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불후의 칼럼 >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
짜증,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
우리는 왜 짜증이 나는가
짜증이 자주 난다면 일단 짜증의 실체와 존재 이유부터 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5월 셋째 주부터 격주 월요일,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추천하는 심리책 이야기,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가 연재됩니다.
“아... 짜증나!”
언제부터인가 피곤해지면 한 번씩 내뱉게 되는 말이다. 직장인의 경우 수요일부터는 급격히 짜증난다는 말을 하는 빈도가 늘어난다. 버럭 화를 내게 되는 것은 아니나,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느낌, 그러나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설명할 수 는 없는, 그래서 또 한번 짜증이 나는 것. 그게 바로 짜증의 현실이다.
짜증이 자꾸 나서, 별 일 사소한 일에 평소와 달리 감정적 대응을 한다. 그러고 나면 바로 “아, 내가 왜 그랬을까?” 라는 후회를 하고,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거나, 내 짜증의 상대가 된 사람이 생각이상으로 힘들어하면 죄책감은 배가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러고 나면 더 짜증이 난다. 반성이 되어야하는데, 이 일과 상관없이 브레이크 소리가 끽하고 나는 걸 듣고 나면 확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도대체 나란 인간,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런 짜증, 없앨 수는 없을까? 신경이 곤두서는 기분 없이 평온하고 온화하면, 그릇이 넓은 대인배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 읽어볼 만한 책이 뭐 없을까? 서가를 둘러보니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왜 짜증나는가』(조 팰카, 플로라 리히트만 지음. 문학동네)이다. 저자는 모두 미국의 공영 라디오방송 NPR의 과학전문기자다.
타인의 휴대전화 대화를 듣는 것
저자는 짜증이 삶의 일부분이고 피할 수도 없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라 말한다. 짜증이 싫은 이유는 아무리 피하려고 최선을 다해도 짜증은 매번 우리를 약 올리고 판단력을 흐리고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현대사회의 삶에서 가장 흔한 짜증의 하나가 타인의 휴대전화 대화를 듣는 것이다.
“그래서? 아. 저녁에 밥을 먹었다고? 거기는 어떤데? 아... 나 거기 싫어. (침묵) 그랬구나. 사람 많았네. (침묵) 비쌌어? 너무했네. 같이 냈어야지.”
공공장소에서 타인의 휴대전화 대화를 듣는 것은 일상의 하나다. 그러나 신경이 쏠리고 본인의 뜻대로 다른 일이나 생각을 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상하게 거슬리고 내용에 더 신경이 쓰이는 일이 벌어진다. 여기에 대해 연구한 코넬대학의 심리학자 로런 엠버슨은 그게 ‘반쪽자리 대화’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의 두뇌는 언제나 현재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예측한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런데 뭔가 예측하지 못할 일이 발생하면 그쪽으로 주의가 쏠리게 된다. 그런데 타인의 휴대전화를 통해 듣게 되는 반쪽자리 대화를 듣게 되면 우리 뇌는 자연히 나머지 반쪽의 대화가 무엇인지 예측하려고 노력을 하는 방향으로 쏠린다. 에너지의 소모가 일어난다. 더욱이 우리가 그 대화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도 조절할 수도 없다는 점도 짜증유발 요인이다. 완전히 무작위적인 자극은 무시하면 되고, 10초 후에 불꽃놀이로 큰 소음이 날 것이라는 예측가능한 자극도 견딜만하다. 그러나 불규칙적 리듬을 가진 타인의 신경 쓰이는 반쪽짜리 대화를 듣는 것은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짜증이 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짜증요인들에 대해서 분석을 한다. 칠판을 긁는 손톱소리, 불쾌한 벌레의 윙 하는 소리, 스컹크의 냄새, 불협화음을 들었을 때의 불편함 등의 어떤 본질적 요인이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지 광범위한 취재를 통해 규명하려고 했다.
기능적MRI 연구로 짜증이 날 때 주로 활성화되는 뇌의 분위가 등쪽 전두대상피질로 이 부분은 변연계의 일부분이다. 원래 우리는 자동항법장치와 같이 세팅된 대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에너지가 덜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등쪽 전두대상피질이 활성화되면 이 자동조종장치를 끄고 수동조종장치를 작동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멍하니 편하게 있다보면 위험할 수 있으니 이제는 수동으로 집중을 해서 의식적으로 판단하고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마치 자동항법장치를 켜고 있던 비행사가 앞에 먹구름과 난기류가 발생하면 자동장치를 끄고 조종간을 직접 잡는 것과 같다.
짜증, 유리한 측면도 있다
저자는 이런 연구결과에 주목해서 아마도 짜증은 그냥 나쁜 감정이 아니라 진화과정에 반복적으로 일어난 이유는 그게 나름 유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추론한다. 짜증은 더 큰 불쾌하고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일종의 신호일 수 있다. 짜증은 멍하니 있던 뇌를 깨워서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서 평소 하던대로 자동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의식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마음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짜증이란 감정이 없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가 돌이킬 수 없는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이 짜증은 우리에게 보내는 위험신호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위험신호가 지나치게 잦아지는 것이다. 경고등이 망가져서 계속 울린다면 쓸데없는 과잉방어에 지쳐버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경고등을 임의로 꺼버리거나 의식적으로 무시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런데 거기에도 많은 에너지가 들고 피곤해지기는 매한가지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데에는 사회적 환경의 영향도 크다. 이를 사회적 알레르기원이라고 루이빌 대학교 심리학자 마이클 커닝엄은 규정한다. 타인의 무례한 습관, 배려 없는 행동, 거슬리는 행동, 규범을 위반하는 행동으로 범주를 나눠 설명하며 인구 밀도가 높고, 상호작용이 많은 현대사회적 삶에서 이런 사회적 알레르기원들은 짜증을 더 자주 유발시킬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짜증의 의미를 이해한다. 무조건 없애거나 전혀 짜증이 없는 곳에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짜증은 몸이 내게 보내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 여기자. 그리고, 만일 원인이 없다면 주변에 사회적 알레르기원이 있는지 찾아본다. 그리고 그 부분을 해결하거나 피할 수 있다면 피하려고 노력해보자. 그 정도의 노력을 해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짜증에 대한 대처다. 짜증이 자주 난다면 일단 짜증의 실체와 존재이유부터 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추천 기사]
관련태그: 우리는 왜 짜증나는가, 짜증, 심리학, 하지현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조 팰카>,<플로라 리히트만> 공저/<구계원> 역14,250원(5% + 2%)
지하철에서의 휴대전화 통화는 왜 신경쓰이는가?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는 왜 소름끼치는가? 연인이나 배우자의 습관은 왜 거슬리는가? 짜증 없는 사회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상황에 처한다. 교통체증, 비행기 연착처럼 뜻하지 않게 일정이 틀어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아 목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