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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시키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만큼 아프다

누구도 중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누구도 아픔을 느끼지 않고 때릴 수는 없다. - 알랭, 『말의 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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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학생이 지속적인 폭력에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학교폭력이 또 다시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학교폭력을 4대 사회악의 하나로 규정하며 근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배움의 전당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됐는지 생각하면 착잡한 마음이다. 그런데 사실 학생들을 괴롭히는 건 학교폭력이 전부는 아니다.

누구도 중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누구도 아픔을 느끼지 않고 때릴 수는 없다.
 - 알랭, 『말의 예지』

 

 

최근 한 학생이 지속적인 폭력에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학교폭력이 또 다시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학교폭력을 4대 사회악의 하나로 규정하며 근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배움의 전당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됐는지 생각하면 착잡한 마음이다. 그런데 사실 학생들을 괴롭히는 건 학교폭력이 전부는 아니다. 


소위 ‘왕따’라고 부르는, 한 사람을 주위의 환경에서 격리시키는 ‘심리적 폭력’ 역시 심각하다. 게다가 왕따는 학교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다. 직장왕따로 회사를 그만두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심리적 폭력이 신체적 폭력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다. 신체적 폭력에 가담하기는 쉽지 않지만 누군가를 왕따시키는 건 어렵지 않게 동참할 수 있다. 그 사람을 외면(무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왕따시키는 데 참여하게 되는 건 ‘대세’를 거스를 경우 자신도 왕따를 당할 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두려움 때문일까. 아무튼 왕따가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보면 그 조직에서 주도권을 가진 사람이(학교에서는 싸움을 잘 하는 학생이거나 회사에서는 상사) 누군가를 왕따시키면 어쩔 수 없이 따라서 왕따에 참여하게 되는 듯하다.

 

 

MRI_왕따-당할-때

MRI 왕따 당할 때

 

 

신체적 폭력과 같은 고통 느껴

 

 

‘그래도 진짜 폭력을 당하는 것에 비하면 왕따가 훨씬 낫지.’남들이 나를 무시하면 나도 무시하고 살아가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관계가 차단당하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독방에 수감하는 게 가혹한 처벌인 이유다. 지난 2003년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왕따를 당하는 고통이 정말 신체적 고통만큼이나 가혹하다는 걸 증명한 실험결과가 실려 화제가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LA) 심리학과 나오미 아이젠버거 교수팀은 ‘사이버볼Cyberball’이라는 컴퓨터 게임을 통해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을 만든 뒤 뇌의 활동을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분석했다. 사이버볼을 실제 상황으로 바꾸면 세 사람이 서로 축구공을 주고받는 놀이다. 연구자들은 사이버볼 파트너가 다른 방에서 참여하고 있는 피험자라고 알려줬지만, 사실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에 설정된 가상의 인물들이다.

 

왕따를 당하는 조건은 게임에 참여한 피험자가 처음 몇 차례 패스를 받은 뒤부터는 공을 받지 못하고 게임에서 소외되게 프로그램돼 있는 상황이다.왕따를 당한 사람의 fMRI 영상을 분석하자 전두대상피질이 활성화됐다. 이 영역은 신체적인 고통을 겪을 때 활성화된다. 한편 전전두엽피질의 활동은 위축됐는데, 역시 신체적인 고통을 당할 때와 같은 경향이다. 즉 뇌의 활동 패턴만 봐서는 이 사람이 신체적 고통을 겪는지 심리적 고통을 겪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슬픈 일을 겪을 때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는 건 뇌의 활동 패턴만을 봤을 때는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그런 것이다.

 

그런데 왕따에 참여하는 사람도 왕따를 당하는 사람만큼이나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는 연구 결과가 학술지 <심리과학> 2013년4월호에 실렸다. 미국 로체스터대학 리처드 라이언 교수팀은 사이버볼 게임을 통해 왕따의 가해자 상황을 만든 뒤 그 심리상태를 조사했다. 즉 피험자에게 "공이 오면 A에만 패스를 하고 B에게는 처음에만 두 번 패스를 하고 그 뒤에는 하지 말라"라고 주문한다. 사이버볼 파트너가 다른 방에서 참여하고 있는 피험자라고 알려줬지만, 역시 실제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에 설정된 가상의 인물들이다. 비교를 위해 왕따를 당하는 피험자와 중립 조건 피험자 실험도 수행했다. 중립 조건은 피험자가 마음대로 패스를 하게 하고, 컴퓨터의 가상 인물들도 임의로 패스를 주고받게 프로그램돼 있다. 

