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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청춘스타 박형준, 무대에서 만나다
“무대 덕분에 뒤늦게 연기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무대 위와 밖, 박형준 씨의 모습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소극장 무대 위에서 한참 어린 후배들과 땀 흘리던 그의 모습이 가식이 아니었다고 할까요?
열 스물.. ‘ㄹ’ 받침이 붙던 시절에는 누구나 인생을 길게 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른 마흔.. 받침이 ‘ㄴ’으로 바뀌고 나서야 후회를 시작하죠. 어느 노랫말처럼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흔해만 보이나 봅니다. 기자는 이 배우를 인터뷰하기 위해 대학로 소극장을 찾아가면서도, 객석에 앉아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그를 보면서도 다른 관객들처럼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인터뷰하기에는 참 곤혹스러운 케이스라고 할까요? 단역부터 시작해 고생고생하다 40대에 빛을 본 배우라면 인터뷰하기에 참 좋죠. 얼마나 힘들고 배고팠는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라면 정말이지 조심스럽습니다. 오늘 기자가 만날 배우는 박형준 씨. <마지막 승부> <종합병원> <도전> 등 1990년대 인기 드라마를 주름잡던 청춘스타였죠.
“스타는 무슨, 절대 아니에요. 잠시 잠깐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을 뿐이죠. 제가 연기를 잘 하거나 주인공도 아니었고. 그냥 청춘 때 잠깐...”
기자도 박형준 씨가 출연했던 드라마를 보며 학창시절을 보냈기에 뮤지컬 <담배가게 아가씨>가 끝난 뒤 객석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비현실적입니다.
“2006년에 뮤지컬 <달고나>를 처음 하게 됐는데, 소극장에서 하던 공연을 대극장으로 옮기면서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소극장에서 하는 마지막 공연을 봤는데, 배우들이 정말 어마어마하고 대단하더라고요. 과연 저 무대에서 내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싶고,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못하겠다고 말하러 갔는데, 결국 계약서에 사인하고 무대에 서게 됐죠. 막상 뮤지컬을 하면서는 정말 즐겁고 재밌고, 무대에 대한 애정이 생겼어요.”
송창식 씨의 노래 <담배가게 아가씨>를 모티브로 만든 이 뮤지컬은 2012년 초연 이후 대본을 보완하고 극장을 옮겨가며 꾸준히 공연되고 있습니다. 뮤지컬 <결혼> 때 함께 했던 제작진과의 인연으로 박형준 씨도 <담배가게 아가씨> 무대를 지키고 있는데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작은 무대가 답답하지는 않은지 물었습니다.
“원래는 더 작은 극장에서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너무 안 됐는데, 위기를 겨우겨우 넘기며 지금까지 2년 넘게 해왔죠. 무대와 객석이 가까워서 관객들이 세세하게 보이고, 큰 극장보다 소극장 공연이 재밌는 것 같아요.”
지금이야 이렇게 말하지만 카메라 앞에만 서던 탤런트에게 NG 없이 이어지는 무대 공연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열악한 소극장 공연은 한 명이 여러 역할을 소화하는 만큼 퀵체인지도 많은데요.
“실수는 너무 많죠. 가사를 까먹어서 노래 한두 소절 못 부른 건 기본이고, 옷 갈아입고 무대로 나가야 하는데 뒤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던 적도 있고, 호흡이 안 맞아서 상대 배우의 팔이 빠져서 공연이 중단된 적도 있고. <담배가게 아가씨> 하면서는 반주가 안 나와서 그냥 노래 부른 적도 있고, 마이크가 고장 난 적도 있고... 그런데 이런 아찔한 경험들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이제는 웬만한 사고에는 그냥 의연하게 대처하게 되더라고요(웃음).”
박형준 씨는 담배 가게 아가씨, 유나에게 반한 순박한 청년 현우 역을 맡았습니다. 딱 봐도 나이가 꽤나 차이 나는 배우들과 웃고 울고 뛰고 구르고, 땀을 비 오듯 쏟으며 무대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건 굉장한 용기 같아요.
“처음에는 너무 민망했어요. 제 나이에 할 역할은 아닌 것 같고. 그런데 그런 생각에 너무 빠지면 무대에서 생각이 저를 지배하면서 더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놀자’ 생각했죠. 체질상 땀이 많아서 그렇지 힘들지는 않아요. 누가 무대에 서느냐에 따라 애드리브도 많고 느낌이 달라지는 공연인데, 배우들끼리는 가족처럼 지내서 호흡도 굉장히 잘 맞고요. 연습할 때는 힘들지만 무대에 오르는 건 정말 즐거워요.”
