떤 작품인지 함께 감상했으면 좋겠다. 올여름은 <프리실라>가 책임지겠다”
조권 덕분에 그래도 조금은 더 <프리실라>라는 낯선 공연 이름이 더 언급된 게 아닐까? 이건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세 명의 드렉퀸이 세상 속에서 겪는 오해와 편견을 담고 있는 극의 이야기와도 맥락을 같이 하는 데가 있다. 어쩌면 이 에피소드가 공연에 임하는 조권이나 동료 배우들의 마음을 조금 더 단단히 벼르게 하지 않았을까. 이 공연, 정말 잘해서 오해든 무관심이든 풀어버리자고.
그래서인지 이 무대, 확실히 조금은 더 뜨겁다. 막이 오르면, 무대에서 비추는 화려한 전등으로 극장 전체가 별빛이 된다. 그리고 귀에 낯익은 노래가 배우들의 화려한 춤과 함께 울려 퍼진다. “잇츠 레이닝 맨 할렐루야 잇츠 레이닝 맨!” 웨더 걸스의 ‘잇츠 레이닝맨’이다. 객석도 금방 들썩인다. “다들 약 빨고 온거야? 왜들 이렇게 신났어?” 극중 미스 언더스탠딩의 대사가 과장이 아닐 정도로 무대와 객석에는 흥이 감돈다.
70~80년대 디스코 히트 팝으로 구성된, 당신도 아는 넘버들
뮤지컬 <프리실라>는 쇼 뮤지컬로 다양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일단, 아는 노래가 나온다. 아바의 팝송으로 만든 뮤지컬 <맘마미아>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에게 빠르게 어필한 것처럼, 뮤지컬 <프리실라>에는 70~80년대를 주름잡은 흥겨운 디스코 팝송이 뮤지컬 넘버로 삽입되어 있다. 마돈나의「라이크 어 버진」「머티리얼 걸」, 신디 로퍼의 「트루 컬러스」, 글로리아 가이너의 「아이 윌 서바이브」, 도나 서머의 「핫 스터프」,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부기 원더랜드」까지... 한 소절만 들어도 금세 따라 흥얼거리게 되는 유명한 팝송이 화려한 군무와 함께 흘러나온다.
게다가 드랙퀸이라는 설정에 걸맞게 무대와 배우들의 의상이 제대로 관객들을 홀린다. 배우들은 무대에서 261번 의상을 갈아입고, 65번 가발을 교체한다. 그렇게 무대 위에서 선보이는 의상이 무려 500여 벌. 무대 위에 떡하니 자리 잡은 8.5톤짜리 프리실라 LED 버스도 내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쇼에 걸맞게 휘황찬란한 조명 역시 여느 때보다 바쁘게 제 역할을 한다. 관객들에게 ‘드랙퀸 쇼’를 체험하게 하는 무대다.
여장 무대인 만큼 노래 역시 여자 음색의 노래가 많은데, 이때는 세 명의 여성 싱어들을 앞세워 분장한 드랙퀸들이 립싱크를 한다. “드랙퀸 쇼는 립싱크가 최고지!”라는 버나뎃의 예찬은 허언이 아니다. 립싱크는 드랙퀸 쇼를 완성하는 일종의 형식이다. 뮤지컬 무대에 처음 도전하는 배우 조성하의 노래가 불편하지 않은 데에는 이 립싱크라는 형식미가 한몫한다. 물론 미성의 목소리로 관객들을 집중시키는 마이클리나 따로 립싱크 없이도 충분히 여자 노래를 소화해 내는 조권의 노래도 충분히 들을 수 있다.
진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세 사람의 화려한 로드무비
틱은 게이지만 멀리 앨리스에 사는 아내와 아들도 있다. 틱은 아내와 쿨하게 좋은 친구로 지내고, 아빠 얼굴을 모르는 아들 버넷은 자기 아빠가 그저 시드니(클럽)에서 쇼비즈니스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줄로 안다. 어느 날 틱의 아내는 이제 버넷도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 때가 됐다며, 시드니에 와서 공연할 것을 제안한다. 아들도 만나고,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알려주자는 거다.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과 두려운 마음으로 떠나는 틱의 여정에 왕년의 슈퍼스타 버나뎃과 지금 가장 핫한 게이 아담이 합류한다. 각자 목적은 조금씩 다르지만, 시드니에서 멀고먼 엘리스에서 특별한 공연을 펼치기 위해 이들은 프리실라 버스를 타고 떠난다.