 

 

상황별-심리상태

 

상황별 심리 상태

 

 

부끄러움과 죄의식, 자율성 상실감 느껴

 

 

게임을 마친 뒤 피험자들은 설문조사를 받았는데 그 결과 왕따를 시키는데 참여한 사람이 왕따를 당한 사람만큼이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정신적인 고통 정도를 묻는 질문에 대해 왕따를 시키거나 당한 피험자는 중립 조건의 피험자에 비해 둘 다 비슷하게 높은 수치가 나왔다. 그런데 고통의 세부항목은 미묘하게 차이를 보였다. 먼저 부끄러움과 죄의식에 대해서 묻자 왕따를 시킨 사람들이 다른 두 집단에 비해 훨씬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왕따를 당하는 사람들은 중립 조건 피험자보다도 낮았다. 반면 화가 났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왕따를 당하는 사람이 가장 높은 점수를 매겼다. 왕따를 시키는 사람은 중립 조건 피험자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었다.

 

한편 자율성을 묻는 질문에는 왕따를 시키는 사람들이 굉장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왕따를 당하는 사람은 중립 조건과 별 차이가 없었다. 끝으로 유대감을 묻는 질문에는 왕따를 당하는 사람이 가장 낮게 나왔고 왕따를 시키는 사람은 중립 조건보다 약간 낮게 나왔다. 설문 결과를 종합해 보면 타인의 지시에 따라 왕따를 시키는 데 참여한 경우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느끼고 자신의 행동에 자율성이 없었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반면 정황상 자신이 왕따를 당했다고 느낀 경우 화가 나고 관계의 상실을 절감한다. 그 결과 두 집단 모두 정신적으로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그 정도가 비슷했던 것.

 

이 연구를 이끈 리처드 라이언 교수는 같은 대학 에드워드 데시 교수와 함께 ‘자기결정성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을 제안한 유명한 심리학자다. 자기결정성이론이란 인간 행동에 있어서 가장 큰 보상은 물질적인 게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는 데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행동이 자발성에서 비롯돼야 한다는 이론이다. 라이언 교수가 왕따를 시키는 데 참여하면 불행해질 것이라고 가정한 것도 자기결정성이론에 따른 것이다. 결국 사회에 왕따 분위가가 팽배해질수록 당하는 소수만이 불행해지는 게 아니라 소극적일지언정 왕따에 가담하는 사람까지도 모두 불행해진다는 게 최신 심리학의 연구결과다. 권위자가 됐든 특정 집단이 됐든 누군가로부터 다른 누군가를 왕따시키라는 무언의 압력이 느껴질 때 이를 무시하고 왕따 피해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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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취하다 과학에 취하다 강석기 저 | MID 엠아이디
첫 책 『과학 한잔 하실래요?』로 출간하자마자 2012년 교육과학기술부 우수과학도서, 두 번째 책 『사이언스 소믈리에』로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 우수과학도서로 유래 없이 2년 연속 선정된 저자의 세 번째 과학에세이. 더 깊어진 과학적 전문성과 더 넓어진 학문적 지평으로 2013-2014년 과학계의 첨단 이슈를 샅샅이 파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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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석기

서울대학교 화학과 및 동대학원(이학석사)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동아사이언스 《과학동아》와 《더사이언스》에서 과학전문기자로 일했다. 현재 과학칼럼니스트와 과학책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과학 한잔 하실래요?』(MID, 2012)가 있고 옮긴 책으로 『현대 과학의 이정표』(Gbrain, 2010, 공역)가 있다. 2012년 출간한 저서 『과학 한잔 하실래요?』는 출간 즉시 교육과학 기술부 우수과학도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권장도서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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