기존 동료나 팬들도 많이 보러 올 텐데, 어떤 반응인가요?
“김찬우 씨가 가장 친한데, 제 공연을 다 봐왔어요. 찬우 형이 처음에는 조마조마해서 못 보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실수할까봐. 그런데 지금은 마음 편하게 본다고, 재밌다고 해요.”
박형준 씨에게 대학로가 익숙한 공간은 아니었죠?
“아니었죠. 사실 공연 보는 것도 즐기지 않는 편이었어요. 불편한 공간에서 두 시간 넘게 무언가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좋아요. 다른 배우들이 하는 거 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무대가 신성하다고 할까요? 무대 덕분에 뒤늦게 연기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무대는 배우에게 펼쳐진 공간이니까 많이 섰으면 좋겠고, 더 늙기 전에 다른 작품들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이 기사를 보면 많은 분들이 박형준 씨가 그 동안 TV를 떠나 어떻게 지내왔나 궁금해 하실 것 같아요. 사업하셨나요(웃음)?
“아니요, 전혀. 무대에 서고, 간간이 드라마 했죠. 농촌 드라마도 하고, 아침 드라마도 하고. 배우로서 많이 잊힌 거죠.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많이 안 찾아주시고, 제가 찾아 나서야 하는데 그것도 잘 못하고...”
우리 나이로 마흔다섯. 숫자상으로는 분명히 중년인데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박형준 씨는 ‘아빠’보다는 여전히 ‘청년’ 이미지가 어울립니다. 청춘스타의 이미지가 강해서 나이에 맞는 변신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렇죠, 제가 어렸을 때 연기에 대한 큰 욕심이 없었나 봐요. 대학 때 MBC 탤런트 공채시험을 봤는데, 공채니까 평생직장 같고, 하다 보니까 이렇게 하는 건가 싶고, 연기에 대한 절실함이 없었어요.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그게 굉장히 소중한 기회들이었고, 내가 잘못 했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객석에서 만난 박형준 씨는 극중 현우처럼 쑥스러움을 잘 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 채널도 많아지고 잊힌 배우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도 많은데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우유부단하고 소심하고 낯도 가리는 편이에요. 아직 철없는 거죠. 생각이 없는 건지(웃음). 예능이나 그런 것도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뭔가 계기를 찾아서 시도하고, 무엇보다 연기자로서 살아남아야죠.”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배우로서의 각오와 바람을 들어볼까요?
“건강하고 부지런하게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싶어요. 다른 새로운 작품들도 해보고 싶고, 청년이 아닌 좀 어른스러운 역할이요. 주목받을 때는 배우로서의 삶을 제대로 못 살았는데, 이제는 배우답게 살아가야죠. 지금도 사실 잘 못하지만, 그게 저의 목표고. 그리고 무대에는 평생 서고 싶어요. 다른 공연 보면 많이 부럽더라고요. 관객들은 재밌게 보는데, 저는 그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에 속상하기도 하고. 더 많이 배워야죠.”
참, 뮤지컬 <담배가게 아가씨>는 따뜻한 사랑이야기인데, 박형준 씨는 연애 안 하세요?
“그러니까요. 아직 결혼도 못했어요. 연애를 해야 하는데(웃음).”
박형준 씨는 신인 배우처럼 너무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놔 기자는 결국 자체 심의에 들어가 기사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대 위와 밖, 박형준 씨의 모습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소극장 무대 위에서 한참 어린 후배들과 땀 흘리던 그의 모습이 가식이 아니었다고 할까요? 어쩌면 그는 아직 철없고 생각 없는, 늦깎이 배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뮤지컬 <담배가게 아가씨>는 소리아트홀에서 공연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이 작품에 대해 물었다면 ‘소극장 공연을 많이 봤다면 크게 특별할 것은 없는 뮤지컬’이라고 답했을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기자도 처음 대학로 뮤지컬을 접했을 때의 환희를 잊었네요. 플롯은 단순하지만 무대를 채워가는 배우들의 열정과 재치로 관객들과 흥겹게 호흡하는 뮤지컬 <담배가게 아가씨>. 그래서 이 작은 극장의 객석에서는 시종일관 박장대소가 터져 나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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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박형준, 담배 가게 아가씨, 결혼, 마지막 승부, 종합병원, 도전, 윤하정, 송창식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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