뮤지컬 <프리실라>는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노래,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그려내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다르다’고 손가락질받는 그네들의 특별한 삶이 결국에는 모든 이들의 삶 일부분이 된다는 거다. 단지 그들이 남과 다른 건 ‘성적 취향’이라는 일부분일 뿐 그들 역시 친구, 연인, 부부, 부모 등의 관계와 역할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 역시 남들과 비슷한 건 ‘성적 취향’이라는 일부분일 뿐, 제각기 남과 다른 어떤 부분들을 개성으로 혹은 열등감이나 슬픔으로 안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드렉퀸들이 하는 고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언젠가 정착해서 살 수 있을까?”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변함없이 사랑받을 수 있을까?”-들은 우리가 어제오늘 그리고 내일 하고 있는 고민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드렉퀸의 쇼라는 것은 뮤지컬의 화려한 외관이자 형식일 뿐, 결국 행복한 삶, 사랑하는 삶,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세 사람의 방랑기이자 로드무비인 셈이다. 이 뮤지컬이 ‘단순히 게이쇼’에 그쳤다면, 이 뮤지컬이 호주에서 런던, 미국의 관객을 만나 한국까지 올 일도 없었을 거다. 객석에 앉아있는 연인, 친구뿐 아니라 많은 가족 관객들까지 이토록 흥겹게 만족하게 하지도 못했을 거다.
고정관념 신화를 부수기 위한 유쾌한 분투
뮤지컬 무대에서 게이나 트렌스젠더를 연기하는 배우를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뮤지컬 <헤드윅>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트렌스젠더라는 연기나 역할이 낯설었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헤드윅>이 10년을 맞이한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두 남자배우만으로 무대를 끌어가는 연극 <쓰릴 미>, 클럽을 운영하는 게이 부부의 코믹한 이야기를 풀어낸 <라카지>, 그리고 연말에 관객을 만날 준비하고 있는 뮤지컬 <킹키부츠>까지 극 중에 게이나 트렌스젠더 배우들, 그러니까 여장 남자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는 무대를 자주 보게 된다.
쇼 무대라는 형식을 봤을 때, 여장 남자들이 화려한 드레스와 높은 구두를 신고 추는 섹시한 춤은 매혹적인 구석이 있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낯선 모습인 데다가, 워낙 다들 예쁘고 화려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보일 테다. 하지만 극적으로 보자면, 성 소수자들 이야기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모든 삶의 일부분인 ‘다름’이라는 것이 가장 극대화되어 드러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타인들에게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많이 손가락질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게이라고 해서, 성적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괴물이나 바이러스도 아닌데, 영화나 음악을 좋아하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존재도 아닌데 말이다.
이렇게 표면적인 차별이나 고정관념의 벽을 극적으로나마 극복해낼 수 있다면, 이보다는 자잘하게 여겨지는 다름과 차별들은 충분히 넘어서지 않겠느냐는 건전한 의도가 아닐까. 그러니까 결국 좀 더 소통하고, 자기 주변의 존재들과 화해해서 ‘위 아더 월드’를 만들어보자는 건강한 의도. 물론 요즘의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불화가 늘어나고, 오해 따위 해결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각자의 방에서 고정관념의 안경을 쓰고 평생을 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불통이 키워드인 우리나라만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런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걸 보면, 사람 사는 곳 어디나 안고 있는 문제인 모양이다.
물론 웃자고 즐기자고 보는 뮤지컬 한편으로 거창하게 웬 ‘위 아더 월드’냐고 웃을지도 모르겠다. 뮤지컬은 신나게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쯧쯧쯧 혀를 찰 수도 있다. 극 중에 아담이 겪은 에피소드가 단적인 예다. 신나게 드렉퀸 쇼를 하고 밤새 어울려 놀았는데, 그 사람들이 그들의 버스 프리실라에 ‘더러운 호모새끼들’이라고 낙서를 하고 간 것이다. “나만 재미있었어? 난 우리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러자 맏언니 버나뎃이 이렇게 대답한다. “해뜨기 전까지만이지.”
이 대목에서 나는 조권이 겪은 댓글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아마 그들도 조권의 모습을 컴퓨터 앞에서 본 게 아니라 무대 위에서 봤다면 같이 어깨를 들썩이고 박수를 쳤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아름다워. 그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춤을 춰요.” 무대 위에 선보이는 성소수자들 이야기를 단순히 취향이 아니라, 거대한 고정관념 신화를 부수기 위한 다양한 분투로 다가왔다.
특히나 눈을 의심할 정도로 화려한 의상 체인징이 벌어지는, 엘리스에서의 드렉퀸 쇼는 과히 압도적이다. 재치 있는 연출로 객석에 내내 웃음과 탄성이 맴돈다. 그들의 괴팍한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상스러운 욕이 남발되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욕처럼 차지고 정겹다. 누구와 함께 보러 가도, 놀랍고 흥미진진한 무대를 보게 될 뮤지컬 <프리실라>는 8월 31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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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