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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소설과 만화의 거장이 만나다! - 『월관의 살인』

일단 『월관의 살인』이 관심을 끄는 것은 추리소설과 만화의 거장이 만났다는 점이다. 소설이나 영화가 히트를 하면 만화판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을 인기 작가가 그리는 일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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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월관의 살인』이 관심을 끄는 것은 추리소설과 만화의 거장이 만났다는 점이다. 소설이나 영화가 히트를 하면 만화판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을 인기 작가가 그리는 일은 별로 없다. 인기 작가에게는 자신의 독창적인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대우를 해주기 때문이다. 반면, 신인 작가로서는 인기 소설이나 영화의 각색을 통해 수월하게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얻으므로 이점이 있다. 일단 뛰어난 원작이 있다면 아무래도 작업이 수월하고 이름도 알릴 수 있으니까. 원작의 명성에 짓눌리지만 않는다면 자신의 스타일도 얼마든지 가미할 수 있다.

물론 『월관의 살인』은 원작이 있는 작품이 아니다. 『월관의 살인』 자체가 오리지널이다. 다만, 이야기와 만화를 담당하는 두 명의 작가가 공동으로 창조한 작품이다. 『십각관의 살인』『시계관의 살인』 등 ‘관 시리즈’로 유명한 신(新) 본격 추리소설의 거장 아야츠지 유키토와 『닥터 스쿠르』『헤븐』으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이룩한 사사키 노리코가 합작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만화인 것이다. 각색이 아니라, 두 사람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공동 창작물이다.

사실 두 사람의 만남은 의외라고도 할 수 있다. 사사키 노리코의 만화는 캐릭터 개그에 많은 것을 의존한다. 유별나고 기이한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비상한 캐릭터가 평범한 일상에서 충돌하고 비껴가면서 황당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일상적인 사건을 유쾌한 비일상으로 만들어내는 힘은 전적으로 사사키 노리코의 ‘개그’ 감각이다. 하지만 아야츠지 유키토는 치밀하게 짜인 ‘트릭’을 풀어내는 신 본격 추리물의 선두 주자다. 트릭을 풀어내는 차가운 이성과 어떤 상황에서든 돌발적으로 터지는 개그 감각이 과연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사람이 죽어가는 끔찍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유머란 어떤 것일까?

부모가 모두 죽고 혼자 살아가던 18세의 여고생 소라미에게 변호사가 찾아온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최남단 오키나와에서 최북단 홋카이도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 소라미는, 다시 야간열차 겐야를 타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 소라미의 어머니는 기차와 철도를 너무나 싫어했고, 소라미가 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소라미는 18세가 되도록 기차는커녕 모노레일조차 타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겐야에 탄 소라미는 의외의 상황을 만난다. 동승한 사람들은 모두 ‘철광’, 즉 철도 오타쿠였다. 철도에 관한 것이라면 모두 모으는 남자, 모든 철도 노선과 열차를 타보는 남자, 열차의 모든 시각표를 외우는 남자, 철도를 축소한 모형을 집 안에 가득 전시해 놓은 남자 등이 ‘환상의 열차’인 겐야에 타고 있다. 그리고 ‘철광’ 연쇄살인이 시작된다.

아야츠지 유키토는 ‘관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다. 이 만화 역시 월‘관’이다. 그런데 하나 특이한 것은 살인 장소가 건물이 아니라 철도라는 점인데, 그 이유도 금방 나온다. 즉, 겐야는 실제로 달리는 철도가 아니라, 역시 철광인 소라미의 할아버지가 ‘환상의 열차’를 만들어 실제로 달리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시뮬레이션 열차인 것이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어떻게 살인을 했을까, 즉 『오리엔트 특급살인사건』을 연상케 하던 범죄는 곧 폐쇄 공간인 저택에서의 살인 사건으로 바뀐다. 월관과 거기에 연결된 움직이지 않는 철도에서 연속으로 살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월관의 살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철광’이다. 『월관의 살인』은 달리는 기차의 사진을 찍으려던 사람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나 한 사람이 사고로 죽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소라미의 어머니는 철광인 아버지를 너무나 혐오하여 결혼하자마자 집을 나와 절연했다. 그리고 지금 철광만을 죽이는 연쇄살인범이 도쿄에 나타난다. 아마도 그 살인범이 월관에 나타나 철광을 연속으로 죽이는 것이다. 왜? 사실 『월관의 살인』이 탁월한 추리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 트릭이나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 등은 좀 어설프다. 우연히, 적당하게 풀리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월관의 살인』은 단지 추리물이라는 장르만으로 국한할 수 없는 작품이다. 일단 사사키 노리코의 유머 감각은 여전하다. 소라미가 절대 기차를 탈 수 없게 하는 어머니의 갖가지 소행이나 겐야에 탄 철광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월관의 살인』이 역시 사사키 노리코의 만화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또한 『월관의 살인』은 ‘철도 오타쿠’를 주요 인물로 등장시키면서 철광이란 대체 어떤 사람인지를 즐겁게 보여준다. 희화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철광을 비난하거나 조롱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정도다. 사사키 노리코의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평범하지만 나름의 고집이 있는, 독특한 생활 방식이 있는 사람들이다.

『월관의 살인』은 일종의 퍼포먼스 같은 작품이다. 아야츠지 유키토건, 사사키 노리코건 그들의 대표작으로 꼽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하지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작가가 만나, 그들의 전작과 일맥상통하면서도 조금씩 어긋나는 작품을 선보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가끔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디어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도 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방식으로 고착화된 것보다는, 다양한 변주가 더 의미가 있으니까. 때로 더 재미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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